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순간들

인생은 '기다림'이다.

by 올제

< 우리는 늘 기다리면 산다. >


약 10년 전, 나는 여전히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그 시절, 아내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공로 연수로 북유럽의 교육환경을 둘러보러 떠났다. 아내가 없는 틈,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늘 집 안에 홀로 누워 계시며 허무함에 잠긴 듯한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그렇게, 부모님과 나, 셋이서 3박 4일간의 여행길에 올랐다.


제주에서 우리는 에코랜드와 트릭아트 미술관, 여미지 식물원 등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건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리듬의 차이였다. 부모님은 밤 8시면 잠이 드시고 새벽 4시면 기상하셨지만, 나는 보통 밤 10시에 자서 아침 6시쯤에 일어났다. 이 사소한 시간차는 함께 있는 3박 동안 예상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새벽 4시에 깨어난 부모님은 여느 때처럼 동네 산책을 나가셨다. 그런데 어느 날, 두 분이 외출하시면서 방 키를 깜빡하고 가지고 나가지 않으셨다. 나는 그날따라 피곤했던지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일어나 보니, 부모님은 방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계셨다. 새벽 4시부터 세 시간 가까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놀라서 말씀드렸다.


“아니, 키 안 가지고 나가셨으면 초인종을 누르시지, 왜 이렇게 오래 앉아 계셨어요?”


그때 아버지가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잠 깰까 봐… 그게 싫어서.”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를 위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그날 새삼 또 깊이 깨달았다.



< 사람 사는 일은 결국, 기다림이다 >


중학교 시절부터 고도근시로 안경을 써야 했던 나는 수없이 많은 안경을 쓰고 벗으며 살아왔다.

지금 쓰는 안경도 2년이 지나 시력이 달라졌고, 이젠 새로 맞춰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안경 하나 새로 맞추는 일에도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하다.

시력은 흐릿해지는데, 비용은 선뜻 발을 들이기 어려운 문턱이 된다.


글을 쓰는 시간이 늘면서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날이 많아졌다.

문장을 떠올리며 집중할수록 눈앞이 자주 흐려지고, 어쩐지 마음도 흐려진다.


비 오는 오후, 김밥 한 줄 사러 나서는 길에 문득 안경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유리창 너머 안을 바라보았다.


평일 오후 4시, 손님 하나 없이 조용한 실내. 직원 세 사람이 동시에 내 쪽을 바라본다.

내 눈에도 그들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가 지나가는 나를 계속 따라왔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다시 이 가게를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믿는 조용한 기다림 말이다.


“저 사람, 전에 우리 가게에서 안경을 맞췄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지나치지만,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


그저 하루하루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한 체념과 익숙한 기다림이 스며 있었다.


살아가기 위해 참고 견디는 현실 속에서,

시간이 언젠가는 풀어주겠지 하는

조용한 바람이 깃든 눈빛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기다림’이라고 한다.


한여름 땡볕 아래, 냉면 한 그릇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처럼

때로는 목이 타고, 다리가 아리고, 마음마저 조급해진다.

하지만 그 기다림 끝에서 만나는 한 모금의 시원함은

기다려온 시간을 보상하듯 달콤하다.


백화점 2층 난간에서 내려다본 매장,

손님은 없고, 주인은 의자에 앉아 창문 너머 오후 햇살을 받는다.

그 눈빛에는 매출보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숨결이 담겨 있다.

누군가 들어오면 반가움보다 안도부터 밀려올 것이다.

그 기다림은 단순한 장사의 시간이 아니라,

외로운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끈과도 같다.


그리고 이제, 퇴직 후의 우리 부부도

또 다른 기다림 속에 산다.

매달 25일, 연금이 입금되는 날.

적잖은 세월의 흔적이 이 작은 숫자로 돌아오기를,

마치 겨울이 지나 봄을 맞이하듯 손꼽아 기다린다.

그 기다림마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따뜻한 숨결이 된다.


지난봄에 심어둔 씨앗처럼,

사둔 주식이 오르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언젠가 햇살이 비추면 싹이 트듯

인생도, 수익도 기다림 끝에 익을 것이다.


