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시낭송 -
예전에는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나의 생활이 무척 혼돈스러웠지만 요즘은 일요일에 어머니 면회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 어머니도 일요일만 기다릴 것 같다.
요사이 독감과 코로나의 유행으로 어머니와 함께 외출하여 식사를 하기 힘든다.
다른 요양원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에게 민폐를 넘어서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만들 우려가 있어 마스크 쓰고 면회만 다녀온다.
요양원에서의 짧은 면회 시간을 아껴가며
가족 형제간의 동영상 통화, 그리고 노래 부르기, 시낭송까지 하자면 30분의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오늘도 어머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갔다.
매주 일요일 면회하러 가는데, 서울에 사는 동생이 내려와서 토요일 함께 면회하고 외출을 했다.
아직 현직에 있는 동생은 가끔 한 번씩 지방을 오기 때문에 이번 설날에는 복잡한 시간을 피해 일찍 내려왔다가 당일로 서울로 돌아갔다. 우리 형제는 오랜만에 만나 어머니와 함께 맛있는 명태찜을 먹었다.
여사장님께서 어머니 연세를 물어보신다.
“40년생이어서 만 85세입니다.”
“그러세요? 보기보다 젊으시네요. 우리 집에는 최고령 단골손님은 101세이고 95세 할머니는 너무 건강해서 혼자 걸어서 식당에 오십니다. 맛있는 코다리찜 잡수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참 다정하고 인정 많은 코다리찜 여사장님이었고 그래서인지 더욱 맛집이었다.
95세 할머니가 혼자 걸어서 코다리찜 먹으러 오신다니, 우리 어머니와 비교도 되고 참 부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100세 인생이란 말을 많이 듣고 있지만 실제로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는 분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여자 86.4세이고 남자는 80.6세이다. 과연 나는 85세에 어떤 모습일까? 어머니만큼의 건강은 유지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두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복잡한 설날을 피해 아버지 산소에도 미리 가고 커피숍에서 차도 한잔 마시고 시 낭송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아들과의 만남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인데, 오늘은 아들이 두 명이나 찾아왔으니 아마도 하늘을 나는 기분일 것이다. 낭랑한 목소리로 시 낭송을 잘하신다.
우리가 낭송하는 시보다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어머니가 낭송하는 시가 훨씬 가슴에 와닿는다.
시와 노래를 한편 한편 고르는 것도 어머니와 연상이 되어서 더욱 내 가슴에 와닿는다.
< 순수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
- 딜런 토마스 -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인이여, 날이 저물어감에 화 내고
몸부림쳐야 하오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
-- 중략 --
하늘 높이 떠 있는 해를 붙잡고
노래하던 거친자들은
저물어 가는 해를 늦게 깨닫고 슬퍼하오니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죽음의 문턱에서 엄숙해진 이들의 눈으로도
그 멀어버린 눈도 유성처럼 불타고
명랑할 수 있음을 깨닫고
빛이 사라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
그리고 그대, 슬픔의 단 위에 선 나의 아버지여
당신의 성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길 내가 기도하오니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빛이 사라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
-1951년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 딜런 토마스-
그리고 다시 요양원으로 향한다.
면회를 다녀오면 아주 부드럽게 헤어짐이 가능하나, 외출을 다녀오면 어머니는 다시 요양원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요양원에서 정성껏 보살펴 준다 한들 집보다 더 편할 수는 없다.
“내 집으로 가련다. 집으로 보내주라~”
하시면서 차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자주 경험했던 터라 크게 당황하지 않고 어머니를 살살 잘 달랜다.
그러나 서울에서 내려온 동생은 제법 놀랬다고 한다. 너무 표정도 밝고 행복해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요양원에 다시 들어가자고 하니 차에서 하차를 거부하는 표정을 보고 당황한 것이다.
“날씨가 꽤 추워요, 어머니 다음 주에 또 올 터이니 다음 주에 또 만나요~”하고 살살 달래면서 요양원에 다시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나는 매주 일요일에 요양원에 면회를 다닌다.
마음은 무척 아팠지만 혼자서 5m도 잘못 걸으시고 넘어질 것 같은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가서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요양원에 모시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심정은 몹시나 무거웠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걸을 실 수만 있다면,,, 혼자서 걸을 수 있기만 해도....혼자 생활이 될 텐데..."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을 경험하신 어머니는 비참할 만큼 가난했던 1940년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당신께서는 못 먹고, 못 입고, 못 누리고 사시면서도 자식세대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신념으로 검소하게 절약하고 시 어머니의 치매 간병수발을 8년 동안 온몸으로 견디며 우리 자식들에게 이 만큼 살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정작 당신께서는 요양원에 가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도 언젠가 거동이 불편해지고 치매가 생기면 자식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요양원에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디 불효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잡아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할 시간이었다.
정인/윤종신의 노래 '오르막길'을 들으면서
다음 주에는 어머니와 함께 오르막길을 시낭송으로 한번 해보려고 한다.
완만했던 우리가 지내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 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P.S.: 표지 사진설명: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포르투의 야경이 떠오른다. 10월 말 늦가을의 포르투의 야경은 어머니와 연상이 되어 너무나도 아름다운 슬픈 멋진 장면으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포르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