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높이 자라던 가지,
햇살과 바람을 휘감던
푸른 날들의 꿈은 잘려나가고,
남은 건 깊은 나이테 밑동 하나.
세상이 겨눈 칼날이
시험지와 생계의 무게로 나를 누르며,
매끄럽던 가지를 베어냈지.
흙 속 깊이 숨죽인 뿌리마저
보이지 않는 곳에 묻혀버렸네.
이 밑둥에서는 아직도 뭔가 꿈틁대며
흙 속 어느 뿌리 한 자락에서
은밀히 꿈꾸는 떨림이 살아나네.
아무도 모르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남은 살결 깊숙이 숨겨둔
잊힌 꿈 하나가 피어오르네.
잘린 가지 없이도 뿌리 하나 남아
고요히 새살을 틔우면서
사라진 그 꿈을
다시 자라게 하려 하네.
나의 밑둥
낡고 거친 자리에서도
아직 살아 있는 꿈 하나,
언젠가 푸른 이파리로
피어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