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민음사. 2024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다섯 살에 자살을 기도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다 이십 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패터카멘친튼』, 『수레바퀴 아래서』, 『인도에서』, 『크놀프』 등을 발표했다. 스위스 몬타놀라로 이사한 1919년을 전후로 해서 커다란 위기를 겪은 헤세는 『데미안』,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발표하며 '내면으로 가는 길'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헤세는 이 무렵부터 그림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며 음악과 더불어 평생지기가 되었다. 이어서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동방순례』, 『유리알 유희』 등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하는 작품들을 발표했고, 194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인 몬타뇰라에서 영면했다.
옮긴이 박병덕은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전북대학교 명예교수이며 『귄터 그라스의 문학세계』, 『독일현대작가와 문학이론』(공저), 『카프카 문학론』(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싯다르타』, 『파우스트 박사』, 『군중과 권력』, 『나의 생애와 사상』, 『소유냐 존재냐』, 『새로운 황제들』 등이 있다.
헤세의 수필을 읽다가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퍽퍽했던 마음에 물을 주듯이 촉촉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소설을 읽어볼 생각으로 구입했다. 학생 때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로〉라는 소설을 읽은 뒤로 세월이 흐른 지금 헤세를 새로운 기분으로 만났다. 이 책은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며 종교 안에서 정신적으로 성장되는 과정을 그렸다. 평소 익숙지 않던 종교를 다룬 내용이라 리뷰를 쓰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시도를 해 보았다.
싯다르타는 책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유복하고 존경받는 바라문의 가정에서 태어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벋는 존재이다. 그는 부모의 사랑이나 '자신의 그림자' 같은 죽마고우인 고빈다의 사랑도 영원토록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낀다. 그는 자기 존재의 내면 속에 삼라만상과 하나이자 불멸의 존재인 아트만이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모든 것을 비우는 일, 갈증과 소망과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그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집을 떠나 사문 생활을 하면서 싯다르타는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배운다. 그는 명상을 하고 고통과 굶주림과 갈증과 피로와 권태를 극복함으로써 자기 초탈의 길을 간다. 명상이나 단식 수행이라는 것도 인생의 고통과 무의미함을 잠시 동안 마비 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자아로부터의 구제인 열반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는 고빈다와 함께 사문 생활을 청산하고 길을 떠나 마침내 고타마를 만나게 되고 그의 설법을 듣게 된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아무리 각성자라 할지라도 깨달음의 순간에 체험한 것을 말이나 가르침을 통하여 전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열반은 이성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심오한 통찰 속에서 체험 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며 편력의 길을 계속한다.
그는 세속 생활을 하면서 기생 카말라에게서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끊임없이 생의 유희에 몸을 바치는 인간들에게서 재산도 얻고 권력도 얻는다. 그러나 태어남과 죽음과 다시 태어남이 반복되는 영원한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빠져 들어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는 뱃사공 바주데바의 조수가 되도록 한다. 물은 서로 상이한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어디에서나 동일한 것으로 생의 흐름에 대한 비유로서의 강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을 얻으며 노년이 되어간다. 카밀라에게서 자신의 아들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싯다르타는 오직 주는 것으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여 붙들려고 애를 썼으나 그럴수록 반항하며 뛰쳐나가는 아들을 붙들 수가 없다. 결국 영원한 존재자이자 영원한 생성자인 강에 대한 명상에서 그의 오랜 탐색의 목표이자 참다운 지혜에 대한 통찰이 마음속에서 원숙하기에 이른다.
나와는 다른 종교를 다룬 면도 없잖아 있겠으나 많이 살아버린 내가 공감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다. 삶의 목표에서 방황하거나 자아를 찾기 위해 고뇌하는 분들이라면 혹시 나와는 다른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많은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고, 너무나 다양한 삶을 사느라 분주한 우리에게 고전이 주는 책을 접하므로 한순간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