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를 가졌다. 남자와 누님 내외가 자리를 했고 나와 부모님이 함께했다. 횟집에 앉아 인사를 나누는데 아버지와 남자의 매형은 밝고 정중하여 자리가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았다. 매형은 동생의 어머님이 연로하시고 맏사위가 되니 집안의 대표로 왔다고 하며 집안을 소개했다. 아버지는 그러시냐고 하고 먼 길 오시느라 애쓰셨다고 인사했다. 아버지는 서로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이 자리를 약혼식으로 하자고 제의했고 누님과 매형도 기꺼이 수락하여 식사를 마쳤다. 매형은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님과 의논하고 날짜를 정해 알려 오겠다고 했다. 약혼식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사돈인 매형과 아버지가 점잖아 보이는 인상을 가져 서로 비슷해 보였다고 흐뭇해하셨지만 말씀이 없는 아버지는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말씀이 없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으며 아마도 앞으로의 일을 미리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후로 우리 뜻대로 생각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남자에게서 결혼 날짜를 알려왔다. 여름을 보내고 선선해진 10월이라고 했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이라고 좋아하셨다. 결혼하기로 결정되긴 했지만 집안이 힘들어졌다고 모든 것을 생략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가벼운 그늘이 스쳐갔다. 햇빛이 좋은 날 어머니는 낡은 문짝을 뜯어내고 뒤틀린 문살을 바로잡아 하얀 창호지를 바르고 집 한 편에 말렸다. 살고 있던 집을 잃은 후에야 맏딸을 시집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몹시 속상해했다. 잔디가 깔린 너른 마당이 있던 옛집을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동안 동네 이곳저곳 큰일 있을 때마다 찾아다닌 생각을 하면 억울해서 툴툴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내 딸도 드디어 혼사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들뜨게 하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손님을 맞이할 장소를 생각하다가 창고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에 집은 작았다. 당신이 가장으로 있는 이 집안에서 최대 큰일을 치러야 한다. 서글픈 경사이기도 했다. 창고에 세워 둔 목재를 이용하여 테이블을 만들고 긴 의자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흐르는 땀을 닦아가면서 망치로 못을 박고, 나무판을 자르고 이어붙였다. 아버지의 입은 굳게 다물어있었다. 버릴 건 버리고 치울건 치우면서 정리해놓은 홀은 나름 훌륭했다. 더위는 사그라져가고 결혼 날짜는 하루하루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신부 측에 있어 혼인잔치는 결혼식 전날이 된다. 제주에서의 결혼 풍속에 의하면 결혼식 날 신랑이 부신랑을 대동하여 신부를 데리러 신부집으로 찾아오는데, 신부가 현관 밖으로 나가면서 신부집의 혼인잔치는 끝을 맺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집안을 시끌벅적하게 했다. 어떻게 됐든 집안의 경사였으므로 찾아온 사람이나 맞이하는 사람이나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오늘 하루는 그 누구도 우리 집에 빚독촉을 하지 않았다. 제주에서의 결혼 풍속이 다르다 보니 신랑은 짊어지고 와야 할 함 대신에 007 가방을 들고 저녁에 신부집에 도착했다. 신랑 신부는 왁자지껄 모여있는 집안 친지들에게 일일이 인사드리느라 허리가 구부러질 지경이었다. 친지들은 제주도 사투리를 섞어 덕담을 해주고는 있으나, 알아듣는지 마는지 넋을 빼앗긴 신랑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신부는 같이 웃을 뿐이었다.
결혼식은 신랑의 본가가 있는 충청도 홍산의 동네 작은 예식장에서 치렀다. 리모델링한다고 칠한 페인트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여 작은 예식장이 터질 것 같았다. 본가에서 피로연을 준비했고 멀리서 참석한 신부 측 가족들을 대접했다. 신부 측 부모님과 작은 아버지 내외분이 자리를 같이 했고 신랑 측 몇몇 가족들이 같이 앉아 인사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한복으로 갈아입은 신랑신부가 떠나는 부모님 일행을 배웅하느라 버스정류장까지 걸어나갔다. 신부는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가족들을 보내드리는데 신부가 웃고 있다고 어머니는 섭섭해했다. 나중에 찾아갔을 때는 "그래도 눈물을 퍽퍽 쏟아내는 것보다 마음이 좋더라"라고 하셨다.
신랑신부는 어딜 가나 소개하고 인사하고 소개받고 인사했다. 폐백은 신랑 측의 일가가 식구가 많아 끝없이 절을 해야 했고 신랑이 신부를 업고 방안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폐백은 끝났다. 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을 앞에 놓고 앉아있었다.
"신부가 노래 한 곡 하면 좋겠네"
언제나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은 하객은 있었다. 신부는 거절하지 않고 일어났다. 신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부를 쳐다보았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좌중이 수줍어하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노래하는 신부를 보고 어이없어하며 박수 치고 웃었다. 신랑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가족들의 얼굴들을 향해 같이 손을 흔들었다. 대단한 행사를 치렀다. 버스는 설악산을 향해 출발했다. 신랑신부는 그제야 사람들 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신랑 신부는 주변을 둘러보며 아는 얼굴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식 두 번만 했다가 까무러치겠다고 신랑은 웃으면서 말했고 신부도 덩달아 웃었다. 주위에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마음이 편안했다. 차창 밖으로 해는 기울어져 가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웠던 하루를 뒤로한 채 신랑신부를 태운 버스가 구불거리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신랑신부는 쏟아지는 피곤함으로 서로의 머리를 맞대어 깊이 잠이 들었다. 덜컹거리는 버스가 둘의 머리를 상하좌우로 흔들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본가로 들어섰다. 집은 조용했고 형님 부부가 우리를 맞았으며 어머님은 누님 댁에 가셔서 계시지 않는다고 했다. 잔치 끝난 집에 의례 그렇듯 집안의 가장인 아주버님의 동네 친구 몇 분이 놀러 오셨다. 호탕하신 아주버님은 누구에게나 반갑게 대했다. 신랑 신부가 여행지에서 돌아왔다고 우리를 소개했고 우리는 또 인사를 했다. 아직도 인사는 끝나지 않았다. 아주버님은 동네 친구들에게 말했다.
"커피 한 잔들 해야지."
"커피는 뭘."
아주버님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나는 커피를 타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를 찾았다. 처음 들어와 보는 주방이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형님이 들어왔다.
"뭐가 필요한가?"
"커피를 준비하려고요. 동네분들이 밖에 계셔서요."
"그럴 것 없네. 자네 시숙이 벌써 커피를 불렀네."
"네?"
나는 밖으로 나와 머쓱한 자세로 서 있었다. 잠시 후에 보자기에 쟁반을 싸 들고 보온병을 들고 온 다방 아가씨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커피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