그 기다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의 거의 모든 장면에 숨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기다리는 것보다

나를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문득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나는 인생을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이는 ‘기다림의 시간’이라 부른다.

기다림이 있는 삶은,

아직 무언가를 믿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기다릴까 >


기다림이라는 삶의 리듬을 일상의 구체적인 풍경으로 또다시 담아보았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고, 그 속에서 삶의 본질을 은근히 비추는

기다림의 장면들을 골라보았다.


부모는 아이의 첫 말을 들을 날을 기다리며

결혼한 아들이 진주 고향으로 찾아오길 기다리며

부모는 군대 간 아들이 무사히 제대하기를 기다리고.

십자인대 수술실 앞에서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우리는 한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서 따뜻한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아내는 매주 금요일 산행을 가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애순이와 자식들은 오징어 잡이를 떠난 관식이를 기다리고,

길을 가다가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고,

아내는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잠에 들지 못하고,

해마다 제주 올레길 축제를 가기 위해 가을이 되기를 기다린다.


대입 시험 전형 결과 발표를 애타게 기다리고,

은행에서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주전자 앞의 시간은 더디기만 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내려가기를 기다리며,

문자 ‘읽음’ 표시가 뜨길 바라보면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 간 아내가 나오길 입구에서 기다리며,

도로 위에서 교통신호가 바뀌길 기다리지 못하고 휴대폰을 보고,

주문한 택배가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농부는 봄에 씨앗을 뿌리며 잘 성장하기를 기다리고

정원에서 모종이 싹을 틔우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나는 기다림에 서툴렀다. >


나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빨리 끝내고 싶었고,

답을 먼저 알고 싶었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마음부터 앞질렀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다.

말이 늦으면 불안했고, 성적이 떨어지면 조바심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 속에서도,

상대가 나를 이해하기까지의 시간조차 참을 수 없었다.


그 모든 조급함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삶은 단숨에 피어나는 꽃이 아니고,

삶은 누군가의 속도를 맞춰주는 긴 동행이었다는 것을.


기다림이란 결국,

사랑의 다른 말이었고,

신뢰의 다른 얼굴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어떤 시간을, 나 자신을.

그 기다림 안에서 삶이 익어간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런데 아직 나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다.


인생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기까지의 기다림

꿈을 이루기 위한 기다림

자식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기다림

병상에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기다림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은 삶을 온전히 마주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그 기다림 속엔 내일이 있다.


“인생은 기다림이다” 외에 다른 표현으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 정년퇴임을 앞둔 친구를 축하해 주기 위한 대학동기생들의 모임이었다. 약 40년간의 교직생활을 무사히 잘 마무리 한 친구의 정년퇴직을 진심으로 축하하였다.>

8월 말 정년퇴직을 앞둔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1박 2일 모임을 가졌다. 순수한 축하의 마음으로 모인 자리였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술도 나누고, 옛 추억을 꺼내며 모처럼 편안하게 웃을 수 있었다.


우리 나이쯤 되면 가장 큰 걱정은 연로하신 부모님, 자식들, 그리고 자신의 건강에 대한 것이다. 그중 한 친구의 이야기가 깊이 마음에 남았다.


그 친구 어머니는 1932년생이시니 올해로 아흔셋. 정신은 여전히 또렷하시지만, 기력이 많이 쇠해 걸음도 제대로 못 떼고, 식사도 거의 못 하신다고 한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면회하러 갈 때면, 어머니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내가 이제 기운이 다 빠져서 요양병원에 있는데,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니? 그냥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 같아 슬프다.”


그 말을 듣는 자식의 마음은 찢어지듯 아프다고 한다. 그렇지만 생로병사란 결국 피할 수 없는 순리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언젠가 나도 그와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 나는 면회 오는 자식에게만은 그런 속마음을 절대로 내비치지 않겠노라고.

사람들은 누구나, 언젠가는 내 자식도 그런 시절과 그런 생각을 겪을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