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결혼식 후기
아들의 결혼식을 마치고 며칠이 지났다. 이제야 정신이 조금 가라앉고, 빈 방처럼 조용한 마음 한편에 슬며시 여운이 내려온다.
오늘도 아내는 거실에 앉아 내가 만든 축가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아들아~, 천국의 문 열리네.” AI로 만든 노래였지만, 우리의 마음을 너무 잘 전달해 주는 진짜 노래였다. 아내는 그 노래를 백 번도 넘게, 아니 어쩌면 천 번도 넘게 반복해서 듣는다. 내가 AI로 만든 곡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축복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 아들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일은 따로 있었다. 초대 손님에게 연락을 돌리는 일이었다. 누구는 꼭 와야 한다 생각했고, 누구는 초대하지 않아도 괜찮다 싶었지만, 사람의 관계는 숫자로 정리되지 않았다. 연락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고, 이름 하나 적고, 번호 하나 누르는 일이, 카톡으로 알리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힘들게 할 줄 몰랐다. 혹여 빠뜨리지는 않았을까?, 혹여 억지로 오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솔직히 내가 마음이 무거워서 단톡에 알리지 않고 친구에게만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리니 그리 알고 단체톡에는 알리지 말아 주면 좋겠어~”
친구는 답을 한다.
“친구야 사람 사는 것이 네 생각하고 다를 수 있다. 너의 그런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게 단체톡에 올리고 그리고 이번에 받는 축하를 다음에 돌려주는 것이 순리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진심 어린 조언으로 결혼식 1주일을 남기고 조심스러운 심경을 담아 단체톡에 알렸다.
< 결혼식을 자화자찬하면서... >
황금연휴인데 서울에서 하는 결혼이라 많은 걱정과 부담이 있었지만 나는 자찬한다. 우리의 결혼식은 완벽에 가까웠다고 생각하고 싶다. 적어도 나와 아내, 아들과 며느리의 마음에는 그렇다.
예비 며느리는 시할머니의 축하영상을 예식의 중요 이벤트로 만들었다. 요양원에 면회를 가면 시낭송을 즐기는데 그 시낭송을 결혼식의 중요 이벤트로 만드니 할머니와 인연을 맺은 가족과 지인들의 감동은 2배로 늘어났다.
예비 며느리의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신랑 친구의 축사는 재미있고도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신랑 친구 4명이 불러주던 축가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남자들의 브로멘스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브런치 스토리에 올라온 '첫 마음'이라는 축하인사의 글을 3번이나 읽어보았다는 예비 며느리가 배려심과 속이 깊은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객으로 온 친구들이 얘기를 한다. 이 결혼식에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신랑의 어머니가 펑펑 우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어머니가 우는 모습은 흔한데 신랑의 어머니가 우는 모습은 처음이란다. 신랑의 어머니가 아들을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 한 장면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 결혼식을 마치며... >
예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다 돌아간 호텔 홀 안에서, 우리는 잠시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길고 긴 준비과정과 마음의 부담을 지웠다.
결혼식은 의례적인 통과의례라 생각했었다. 성혼선언문, 축사, 축가 하고,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끝나는 형식적인 절차.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서보니, 결혼식은 ‘사람과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가장 농밀한 순간’이었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실감했다.
“아, 이 행사는 사랑과 감사의 집합체구나.”
고작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너무도 많은 비용과 절차가 들었지만, 그 하루 덕분에 우리는 평생의 추억을 얻었다. 허망한 소비가 아니었다. 허세가 아니라 아름다운 기억을 위한 선택이라 믿고 싶었다.
결혼식이 끝난 날,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도 아들의 손을 잡으며 ‘잘 살아라’ 인사했지만, 언젠가 아버지도 내 손을 꼭 잡고 그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 말 안에 얼마나 많은 희생과 사랑, 인내가 담겨 있었는지, 나는 이제야 안다.
결혼식은 눈부셨다. 젊음은 찬란했다. 신부의 드레스, 신랑의 턱시도, 꽃과 조명, 음악과 웃음. 그러나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꽃은 피고 지고, 빛은 들고 사라진다. 오늘의 찬란함은 내일의 추억으로 스러진다.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끝이 있기에 귀하고, 한 번이기에 값지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남는 건, 돈의 무게였다. 축의금 봉투는 때로 우정의 깊이를 헷갈리게 했다. 오랜 친구가 적은 금액을 줄 수도 있고, 별로 친하지 않은 지인이 큰돈을 내기도 한다. 나도 형편이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면서 혼주나 상주에게 그런 느낌을 주었던 것 같아 지나간 일들이 후회로 남는다.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이만큼은 안다. 마음은 액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가 기억하고, 와주고, 웃어주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받았고, 또 감사했다.
아들아, 너는 이제 너만의 길을 간다. 아버지는 그 길의 시작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네가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천국의 문’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의 인생이 축복으로 가득하길, 두 손 모아 빈다.
< “아들아~ 천국의 문이 열리네” >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결혼 축하노래 가사
[1절]
아들아~ 너를 보면 가슴이 뛰어
하얀 길을 걸어가는 네 모습 신기하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가는 너를 보면
나의 바람은 네가 행복하길
열심히 여기까지 달려온 시간들
땀과 눈물이 빛나는 노력이었지
이제 함께 걸을 사람을 만나
니 삶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어
[후렴]
축복의 문 열리네
사랑의 빛 내리네
너와 그녀, 손을 잡고
영원히 가길 바라
웃음꽃이 피어나
머물지 않는 곳 없어~
너의 둘의 세상에
기적 같은 날들만
[2절]
혼자였던 시간 이 길을 선택하며
수많은 고민과 결심으로 이어졌지~
너의 그 슬기와 따뜻한 가슴만 있으면
어디든 네가 빛나는 하늘을 열어~
요란하지 않은 진심만이 가득한 자리~~
그 모든 시간, 네가 있던 그 모든 곳에
사랑이 돋아난다 푸른 잔디 위에
너의 발걸음 남겨지리라.
[후렴]
축복의 문 열리네
사랑의 빛 내리네
너와 그녀 손을 잡고
영원히 가길 바래
웃음꽃이 피어나
머물지 않는 곳이 없어
너의 둘의 세상에
기적 같은 날들만
표지사진 설명: 호텔로비에 생화가 꽂혀있다. 참 아름다웠다. 이 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아름다운 꽃도 오늘 잠시 피었다가 내일에는 스며드는 바람 따라 고요히 시들겠지.
나의 젊음도 그러하였다. 한때는 영원히 젊을 것 같았다. 길지 않은 젊음, 그때는 그때대로 충만했고 그 젊음의 시간은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나도 아들도 며느리도...
젊음의 기억이 담담히 지나가면, 그 또한 고운 기억으로 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