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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Aug 07. 2024

판포리로 가는 길 - 만남


  신입 직원이 되어 병원 일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면서 일하는 재미가 생겨가기 시작했다. 때로 실수 연발해서 간호과장 수녀님께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조금 지나면 잊어버리고 동료들과 깔깔거리며 다녔다. 환자나 보호자가 친절하다고 칭찬해 주고 '백의의 천사'라는 호칭으로 부를 때는  괜스레 어깨에 뽕이 생기기도 했다. 집 떠나왔어도 가족같이 챙겨주는 기숙사 선후배들의 가족 같은 정이 있어 하루하루가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며 지냈다.

  섭순이 언니는 본명보다 데레사라는 세례명으로 불리는 걸 좋아했다. 사람들이 이름에 대해 자꾸 물어보니 엄마가 딸만 내리 낳아서 섭섭해서 지었다고 하면 열에 아홉 사람은 곧이들었다. 섭순이 언니는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는데 살짝 허스키하면서 교양미가 있었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정갈하게 써 내려간 그때그때의 글들이 가득 채워져있는 공책을 가지고 있었다. 재분이 언니는 키도 크고 날씬했는데 복도를 걸어 다닐 때는 사뿐사뿐 소리 없이 걸어 다녔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일이 없이 공주처럼 살 것 같은 하얗고 긴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으며 말할 때는 소근 거리듯이 얘기했다.. 

  수 선생님은 기숙사에 살지는 않고 결혼해서 예쁜 딸을 하나 두고 밖에서 출퇴근했다. 시어른이 딸을 봐주시는데 출근할 때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울어대는 어린 딸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큰 언니 같은 수 선생님은 가끔 병동 일로 인해 간호과장님이 대노하여 큰 소리를 낼 때는 방패막이가 되어 우릴 지켜주시느라 대신 많이 혼나기도 했다. 간호과장 수녀님은 얼굴은 예뻤으나 화를 내기 시작하면 병원의 개미 새끼들도 숨어 나오지 않았다. 때로 회진 왔다가 수녀님의 큰 소리를 듣게 된 의사들은 애국자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당시에는 가족계획이 국가정책인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병원이 큰 편이 아니라 몇 안 되는 멤버들이  집안에 큰언니 작은 언니 같은 끈끈한 정으로 엮여져 돈독(敦篤) 했다. 

  소녀 같은 사감 수녀님은 야근 후에 쓰러져 잠이 든 내게 조용히 다가와 "쯔쯔. 아침 먹고 자야지."라고 속삭이듯 부드럽게 깨워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했다. 가끔 입실시간이 늦어질 경우에 수녀님의 기도 시간과 맞물려 얘기할 기회가 없을 때면 "영화 보고 올게요. 현관문 열어주세요."라고  쓴 메모를 벗어놓은 수녀님의 신발 속에 집어넣곤 하였다. 사감 수녀님은 나이 많은 나의 큰 언니이자 엄마 같은 분이셨다.


  기숙사에서 산등성이에 철 따라 옷을 바꿔 입는 키가 큰 나무들이 숲속의 산장 같은 곳에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람 손이 닿지 못할 높은 곳에 만들어진 둥그런 새 둥지는 그 안에서 자라고 있을 어린 새가 궁금하긴 하지만 쉽게 볼 수는 없어도 아름다웠다. 겨울이면 소리 없이 쌓인 눈 바닥에 뒹굴고, 팔뚝만 한 눈사람을 만들어 기숙사 입구에 문지기처럼 세워놓았다가 출입하는 직원들에 의해 걷어차이고는 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눈을 흠뻑 뒤집어쓴 성모상이 안쓰러워 목도리를 감겨 주었는데 어느 날 목도리가 없어져 하얀 성모상은 추위에도 견뎌내야 함을 알았다.


  앞만 보고 경쟁하듯 살며 팍팍한 생활에 여유라곤 없이 찌들어 버린 나를 발견할 때면, 이때의 시간들이 커다란 화폭에 그려진 수채화처럼 눈앞에 펼쳐져 흡족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내게도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이 있어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지 아니하고 마음이 가물어질 때마다 잠긴 호수를 열어 촉촉하게 해주고 있으니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는 나만의 무형의 재산인 셈이다. 



  어느 날 원장수녀님이 내게 면담하자며 부르셨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더듬기 시작했다. 병동에서 너무 떠들거나 입원환자들에게 불친절했었는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원장님 실로 찾아가 노크했더니 반겨주신다. 평소에 원장님은 근엄해 보이는 모습으로 가까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분이셨다. 차를 내주며 나의 개인 생활에 대해 조목 조목 묻기도 하시고 좋은 얘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양 선생은 수녀가 될 생각은 없어요?"

  "네?"

  "양 선생은 딱 수녀 스타일입니다."

  갑자기 재채기가 와서 캑캑 거렸다.

  "원장님. 전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개신교 신자입니다."

  "상관없어요. 개종하면 되니까요. 지금 되라는 건 아니고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갑자기 수녀가 되기를 권하는 원장님의 말씀에 차를 마시다 갑자기 사레가 들릴 뻔했다. 하긴 어렸을 때는 예쁜 수녀가 되고 싶었다. 만일 성당에 일찍 발을 디뎠다면 수녀복을 입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친구 따라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서 수녀가 되고 싶었던 어릴 때 꿈은 사라진 지가  오래다. 

  "원장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전 결혼해서 애 낳고 지지고 볶으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인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어릴 때 꿈을 이룰 기회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으나 나의 사명은 집안의 맏이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더 우선이었기로 만일 수녀가 된다고 하면  집안의 난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수녀 스타일이라고?" 난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병동 일 인실에 허리 디스크로 중년의 아줌마 한 분이 입원했다. 아직은 신입이라 야근을 자주 했는데 남편인 보호자가 간병을 위해 병실로 퇴근하면서 잘 웃지도 않고 별로 말이 없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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