바람의 도시( Windy City)에 첫눈이 내린다. 하얗게 퍼지는 눈송이들이 차가운 공기 속을 춤추듯 내려온다. 내 마음도 그 눈송이처럼 가볍게 흩어지며, 얼어붙었던 감정들이 차츰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첫눈을 보면 언제나 그런 기분이 든다. 세상이 새로 시작되는 것 같은, 어쩌면 지난 계절의 아픔을 모두 덮어주는 것만 같은 느낌. 그 흰 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스함이 밀려온다.
어릴 적, 첫눈이 내리면 부모님과 함께 동네를 거닐며 눈싸움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던지고, 함께 웃으며 겨울을 즐겼던 순수한 시간이 있었다. 눈밭에서 넘어지며 웃던 그 순간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소중한 추억이 되어 마음을 채운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점점 더 어른이 되어 가지만, 첫눈이 내리면 여전히 그때의 마음이 되살아난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지만, 나만이 조금씩 변해간다.
첫눈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첫눈이 이렇게 특별할까? 겨울이 시작될 때, 그 첫 번째 눈송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모든 것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이 내리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새롭게 시작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의 마음속에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러나 첫눈이 내리는 순간, 이따금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동안 지나온 길, 이룬 것들, 잃은 것들이 떠오른다. 첫눈은 지나간 계절의 흔적을 덮어주는 동시에, 그 아픔과 그리움을 되새기게 만든다. 눈이 쌓이듯 마음속에서도 지나간 시간들이 쌓여 있다. 하지만 눈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그 모든 것이 덮여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도 첫눈이 내렸다.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첫눈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지만, 나에게는 추억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 추억들은 언제나 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다시 한번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