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oem1

두레박

by lee nam

두레박


시카고에 뿌리를 내린 지 설흔 일곱 해

낯선 하늘 아래 깊은 우물을 판다.

밧줄 끝에 매달린 두레박을 내려

바닥까지 닿으면 천천히 끌어올린다.


무딘 손바닥에 스치는

습기의 결

퍼 올린 물에서는

깊은 밤 호롱불 아래서

내 떨어진 양말 뒤꿈치를 깁던

어머니의 거친 손등이. 가물거리고

작두로 거친 볏짚을 잘라

쇠죽을 쓰던 아버지의 모습도

희미하게 빛난다.


마른 입술에 적시면

낯선 땅의 공기도 잠시 익숙해지고,

작은 물방울이

흙길 위에 고인 논두렁처럼

가슴 어딘가를 적신다.


두레박은 매일 같은 길을 오가지만

퍼 올리는 물은 매번 다르다.

어제의 시간,

오늘의 숨결,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날들까지

우물 속 깊이 겹겹이 쌓여 있다.


나는 이 물로 밥을 짓고

마음을 달래며

아직도 저 먼 땅의 소리를 들으며 산다.

두레박이 퍼올려주는

이 맑은 울림

그것으로 또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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