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이 필요해~"

게슈탈트, 상보적 대화, 평가하는 대화

by 올제

< 같은 세상을 보면서도 각자가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


나의 100가지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호주 오프 테니스 대회 4강전을 직관하는 것이었다. 테니스를 좋아했던 나는 TV를 통해서 중계방송을 자주 보곤 했다. 예전에 아내와 함께 TV로 윔블던 테니스 경기를 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조코비치는 저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인트를 따는구나. 정말 테니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 중 한 명이야.”

그러나 아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아내는 TV 속 조코비치의 플레이를 본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여성 관중들이었다. 하얀 모자를 쓴 채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신기했던지,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운동장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얀 모자를 쓰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는 게 참 인상적이네.”


우리는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인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시각적 요소 가운데 일부를 선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체’를 구성한다. 내게는 운동장의 열기와 선수의 몸짓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지만, 아내에게는 군중 속 한 사람의 모자가 중심을 차지했다. 같은 장면이지만 서로 다른 ‘형상과 배경’이 형성된 것이다.


게슈탈트 이론은 인간의 주의가 항상 형상과 배경(Figure–Ground)을 구분한다고 말한다.

나게는 선수의 동작이 ‘형상(figure)’이 되고, 나머지는 배경(Ground)이었고

아내분에게는 관중 속 모자가 ‘형상(figure)’이 되었고, 경기는 배경(Ground)이었다.


이 일화를 떠올리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 또한 선택적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살아간다. 그 결과 우리는 같은 현실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 속에 산다.


< 부부는 왜 서로 다른 대화를 하는가? >


우리 부부는 매일 말을 주고받지만, 그 말이 언제나 같은 의미로 닿는 것은 아니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마치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듯한 순간이 많다.


얼마 전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한여름에 감기라니 이상하다 싶어 약국에서 키트를 사서 검사해 보니 코로나였다. 병원에서는 감기약 처방만 해주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옮기지 않으려 각방을 쓰고 수건과 식기도 따로 사용했다. 그러나 결국 아내도 코로나를 피하지는 못했다. 나보다 더 심하게 고열과 몸살에 시달리며 큰 고생을 했다.


아내는 팔과 온몸이 쑤신다며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같은 코로나 증상이라도 면역력이 좋은 사람은 덜 고생하는데, 당신은 면역력이 약해서 더 힘든가 봐요. 증상이 나아지면 운동 열심히 합시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적절치 못한 말이었다. 아내는 단지 위로를 받고 싶어 말을 꺼낸 것이었는데, 나는 내 기준에서만 판단하여 답한 것이다. 내 말이 사실이라 해도, 상대의 마음에는 상처와 오해를 남겼다. 부부간의 대화가 어긋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런 어긋남은 흔히 네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상보적 대화는 질문 의도와 상대의 심리 상태를 잘 읽고, 그에 맞는 답을 주는 것입니다.


상보적 대화 = 상대방의 질문·심리 상태에 맞춰 답함 → 대화 원활

교차적 대화 = 상대방의 기대와 다른 상태로 답함 → 갈등 발생


첫째, 질문–응답 불일치의 오해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라는 물음에 “난 아직 배가 안 고파”라고 답할 때, 질문은 선택을 원했지만, 응답은 상태를 말한다.


둘째, 정서–논리 불일치의 오해다. “코로나 때문에 오늘은 너무 고통스러워”라는 호소는 정서에 해당하지만 “평소에 체력을 길러 면역력을 키워야지”라는 대답은 논리를 말하여 위로가 아닌 벽이 된다.


셋째, 해석 차이의 오해다. “집이 좀 어수선하네”라는 말이 화자는 단순한 관찰이었지만 청자는 비난으로 들릴 때, 불필요한 갈등이 피어난다.


넷째, 관심–무관심의 오해다. 중요한 소식을 들려주어도 상대가 무심히 넘어가면, 말보다 더 큰 상처가 남는다.


부부 대화의 오해는 결국 서로 다른 초점을 두고 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오해를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징검다리로 삼는다면, 말은 다투는 칼이 아니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다.



< 평가하는 대화는 상처와 오해를 남긴다. >


우리는 흔히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무심코 판단하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이런 평가적 대화는 듣는 사람에게 상처와 오해를 남기기 쉽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넌 왜 그렇게 산만하니?”라고 말하면, 부모는 단순히 행동을 지적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부부 사이는 더하다. 서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쉽게 비난이 오간다. “당신은 돈 관리가 왜 그렇게 허술해?” 상대의 습관을 지적한 것이라 여겨지지만, 듣는 쪽은 인격 전체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


이 현상은 게슈탈트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Figure)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구성한다. 부모는 아이의 산만함을, 배우자의 소비 습관을 Figure로 삼지만, 그 외의 장점이나 노력은 배경(Ground)으로 밀려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선택된 지각이 절대적 판단처럼 표현되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오해로 이어진다.


결국, 평가적 대화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한 말이다.

상대의 행동 뒤에 숨은 맥락과 긍정적인 면을 함께 바라보려 할 때, 대화는 단절이 아니라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표지그림 설명: Elizabeth Langreiter (1964~ )

호주의 '엘리자베스 랭그리터'는 평면적인 캔버스 위에다 독창적인 기법으로 올록볼록하게 입체감을 주고 있다. 나이 마흔 넘어서 우연히 창작에 대한 욕구를 느껴 열정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끊임없는 실험과 새로운 접근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끌어냈다. 햇살 가득한 바다에 환호와 웃음, 행복과 기쁨이 가득하네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듯이 같은 바닷속에 각자의 방식으로 수영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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