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산과 들로 둘러싸인 농촌 마을에서 자랐다. 자연은 매일같이 그 고유의 목소리로 시간을 알려주었고, 봄마다 철쭉과 목련, 개나리가 피어나며 여름엔 짙은 초록의 물결이 마을을 덮었다. 가을이 오면 능소화와 오동잎이 색을 더했고, 겨울은 고요 속에서 자연의 숨소리를 느끼게 했다. 그 모든 계절은 하나의 큰 공연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다.
봄이 오면 마당에서 앙증맞은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졸졸 따라다녔다. 삐약삐약 울며 작은 몸짓으로 온 마당을 누볐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병아리들의 날갯짓과 금빛 깃털에 눈을 빼앗겼다. 그 모습은 어린 나에게 신비로운 기적처럼 다가왔다.
달걀을 품고 있는 씨암탉을 보며 나는 생명의 비밀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미 닭은 둥우리 속에서 한 번 자리 잡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알 속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자신의 온기를 온전히 쏟았다. 21일 동안, 그녀는 다른 닭들과 어울릴 자유도, 햇빛 아래 뛰놀 권리도 모두 포기했다. 불편함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묵묵히 알을 품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은 작은 기적 같았다.
그 시절, 우리 집 마당은 온 세상만큼 넓게 느껴졌다. 노란 개나리가 피어날 때면 이웃집 닭들도 찾아와 우리 마당에서 함께 놀았다. 수탉들은 암탉들을 쫓으며 봄의 축제를 즐겼다. 하지만 그 화사한 풍경 속에서 둥우리 안에서 생명을 품고 있던 씨암탉에 대하여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성장한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씨암탉은 좁고 어두운 둥우리에서 고독과 싸우며 생명을 품고 있었다. 목마름과 배고픔을 참으며, 때로는 움직이고 싶은 욕망도 억누르며 21일의 기다림을 견뎠다. 그 시간은 단순히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랑과 헌신, 희생과 인내의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 속에서 병아리들이 태어나 그녀의 사랑을 세상에 알렸다.
그 기억 속 씨암탉의 모습은 나와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를 생각하게 한다. 각자는 자기 자리에 묵묵히 무엇인가를 품고 키우며 살아간다. 때로는 희생하고, 때로는 인내하며 생명의 열매를 기다린다. 내가 속한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의 둥우리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보듬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알 속에는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많은 희망들이 숨어 있다. 올해도 벌써 첫 달의 끝자락이 지나가고 있다. 나 또한 신비로운 생명의 기적을 이뤄내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