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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ul 31. 2024

판포리로 가는 길 - 월급봉투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밖을 보는데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이불집 솜털처럼 소리 없이 내려 쌓여 가는 중이었다. 창문 바로 앞에 푸른 사철나무 위에 쌓이고 멀리 가지 많은 큰 나무도 눈꽃이 되었고, 오르막 산길에도, 내려다보이는 지붕에도 하얀 눈이 쌓였다. 눈은 높은 하늘에서 내리며 소리도 없고 부서지지도 않고 바람결에 날리지도 않으면서 높이 곱게 곱게 쌓여 온 세상을 물감이 필요 없게 만들며 장관을 만들어냈다. 창문을 통해 허락 없이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도 반가울 지경이었다.

  병동으로 첫 출근이 시작되었다. 영숙이와 기숙사를 나와 병동으로 가는 길은 마당 하나 가로지르는 거리였다. 하얀 캡을 머리에 고정시키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하얀 신발을 신은 두 신참이 쌓인 하얀 눈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에 찍히는 발자국을 신기한 듯 계속 찍어대며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내게 영숙이는 눈을 처음 보는 사람 같다며 웃었고 빨리 가자며 재촉했다. 

  

  간호과장 수녀님은 병동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수간호사님이  오리엔테이션 내용에 대해 설명하며 같이 동행하며 병동 내의 구조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고 출근해서 해야 되는 일과 퇴근할 때까지의 하루 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첫 출근이면서 낯선 곳에서의 시작이라 듣고는 있지만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숙소로 돌아와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동동거리며 병실마다 쫓아다니며 환자들 주사 놓고 투약하고 불만 있는 환자들에게 처방에 대한 설명을 하다 보면 길고 긴 하루도 영숙이와 함께 퉁퉁 부은 다리를 서로에게 보이며 퇴근시간을 맞이한다. 

  근무하면서 지켜본 영숙이는 총명하고 눈치가 빨랐다. 아무튼 지겨운 오리엔테이션 기간도 끝이 나고 정식 발령을 받게 되었다. 긴 근무시간과 피곤함으로 한 번도 외출하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영숙이와 옥천 읍내를 돌아다니며 시장 구경도 하고 수제비도 사 먹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영숙이는 고향이 영동이라고 했다. 영동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안쪽으로 가야 되고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오빠와 남동생이 있다며 가족 얘기도 간단히 덧붙였다. 제주에서 자란 내가 영동이 어디 붙어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옥천하고 그다지 멀지 않는 곳이라고 설명을 하면서 도무지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올 수가 있는지 몹시 궁금해했다. "응,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왔어."라고 대답하자 배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영숙이는 잘 웃었다. 바람이 불어도 웃고 해가 떠도 웃었고 벌레가 기어가도 웃었다.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에 원서를 내고 일차에는 합격하는데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며 속상해하면서 얘기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영숙이는 공부를 잘했던 것 같다. 나는 서울이건 대형병원이건 외지에 연고가 없었기로 방을 구해 자취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해서 취업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시골이지만 기숙사에 살 수 있다는 이곳이 맘에 들기도 했고  사실 봉사활동이네 연극 활동이네 하면서 관리를 못해 학점도 별 볼일 없었다. 총기 있어 보이고 같이 일할 때는 말귀도 잘 알아들으며 선배들의 신뢰를 일찍 밭는 영숙이가 살짝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영숙이가 본 나의 첫인상은 많이 후했다. 너무나 예쁘고 세련되어 보여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어이없을 때 나오는 웃음소리가 내 입에서 새어 나오며 우린 소리 내어 많이 웃고 옥천 읍내를 구석구석 휘저어 다녔다.

  "우리 이제 정식 직원이 됐으니까 이번 달은 월급이 많겠지?" 영숙이가 물었다.

  "그렇겠지. 기대된다."

  "월급 타면 쓸데가 많아." 영숙이가 중얼거리며 시무룩했다.

  야근을 끝내고 행정실에 들러 수녀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사인을 하고 누런 월급봉투를 받아왔다. 월급봉투에는 이런저런 내역을 차례로 기재하고 실수령액이 적혀있었으며 누런 봉투 안에는 현금이 두둑했다. 나는 학교 졸업하고 집을 떠나 처음 내 노동력을 인정받아 받게 되는 월급봉투에 감격했다.  첫 월급을 타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기숙사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침대 위에 걸터앉아 쏟아낸 돈다발을 세고 또 세어보며 흐뭇해했다. 잠도 안 자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한 푼도 안 빼고 집으로 봉투째 부쳤다. 부모님께 나도 이렇게 독립했다고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도로 시외전화를 하기 위해 전화국으로 가서 시외전화 신청을 하고 한쪽 편 의자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에 내 차례가 되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 부스로 들어가 수화기에 대고 엄마의 목소리를 확인한 후 월급 부쳤다고 통화했다. "고생했다. 보내주는 돈은 네가 시집갈 때 밑천으로 쓴다고 아버지가 적금 넣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안 해도 되니까 필요할 때 쓰세요."라고 말은 했지만 아마도 내심 든든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키워준 부모님이셨기 때문에 진심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살면서 나는 수입을 부모님께 맡기는 건 아니라고 하게 되었다. 전화국 직원에게 시간을 계산하여 통화료를 지불하고 나왔다. 

  그 후 나의 월급 날 첫 행사는 내 기본 용돈을  빼고 받은 급여를 집으로 부치기 위해 우체국을 향하는 일이 되었다.

  영숙이는 첫 월급을 받고 선물을 사서 부모님이 계신 집을 다녀왔다. 영숙이나 나나 첫 월급을 타서 집안에 얼굴을 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금의환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월급날이 될 때마다 영숙이는 짜증 내는 일이 잦아졌다.

  "왜 그렇게 속상해?"

  "월급날이 더 속상해. 월급날 아침부터 동생이 빚쟁이처럼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영숙이 동생은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 부모님이 자기에게 동생을 맡으라고 했다고 하며 돈은 제대로 벌지도 못했는데 돈이 나갈 일만 있다고 하며 속상하다고 했다. 

  첫 월급은 딱 한 번만 웃을 일을 가져다주었다. 그 후 월급날이 되면 둘이는 조금씩 우울해졌다. 본인 이름으로 된 월급봉투를 손에 쥐었으나 내 돈이 아니었으며 손에 집은 돈을 마음 놓고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우리들의 누나며 언니며 집안의 살림 밑천 노릇을 해야 하는 서글픈 딸 들이었다. 아무튼 월급날이 되면 기숙사 휴게실을 찾은 우리 언니와 누나들은 울고 웃고 하면서 기숙사는 잠시 시끌벅적했다.

그러는 동안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또 겨울이 돌아오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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