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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제 Aug 06. 2024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드리면서 -


  세상에서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감정은 그리움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할 때 그리움은 가장 가슴에 깊어 젖어든다.

부모와의 이별, 부부와의 이별 그리고 자식과의 이별...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는 8년 동안 많은 그리움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요즘은 힘들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말이 있다.


느그 아버지  와~ 내 데리로 안오노?

예전 같으면 미경아~ 하고 나를 부릴낀데”     


모든 인연은 우연으로 이루어지며 어머니와의 만남도 그러하였다. 만나고 보니 자식을 위해 누구 보다 더 헌신적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를 인연으로 만났던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어머니와 몹시 힘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신 이후 2번의 사고가 있었다.

주간보호센터에 등원하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이 부러질 뻔한 아찔한 사고와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119 응급차로 병원에 후송되어 MRI, MRA를 촬영한 일이 있었다. MRI 판독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 급성 뇌경색이 이미 진행되었고 치매정도가 말기에 가까운 상태라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고민이 깊어졌다.      

<커피를 무척 좋아하셨던 어머니와 마지막 찻집에 간 곳은 '커피미학'이었다. 일일초씨가 보도블록에 떨어져 꽃을 피웠다. 생명의 고귀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계속 밤 잠을 설친다. 수면제에 의존하는 일이 많아졌다.

협착증으로 극한 통증을 호소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걷기가 어려운 어머니가 화장실에 다녀오시다가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친 기억과

폭염 속에 기어이 에어컨을 끄고 주무시는 모습에 시원하게 자는 내 모습에 죄책감도 느끼고


도무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CCTV를 설치하였는데 어머니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늘 CCTV를 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볼 때 시설급여 등급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문제는 요양원 가는 것을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 일이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설득하였고 요양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5번이나 사전방문하여 마음을 열게 하였다. 어머니의 마음이 열린 결정적인 계기는 사진이었다. 이미 같은 요양원에 계신 적이 있는 안사돈 어른을 만났던 경험이 있었고 그 사진을 보여주면서 마음을 달래게 하였다. 아는 분이 계신다는 점이 큰 위로가 된 모양이었다.      

<요양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우리 가족은 같은 요양원을 5번이나 방문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하려 노력하였다.>

만남은 우연이지만 헤어짐은 결심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저 방 서랍에 통장이 있다. 네가 잘 관리해라, 이 집은 네가 와서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셔서 나의 가슴을 찢어 놓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완전히 어제 했던 말을 잊어버린다.      


어머니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 이런 기억이 있다.

어머니께서는 할머니가 치매 걸려서 집에 온종일 누워 계시고 똥 기저귀도 손으로 다 빨아서 보살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치매말기로 누워계시는 할머니의 변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치매 뒷바라지를 7년 동안 혼자 다 해내셨다.      


그리고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세탁기가 세상에 처음으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펑펑 우셨다고 한다. "이 세탁기가 진작에 나왔더라면 나도 수월하고 할머니도 좀 편했을 건데, 이리 신기한 물건이 와  이제야 세상에 나왔냐"라고 하시면서     


이런 세월을 보낸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어머니께서 할머니를 간병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머니가 병이 들어도 당연히 간병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그런 일을 강요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들을 국가에서 돌보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도 훨씬 도움이 되는 시스템인 것 같다.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요양원으로 향한다. 아버지의 묘비옆에는 어머니의 자리도 만들어져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말 많이 싸우셨지만 여전히 아버지와의 인연은 몹시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요양원에 가시는 길에 아버지에게 인사말씀을 드리고 어머니의 애정물품으로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같이 넣어 드렸다.      


솔직한 나의 속마음은 아버지는 살아생전 가족보다는 진주의 문화예술인과 더 많이 어울리셨다. 그래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묘비명에는 사랑합니다 라는 문구를 넣지 않기로 할 정도였다. 그 '사랑합니다'의 말은 브런치 스토리 에서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 설득하기 가장 힘든 네 번의 순간이 있었다

-지금의 아내에게 왜 내가 남편으로써 적합한 사람인지를

-아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를

-대학 선택은 대학명성보다 학과를 위주로 가는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요양원을 왜 가야 하는지를

성공한 설득도 있지만 실패한 설득도 있었다.  


이런 대화를 상상해 본다

내가 심각한 얼굴로 아내에게 우리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얘기를 하니

아내는 웃으면서 다정히 말한다.

“요양원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집 보다 낫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우리가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서 모시고 살면 어떨까요?”

나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반응에 깜짝 놀라 답한다.

“아니, 당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정말 그렇게 해 준다면 나는 당신을 평생 받들면서 살겠어요.”     

그러나 이런 대화는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는 없다. 


어머니의 요양원 입소는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고 어머니를 위하여 우리 가족을 위하여 모두에게 잘 한 결정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내가 정한 약속은 꼭 지키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한 달에 1번은 1박 2일로 어머니와 함께 소중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 몫까지 더 열심히 더 건강하게 더 바르게 살아보려고 다짐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다. 집착이다.  

내 마음도 치유가 필요하다.  

고통은 받아들이되, 딱 그만큼만 아파하자. 완벽한 인생이란 없다.

<어머니의 애착물품을 정리하는 중 제주도 추억의 사진들의 보여드리니  '이 사진 참 좋다, 하나 출력하자'라고 하신다. 같이 보내드린다. >

요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쌍 무지개를 보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한 마디 했다.

어머니가 나를 돌보아준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나를 돌보아준 당신이기에 당신이 아프면 어머니와 같이 정성을 다해 잘 돌보아줄 것이니 나만 믿어주세요.”  

어머니와의 세상 이별 연습을 미리 한 것 같다.

그리운 나의 어머니~  

정말 정말 열심히 살아주셨습니다.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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