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희 Oct 04. 2024

그림일기

제주 2년 그림일기. 현정원 에세이. 북인. 2020


현정원 작가는 아버지가 군 복무를 하던 원주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와 결혼했고 시부모와 한집에 살며 아들 둘을 낳았다. 남편이 유학한 일본에서 잠시 직장 생활을 한 것과 상업 과목으로 잠깐 기간제 교사를 한 것 외에, 결혼생활 대부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해 2009년 『현대수필』로 등단했다. 2012년 첫 수필집 『엄마의 날개 옷』을 출간했고 이듬해 『정경 문학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단편소설 『유리산 누에나방』으로 제12회 '삶의 향기 동서 문학상' 동상을 수상했다. 2012년, 2013년, 2016년 '에세이스트 작품상'에 선정되었고 2018년 1월 제주로 터전을 옮겨 2010년 봄, 두 번째 수필집 『아버지의 비밀정원』을 출판했다.

  현재, 『제주 2년 그림일기』 발간과 함께 종아리뼈 골절을 겪으며 그리기 시작한 그림으로 〈57th 갤러리〉에서의 첫 전시 '나나-너나-나'를 준비하고 있다.


  작가는 서문의 제목을 '천천히 벗은 몸 입기'로 하고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눈이 착시현상을 일으켰는지 '천천히 옷 벗기'로 보였다.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다시 제목을 보니 '천천히 벗은 몸 입기'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일기 쓰기를 옷을 벗는 작업이라고 하면서 왜 작가는 제목을 '천천히 벗은 몸 입기'라고 했을까를 생각한다. 작가는 일기 쓰기를 통해 일상의 에피소드를 통과하며 자신을 창작해 가는 과정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나'라는 진실에 감수성이라는 옷과 연민의 악세서리, 반성의 스카프를 두름으로 천천히 벗은 몸을 걸쳐가고 있음이다.

  

  책은 4부로 나뉘어  일상과 자연, 가족과 따뜻한 이웃들의 다정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1부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까만 집'을 첫 제목으로 시작했다. 땅을 깊이 파서 집을 짓고, 까만색의 돌들로 둘러싸이게 지은 집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캔버스를 연상시킨다. 2부에서는 '월령리 손바닥선인장'을 제목으로 시작했다. 월령리에는 손바닥선인장이 많다. 밭에 부러 심어놓기도 하지만 강한 생명력은 길가에 아무렇게 버려져 있어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봄이 짙어 갈 무렵부터 연노랑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선인장 꽃을 바라보는 마음을 묘사해 놓았다. 3부에서는 '모든 꽃은  젊다, 이재무'로 시작했는데 신문에 실린 '이재무' 시를 읽으며 느끼는 감상을 적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전복죽 끓이기'라는 제목으로 편찮으신 아버님을 위해 전복죽을 끓이는 장면을 그려냈다. 편하게 끓여진 죽을 사 올 수도 있었지만, 죽을 쑤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죽이 끓여지는 동안 돌아가신 어머님과 친정 부모님을 아련하게 떠올린다. 


  160일 치의 글을 모아 놓은 일기를 빛의 속도로 읽어버리기에는 아깝다. 그림을 그리듯 섬세하게 글로 써 내려간 일상이 매일을 사는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일상이 예사롭지 않은 일임을 생각하게 한다. 사방 10cm의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칼라가 있는 화폭을 같이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선사했다. 


이전 01화 헤세를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