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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일맨 Jan 31. 2024

나한테 말 걸지 마

"아빠 뭐 해?"

"아빠 출근 준비하지"

"나한테 말 걸지 마"


"아빠 뭐 하냐고?"

"나갈 준비 한다니까"

"나한테 말 걸지 마. 나 아직 삐졌어"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먼저 물어봐놓고 대답하니까 말 걸지 말라고 심술을 부립니다. 사건의 발단은 어젯밤의 일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들의 눈가가 촉촉하고 입은 댓 발 나와 있습니다. 엄마가 보여주기로 약속한 영상을 안 보여줬다고 기분이 상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저도 아이에게 이제 자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니 불 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 되었나 봅니다. 아이는 씩씩거리더니 분에 못 이겨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겁나 짜증 나!"


늦은 저녁밥을 챙겨 먹던 저는 아이의 말에 화들짝 놀라 싸늘한 표정으로 분노에 찬 아이를 봅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뭐라고 했냐고?!"


아이는 아빠의 화난 큰 목소리에 얼어붙습니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다가는 또다시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그러나 꼰대 같은 아빠의 훈계는 끝나질 않습니다.


"그깟 영상이 뭐라고!"

"오늘 영상을 못 봐서 속상한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말을 꼭 해야겠어!?"

"너의 말이 습관이 되고 그게 결국 너의 삶을 결정하는 거야!"


평소에 생각하던 언어의 힘(?)에 대한 개똥철학이 툭 튀어나옵니다. 몇 분 지나 생각해 보니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지만, 아직 한참 어린 10살 아이의 투정을 갖다가 인생을 들먹인 것은 좀 오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 보고 싶어서 잔뜩 짜증이 나있는 아이에게 "말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교를 했다니…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말 걸지 말라고 심술부릴만합니다.


좋은 말도, 훌륭한 삶의 교훈도, 지혜도… 때와 상황과 사람에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냉철하고 그럴듯한 가르침보다는 사려 깊은 공감과 다독임이 먼저여야 된다는 생각이 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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