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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Oct 30. 2024

판포리로 가는 길 - 세발자전거

  

 사택의 정문 밖으로 나가면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와 우거진 숲을 연상케 하는 나이 든 나무들이 군데군데 서있었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미군이 땀을 흘리며 뛰어가는 모습을 볼 때도 있고, 마주 오는 미군을 만날 때도 있는데 그들은 항상 "하이!"라고 하거나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런 생소한 환경이 어색했지만 자꾸 접하면서 우리도 응대하는 법을 익혀가기 시작했다.

  헌병들이 지켜 서있는 초소를 못 가고 되돌아오는 거리가 산책코스로 적당했다. 걷다 보면 미군들을 위해 지어진 운동장에서 그들은 항상 야구를 하고 있었는데, 야간에는 조명대를 켜서 운동장을 환하게 밝힌다. 군데군데 지어진 그들의 사택은 단독으로 이층을 지어 깔끔 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택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을 누리고 있는 미군들을 보니 우리가 미국에 얹혀사는 기분이 들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다. 우리 땅에 그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환경에 발을 디디고, 시중에는 대중화되지 않은 피자와 햄버거를 즐겨 먹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조명대의 전기 요금을 지불하면서 때때로 우리도 그들과 같은 무리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힘없는 나라가 겪는 비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초록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웃고 떠들며, 피자와 햄버거를 사다 먹었다.


  우리 애들은 호기심이 많은 편에 속했다. 큰애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이며 연년생이다. 큰애는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걸 즐겨, 산만하지 않은가 살짝 염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손에 책을 쥐여주면 몇 시간이고 없는 애처럼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동네 전집이 있는 집에는 수시로 들락거려 읽어대는 바람에, 그 집 엄마의 미소 뒤에 있는 눈총을 모른척해야 했다. 인물이 나오는 줄 알았다. 

  딸은 아직 어설픈 걸음을 못 벗어나 번개 같은 오빠를 쫓아가기에는  무리였다. 오빠가 밖에 나갈 낌새를 보이면 노란 장화를 신고 현관에 서서 대기했다. 장화는 신고 벗기에 편해서 비 오는 날, 맑은 날 구분할 필요 없는, 실용성을 갖춘 신발이었다. 노란 장화는 아장거리기도 하고 통통 걸어가는 딸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어느 초 여름날 저녁 무렵의 일이다. 밖에서 놀던 아들이 들어왔다. 뒤따라 딸이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혼자 왔다.

  "동생은 왜 안 오니?"

  "몰라. 나 다른 애들이랑 놀다 왔어요."

  아들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 줄 생각하고 말끝을 흐렸다. 아들을 대충 씻기고 간식을 주면서 먹고 있으라고 하고는 딸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애들이 놀만한 공터를 찾아다녔는데, 저녁 무렵이라 애들은 다들 집으로 갔는지 동네가 조용했다. "은비야!"라고 우리 애를 부르는 소리는 내 귀에만 들렸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여기저기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사택 초소에 도움을 청했다. 키는 이만하고 통통하고 양쪽으로 머리를 땋고 햇볕에 그을려 누르께한 여자애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초소의 헌병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퇴근하는 동네 아저씨들이 종종 대고 있는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가까운 이웃 아저씨는 걱정스럽게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는데, 더욱 당황한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할 수가 없어 앞뒤 두서가 없이 주절거렸다. 남편도 소식을 듣고 초소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여기저기로 전화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저녁노을이 멀게 보이는 산 위에  넘어갈 듯이 걸쳐 있었다.

  "저기 누가 오는데요."

  사람들이 누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우리 애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미군 지프차가 우리 애 뒤에서 속도를 맞춰 따라오고 있었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우리 애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모여 두런거렸다.

  남편과 나는 달려가서 애를 끌어안았고 지프차에서 미군이 내리자 "땡큐", "땡큐"를 연발했다. 우리는 "땡큐. 굿바이"를 연신했지만 미군은 가지 않고 누군가를 찾았다. 그리고 미군이 뭐라고 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초소의 헌병이 짧은 영어로 주고받더니  "통역관을 불러달라고 합니다" 하더니 또 전화를 했다. 잠시 후에 통역관이 왔다. 통역관과 미군이 몇 마디하고 통역관이 전해줬다. 

  "어린애가 자전거 타고 미군부대 안으로 들어왔길래 한국인 사택으로 인도했다. 애가 놀랄까 봐서 보조를 맞춰서 천천히 뒤따라왔다."라고 통역을 했다.  어린애는 부모에게 인도되었다고, 통역관에게  확인받고,  미군은 웃으면서 우리 딸에게 손을 흔들어"굿바이"라고 하며 지프차에 올라탔다. 딸은 영문은 몰라도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차의 시동을 걸어 출발하는 미군에게 "빠이빠이"라고 하며 손을 흔들어 밝게 웃으며 인사를 보냈다. 

  아빠의 팔에 안겨 집으로 돌아오는 딸은, 자전거 타고 멀리멀리 다녀온 얘기를 계속 종알거리며 엄마의 얼굴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잠시 후에 옆 통로의 엄마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이 자전거 우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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