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누리는 산책 한 잔

by 예일맨

6시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전과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깹니다. 출근할 때는 그렇게도 불편한 아침이었는데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의 아침 기상은 참 편안합니다.


일어나는 시간도, 일어나서 해야 하는 것도 다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땅콩이…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시간. 그가 유일하게 저를 찾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잠깐 예뻐해 준 뒤 나갈 준비를 합니다.


"딸랑딸랑"


목줄에 달린 방울이 흔들려 소리가 납니다. 아내와 아이가 깰까 봐 방울을 꼭 붙잡습니다. 땅콩이를 데리고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외출을 시도합니다. 이미 눈치를 챈 듯한 땅콩이는 소풍 가는 초딩처럼 들떠있는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기만 하면 부들부들 떨던 땅콩이가 제법 씩씩해졌습니다. 진동의 세기가 좀 약해진 것을 느낍니다. 아침 공기가 서늘해져서 그런지 오히려 제 몸이 살짝 떨립니다. 이제 떨림의 세기가 좀 비슷해진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제는 바닥에 은행도 몇 알씩 굴러다닙니다. 행여나 땅콩이가 밟고 냄새의 근원으로 의심을 받을까 봐 피해 갈 수 있게 유도해 봅니다. 역시 조심스러운 땅콩이는 제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냄새도 맡으려 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넓은 산책로에 들어섰습니다.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더니 이내 손가락 만한 흑갈색 덩어리 하나를 어럽지 않게 몸 밖으로 내보냅니다. 전 누가 볼까 재빨리 꼭꼭 싸서 감춥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작은 덩어리의 감촉을 느낍니다. 기분 좋게 따뜻하고 말랑합니다.


땅콩이는 할 일을 마치고 가벼워졌으니 제 일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코를 들이대며 냄새 맡기 바쁩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이쪽저쪽으로 저를 끌고 갑니다. 벤치에 관심을 두었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줄을 엉키게 합니다.


아주 조금씩 앞으로 갑니다. 동네 누나, 형들이 나 잘 다녀갔다고 안부 인사해 놓은 여러 종류의 기둥과 나무와 담벼락에 빠짐없이 꼼꼼하게 찾아갑니다. 자기 냄새도 아니고 시큼하고 비릿한 남의 냄새를 뭘 그리 찾아다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좋아하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땅콩이는 여러 개들과 함께 지내와서 그런 건지 다른 개들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지나가는 개를 보면 고개를 바짝 쳐들고 그 친구를 향해 저를 끌어당깁니다. 그리고는 친구의 반응을 가볍게 살핀 뒤 곧바로 엉덩이에 코를 가져갑니다.


계속 함께 할 수는 없기에 그 친구와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면 자꾸 따라가려고 합니다. 아껴주는 사람 가족들이 있지만 같은 눈높이에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친구가 그리운가 봅니다. 살짝 미안하기도 하지만 저녁에 놀이터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자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꼬드겨 봅니다.


땅콩이는 여전히 남자 어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아침 공기에 코가 간지러웠던 한 아재는 우렁찬 소리로, 사자가 포효하듯 재채기를 합니다. 냄새 맡다가 갑자기 들리는 맹수의 소리에 화들짝 놀란 땅콩이는 저에게 다가와 몸을 맡깁니다. 제가 쥐 띠여서 다행입니다.


반면 여전히 여성을 좋아합니다. 사뿐사뿐 걷는 여자분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리려고 합니다. 피해서 돌아가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분은 한 번도 못 본 것 같습니다. 거의 대부분 웃으며 지나치거나 좀 적극적이신 분은 한 번 만져봐도 되냐며 저에게 묻습니다. 참 부러운 능력입니다.


짧은 아침 산책을 이제 마무리해야 합니다. 출근은 안 해도 여전히 분주한 아침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갖는 책임감을 땅콩이는 알 바 아닙니다. 돌아가는 길에도 할 건 다 하고 가야 합니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킁킁…


그래도 저의 빨라진 걸음걸이에 땅콩이의 발걸음도 조금 더 빨라집니다. 가끔씩 제 얼굴을 쳐다보며 '아쉽지만 바쁘다고 하니 좀 양보할게요' 하는 것 같습니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친구 냄새는 꼭 맡아보고 싶지만 하는 수 없습니다.


산책을 마치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포기가 빠른 것인지 이제 일어나 있을 식구들을 빨리 보고 싶어서 그러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아파트 근처에 다다르면 출입구를 기가 막히게 찾아 재빠르게 들어갑니다. 아… 이제 아침 먹을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걸까요?


아침 산책 한 잔의 여유는 이제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잔소리가 난무합니다. 긴급한 물소리와 따뜻한 바람이 내는 무서운 소리로 가득합니다. 꽤나 시끄러운 시간들이 지나갑니다.


어느덧 모두 식탁에 앉았습니다. 땅콩이도 이미 식사 준비를 마쳤습니다. 저는 수저를 든 반대 손으로 날씨 앱을 켭니다. 온도를 보고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외투를 따로 챙겨야 할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강수확률을 확인하고 아내에게 말합니다.


"오늘 예보를 보니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하네"

"왜요, 여보, 우산 챙겨주려고?"

"아니, 땅콩이 오후 산책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