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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제 Sep 02. 2024

"당신은 스승을 가졌는가?"

- 나의 선생님 이야기 1편 -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3분의 선생님이 계신다.


원망했던 선생님, 고마우신 선생님, 존경하는 선생님


국어사전적 정의로는 선생님의 본질은 '가르치는 것'에 있다면, 스승은 단순한 가르침을 넘어, 피교육자의 '행동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이런 분들을 우리는 스승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존경하는 스승님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 가슴속에 간직하는 존경하는 스승님>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사범대는 나의 진로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졸업장만 받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이었다. 당시 제법 큰 인쇄업으로 꽤 수입이 많았던 아버지도 내가 대를 이을 것으로 여기셨다. 그러나 3년의 세월이 흘러 군대 복무 후 다시 사범대학에 복학하고 사범대학에서 만난 은사님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교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게 했다. 대학 3학년 때에는 영어연극의 주인공으로 발탁하여 나의 끼를 발산하는 기회도 만들어주셨다.


물론 대학 시절 강의도 재미나는 명강의로 소문이 났지만, 스승님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각별한 제자 사랑이시다. 색맹으로 양말의 색깔도 맞추어 신지 못하고, 평생 운전도 못하시는 스승님이시지만 제자들의 이름과 특성, 가정환경까지 완벽하게 머릿속에 저장해 두어 스승님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 모두 탄성을 지른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되어도 만난 제자를 몇 학번에 누구이며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고, 남편은 누구,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줄 줄 늘어놓으시면 우리는 모두 다 이렇게 생각한다. 스승님은 ‘오타쿠’여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탁월하시구나 하고….     

 

< 고향이 대구이신 교수님은 제자를 졸업시킨 후에도 끊임없이 제자들과 소통하고 격려하셨다.>

 졸업 후에도 제자들에게 AS는 계속되었다. 주기적으로 불러내어서 인생 이야기부터 친목 도모까지….

 제자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신 스승님은 가족보다 제자들을 더 많이 챙기셨다는 가족들의 원성이 자자 했다. 가족보다 진주 문화를 더 사랑하신 아버지와 오버랩된다.      

  퇴직 후에도 집필활동, 대구백화점 평생교육원의 강사로 열정을 불태운 스승님은 연금과 강의료 등의 수업을 절약하여 동문의 친목을 도모하는 활동에 써 달라며 400백만 원을 기부하여 주셨다. 스승님이 주신 기금으로 동문은 해마다 정기 모임을 하고 교육 현장에서 제자 사랑을 실천하신 스승님의 정신을 배우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스승님께서는 문중의 대표로 선산을 가꾸는 일도 하셨는데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운전 못 하시는 스승님이 택시를 타고 홀로 선산에 가셔서 제초 작업과 물 주기 작업을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처럼 의지했던 스승님의 갑작스러운 불행한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어쩌다 대구에 가면 스승님의 추억이 너무 많이 묻어있다.   

   

벚꽃이 진 따뜻한 봄날,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고 훌쩍 떠나버린 스승님,

스승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가슴에 남아 있다.   

  

스승님께서는 스승이신 이규동 선생님을 닮고자 하셨고

우리는 스승이신 이도수 교수님을 닮고자 노력했지만

너무나 부족했다.     

스승님께서 떠나신 이후에도

스승님의 열정적인 삶을 본받고

스승님처럼 제자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

스승님처럼 가족을 챙기면서 남은 인생 열심히 살아보고자 한다.     

< 스승님은 퇴직후에도 평생 교육원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셨다. 성당에서 치른 장례식에는 많은 제자들이 동행하였다.>

 

살다 보면 나에게도 스승이 있었으면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가장 절실했을 때는 아마도 선택기로의 섰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그럴 때마다 스승님을 찾곤 했다. 물론 우리 모두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에 그의 선택이 꼭 나의 선택이 될 수 없음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고민하는 본질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경험한 진심 어린 충고가 필요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될까?

원망했던 선생님, 고마운 선생님, 생각나는 선생님….

영어 교사 시절에는 입시성적 위주의 교육이 중심이 되어서 나도 학생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지는 못했을 것 같다. 진로 진학 상담교사로 전향하고 나서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말하기 시작했다.

     

장자는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이라 했는데,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우리 의식 저 건너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높은 '마음의 안식처이다'라고 하였다. 바로 훌륭한 스승의 존재가 마음의 안식처가 아닌가 한다.


이 글을 통해서 나에게 상처받았던 학생이 있다면, 나를 원망했던 학생이 있다면 마음 깊이 사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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