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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일맨 Jan 31. 2024

그녀가 다이소에 가는 이유

"다이소 좀 들렀다 갈게"

"왜 또? 뭘 또 사려고"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지만 아내와 전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아내는 맥시멀리스트, 저는 미니멀리스트입니다.


아내는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그렇다고 과소비를 하는 건은 아닙니다). 밤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슬쩍 쳐다보면 어김없이 쇼핑 중입니다.


보통 다음 날 필요한 것을 쿠팡, 오아시스, 컬리 등 여러 사이트를 통해 합리적으로 구매하려 애씁니다. 이런 아내와 사는 덕에 저는 물건 사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편한 것도 있지만 다툴 때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지금 꼭 필요하지 않고, 기존에 쓰던 다른 것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새것을 사는 것이 제 입장에선 참 못마땅합니다.


집이 그다지 넓지 않고 수납공간이 부족한 것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우리는 집을 넓히는 것보다 짐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는 게 더 낫다고 집요하게 잔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아내 입장은 다를 겁니다. 분명 기존의 것과는 다른 쓰임이 있기에 사는 게 좋다 판단하여 구입하는 것일 테지요. 게다가 그중 싼 것을 고르고 골라 샀을 거란 사실을 저도 잘 압니다.


요즘 아내의 페이버릿 플레이스가 있습니다. 서두에 등장하는 "다이소"입니다. 아이도 사고 싶은 갖가지 물건들이 그득하니 다이소 갈 때에는 둘이 쿵짝이 잘 맞습니다.


아내는 무엇에 하나 꽂히면 그곳에 가야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 집의 공간을 더 내어주기 싫어 실색을 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부피가 큰 것은 절대 사지 말라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합니다.


아내는 가끔 구매 리스트가 머릿속에 없는데도 뭐라도 보고 또 사러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아이와 함께 고터몰(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 가서 꽃과 화병을 사 왔습니다.


집에 와서 그것들을 보았습니다. 예쁘긴 하지만 고터몰에 갔다더니 역시나 하나 건져왔구나… 생각하고 가볍게 또 한 마디 던집니다. '집에 꽃병 있는데…' 더 이상의 말은 싸움을 부르기에 침대로 갑니다.


식탁 위 새 꽃병에 꽂힌 닫혀있던 꽃이 살짝 피어나려 합니다. 꽃 옆에서 화사한 아침을 먹은 뒤 아내와 길을 나섭니다. 요즘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고된 아내의 얼굴에는 "힘듦"이 묻어있습니다.


아내와 헤어져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문득 생각합니다. 힘들 땐 해소의 창구가 필요한데, 아내는 주에 한 두 시간 정도 필라테스 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가진 취미가 없습니다.


물론, 맞벌이에 육아를 하며 취미를 누리려 하는 것은 사치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유난 떨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필요한 것이지요.


다이소에 가는 것은 아내 나름대로 찾아낸 값싼 스트레스 해소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조금이라도 채워보려 하는 작은 노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아내가 다이소에 간다고 하면 그 속에 담긴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려고 합니다. 더 큰 해소의 욕구가 보인다면 오히려 더 넓고, 더 많은 물건을 취급하는 곳에 함께 가자고 해보려 합니다.


잔소리보다는 이런 마음과 노력이 오히려 그녀를 다이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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