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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oem1

잘린 나무의 꿈

by lee nam

한때 높이 자라던 가지,

햇살과 바람을 휘감던

푸른 날들의 꿈은 잘려나가고,

남은 건 깊은 나이테 밑동 하나.


세상이 겨눈 칼날이

시험지와 생계의 무게로 나를 누르며,

매끄럽던 가지를 베어냈지.

흙 속 깊이 숨죽인 뿌리마저

보이지 않는 곳에 묻혀버렸네.


이 밑둥에서는 아직도 뭔가 꿈틁대며

흙 속 어느 뿌리 한 자락에서

은밀히 꿈꾸는 떨림이 살아나네.


아무도 모르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남은 살결 깊숙이 숨겨둔

잊힌 꿈 하나가 피어오르네.


잘린 가지 없이도 뿌리 하나 남아

고요히 새살을 틔우면서

사라진 그 꿈을

다시 자라게 하려 하네.


나의 밑둥

낡고 거친 자리에서도

아직 살아 있는 꿈 하나,

언젠가 푸른 이파리로

피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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