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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골동품, 시민의 유산이 되다. 04

- 추모기증전에는 어떤 작품이 기증되었나 -(마지막 회)

by 올제

추모기증전을 준비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진주의 사학자, 예술가, 교수 등이 봉사하여 작품을 평가하고 해석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 말씀을 전해드리고 작품 복원과 전시에 열과 성을 다한 남가람박물관 관장님 이하 관계자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기증작품은

파성 설창수 선생님, 은초 정명수 선생님, 청남 오재봉 선생님, 도연 김정 선생님, 효석 조영제 선생님, 윤재 이규옥 선생님, 안재석 선생님, 창전 조원섭 선생님 등 서부경남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43점이었다.


파성 설창수 선생님 편

은초 정명수 선생님 편

그 외 작품(마지막 편)으로 나누어 연재한다.


1. 전시기간: 2022. 07.22. ~. 08.11.

2. 장소: 남가람박물관 (경남 진주시 내동면 칠봉산길 190)


추사체의 대가 서예가 도연 김정(金正) (1906~1999)은

조선말 국권이 침탈당하고 일본의 총독부가 설치되어 초대 총독(이토 히로부미)이 착임하는 해인 대한 광무 10년에 곤양면 성내리 128번지에서 출생하여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한학에 심취되어 중국으로 가서 어학과 서도에 정진하여 15년 동안을 외유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성파(星坡) 하동주(河東洲)로부터 추사체(秋史體)를 사사(師事) 받고 대가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 후 향리에 은거하면서 김정산방(金正山房)을 차려 후진을 기르고 작품활동을 했다.


약력으로는 경남 미전 서예 심사위원과 경남도전 서예분과 위원장을 역임했고, 경남도전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만년까지도 사단법인 추사체연구회(秋史體硏究會)의 고문으로 일했으며 94세까지도 산방(山房)을 지키면서 역필(力筆)을 보여주었다.

1977년 아버지께서 도연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집안의 가훈이다.

성실하고 근면하고 화합하라.

誠則無悔(성 즉 무회) 성실하면 후회할 것이 없고

勤則無欠(근 즉 무흠) 부지런하면 결핍할 것이 없고

和則無怨(화 즉 무원) 화합하면 원망할 일이 없다.


이 세 가지는 처세하는 데 필요한 강령이니

이것으로 장추남에게 훈계를 준다.

정사년 1977 봄에

도연은 쓴다.


아버지보다 32세 연상이셨던 도연 선생님은 당시 아버지가 자식 같아 보였을 것이다. 진주시의 문화예술을 위해 열정을 쏟으셨던 아버지를 무척 기특하게 보았던 것 같다.



효석 조영제趙榮濟 선생님은

조영제의 호는 효석(曉石)으로, 1912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서양화의 기법을 습득하였으며,

광복 전에는 진주의 대표적인 선전(鮮展) 수상작가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진주의 미술활동을 주도했다.


1984년 72세의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줄곧 진주에 살면서 촉석루와 함께 하는 진주인의 서정이 담긴 유화와 수묵담채화를 그렸다.


효석은 50여 년간 진주화단을 지키며 진주 이미지를 전국에 심고, 향토 문화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촉석루만을 그려온 촉석루 화가다. 효석은 반고흐의 터치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효석의 서양화에서는 고흐의 해바라기 잔영이 남아있다.


촉석루 화가인 효석 선생님께서 금호인쇄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으로 그려준 것 같다. 효석 선생님의 작품 중에는 대부분이 촉석루 그림인데 촉석루가 아닌 그림이 더 특별한 것 같다.

역시 효석 선생님도 아버지보다 26세 연상이어서 아버지가 자식처럼 보였을 것 같다.


야천 임재동(1906~?)

야천필묵서는 서부경남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향토 서예가 '야천 임재동 선생'의 '행초서'작품인데 맑은 시냇물 흐르듯 정말 유려하기 짝이 없는 필치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야천선생은 신라 때 고운 최치원선생이 함양태수로 부임하여 자주 올라가 노닐던 곳이라는 유명한 누각인 학사루에 주련을 쓰신 명필로 알려져 있다.


윤재 이규옥(1916~1999) 선생님은

고인이 된 작가는 한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민화적 화풍의 멋과 색으로 독특한 세계를 일궜던 화가이다. 이당(以堂) 김은호의 제자로 1970~90년대 청초 '이석우'와 함께 부산화랑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그였다.



안재덕 선생님

출생 1956. 사망. 1992. (만 36세)

분야 회화/판화/평면

수상

1980년 경상남도전 문공부 장관상 경력

한국수채화협회 회원

경상남도 미술대전 추천작가

신작전, 신상전 회원

색채의 연금술사라고 불렸던 위암으로 3회의 대수술 후 극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진주의 천재작가로 평가되는 예술가

대표작으로 '기억의 언저리-기다리는 마음' '산마르코 가는 길', '폼페이의 유적' 등이 있다.


<안재덕, 네덜란드 풍경, 1988>


蒼田 조원섭(曺元燮,)

창전 조원섭 화백은 전형적인 한국화의 색감과 틀에서 과감히 탈피해 새로운 기법과 발상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쇄업과 출판업을 하시 던 아버지의 주요 편집 출판의 대상은 촉석루였다.

그리고 약 30년 동안 충무공 김시민, 논개, 향토의 정기, 진주대관, 월암여적, 진주사투리 사전(장일영)등의 책을 편집·출판하였다.


이런 대부분의 책들은 팔리지 않아 도서관이나 공공기관 그리고 지인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재미난 일화로 아버지가 촉석루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향토 사학자분들을 너무 자주 만나러 다니고 하니 직원들 중에서는 "촉석루 다리가 하나 부러져야 촉석루 얘기를 안 하겠지~~" , "촉석루 때문에 금호인쇄 문 닫게 생겼다"는 농담들을 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아버지는 열정적인 사업가이면서 향토 사학자, 그리고 사진 예술가이자 진주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에나 진주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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