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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Oct 23. 2024

판포리로 가는 길 - 보호자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았다. 새로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살펴보니 보호자란에 남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여태까지는 아버지가 내 보호자였다.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부를 수  있는 분이었다. 이제부터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남편을 부르라고 나라에서 법으로 지정해 주었다. 주민등록증을 앞뒤로 여러 번 보면서 내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다른 남자의 이름이 신기하기도 하고 든든했다. 젊은 남자이니 아버지보다 오죽 나를 잘 지키고 돌볼 것인가.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생겼다.

  대구에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사택은 4층 건물의 아파트로 되어있고,  여자들은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면 통로별 혹은 남편의 선후배라고들 모여 차를 마실 기회가 생겼다. 고향이 어디냐부터 시작해서 신원 조회처럼 질문이 오고 갔는데 보통은 남편을 기준으로 대답해야 했다. 나는 나를 기준으로 대답하는 실수 아닌 실수를 종종 할 때가 있었다. 여기에는 나는 없고 남편만 있었다. 남편의 고향, 남편의 선후배, 남편의 학교 기수, 남편의 상관 등이 부인과 동등했다. 

  남편의 학교 선배, 남편의 직장 상관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고분고분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 눈에 띄는 행동에는 구설수에 올라 대가를 치렀다. 여기에서는 유행도 빨랐다. 어떤 집에 녹차를 준비했으면 전 가구에 녹차를, 어떤 집에 예쁜 소품이 장식되어 있으면 집집에 비슷한 소품이 놓였다. 

  상관은 아랫사람을, 선배는 후배를 가족보다 더 챙기며 같이 있는 동안은 각자의 일가친척보다 더 따뜻하게 지내기도 했다. 때로 남편의 승진을 위한 가식도 없잖아 있었을 것이지만 가식적인 친절과 말투도 자꾸 행하다 보면 진심으로 변하기도 한다. 뻣뻣했던 나도 점차 부드럽고 상냥해졌다. 

  

  형제간의 우애라면 남편의 누님이 절대 지지 않았다. 홀로되신 친정어머니와 동생들을 앉으나 서나 걱정하고 챙겼다. 세상에 저런 누님이 있을까 싶었다. 나도 내 동생들에게 저렇게 챙길 자신은 없었다. 공무원인 매형은 장모님을 자식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속정을 드러내지 않는 내 친정 식구들의 뚝뚝하고 무표정한 감정을 몸에 배고 살았던 내게 남편의 가족들은 서로 친절했다. 보기 드물게 친절했다. 

  집안일에 누님이 앞장서서 일을 처리하니 자연스럽게 누님의 목소리가 컸지만 그래도 형제들은 불만 없이 잘 따르고 순종적이며 고분고분했고 거부란 있을 수 없었다. 집집마다 사는 형편이 다양하고 사연도 많기 때문에 어떤 모습이 으뜸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사는 동안 친절 뒤에 가려진 이기심과 싸우느라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누님은 집으로 친정식구들을 자주 불렀다. 특히 우리를 자주 불렀다. 형님네가 왔다고 부르고, 어머님이 오셨다고 불렀다. 우리가 가면 근처사는 형제들을 불러들여 밤새 고스톱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를 쉽게 놔주지도 않았다. 정스러운 누님은 동생들이 모이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항상 맞는 말을 하니 대꾸할 말도 없었다. 매형은 일찍 주무시기 시작했고 형제들은 밤새 판을 벌렸다. 진한 형제간의 우애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웃에 사는 것이 아니라 대구에서 가야 하니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왕복 서너 시간 걸렸다. 점점 부르는 횟수가 잦아지기 시작하면서 전화가 오면 가벼운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스톱 치면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새벽이 가까이 될 때도 있었는데 무릎 아프다고 끙끙대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쉬지 못한 몸으로 다음날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나는 점점 누나네 집에 가는 일이 염려되기 시작했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어야 하는 일에 주말 시간을 갖다 바치면서 사생활을 포기해야 하고, 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 나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저렇게 첫애를 날 때까지는 형제간의 우애라고  고분고분했고 둘째를 가질 때까지 효도라는 이름으로 입을 다물었다. 효도와 우애를 앞세워 무조건적인 복종에 나도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누님 댁으로 오라는 전화가 이제 반갑지 않았다. 돌아올 때 싸주는 음식도 고맙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도 무섭기 시작했다. 남편은 방관자였고, 효심 깊은 아들이었고, 우애 좋은 누님의 예쁜 동생이었다. 

  남편과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남편은 철저하게 남의 편이었고, 나를 무시하는 일이 잦아졌고, 결과가 안 좋은 일은 내 탓이었다. 서로 대화도 할 줄 몰랐고 하려고도 안 했다. 나와 상의한 일도 누나를 만나고 오면 아무렇지 않게 뒤집었다. 마음으로는 곪아가는데 치료법을 알 수가 없었다. 점점 남편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신뢰하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것이, 나를 비참하고 만들었다.  

  누나는 벼르고 있었던 것처럼 점점 함부로 했고, 나를 보면 "남편 없이는 살아도 동생 없이는 못 산다"라고 했다. 나는 "동생을 왜 결혼시켰냐"라고 되묻고 싶은 말을 꿀떡꿀떡 삼켰다. 누나는 멀리서 찾아간 우리에게 나를 보자마자 "자네도 맛이 갔어"라는 말로 내 자존심을 건들면서 시작했다. 내가 이 집에 왜 있어야 되는지, 하루에도 보따리를 싸고 싶은 마음이 열두 번씩이었다. 갈 데가 없었고, 무엇보다 우리 애들을 엄마 없는 천덕꾸러기로 만들 수가 없었다. 내 편이 아닌 남편은 뒤에서 겪는 자기 여자의 모멸과 외로움을 알지 못했다.

  결혼해서 한 남자를 의지하고 살며, 자식을 두고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가게 되면 행복할 거라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해도 믿지도 않을뿐더러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며 나를 더욱 형편없이 취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싸움을 할 줄 몰랐고 큰소리는 더욱 낼 줄을 몰랐다. 그저 잠잠한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남편은 내게 함부로 해도 문제가 없는 줄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남편도 나를 무시했고 누나도 어머니도 함께했다. 내 속에 분노가 자라기 시작했다. 

  결혼해서 5~6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상을 물리고 난 후의 일이었다. 동네 엄마들 모임의 일로 전화통화하는 중에 남편이 자꾸 끼어들었다. 결국 전화를 끊고 나서  큰소리가 나왔다. 본인과는 상관도 없는 일이었고 상대방과는 약속시간과 장소를 결정해서 다른 엄마들에게 알려줘야 할 일이었다. 나는 차근차근 말을 못 하고 여태까지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때려 부쉈다. 방바닥과 거실이 난장판이 되었고 나는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애들 둘이 어두운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비췄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 폭발은 애들을 추스를 여유를 갖지 못했다. 

  나는 뛰쳐나와 방향 없이 걸었다.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앞서걸어오던 남자가 내게 인사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누군지 알 수도 없었다. 남자는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가던 길을 걸어갔다. 나는 그때부터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어둑해지는 길을 정처 없이 걸었다. 산책 중인 동네 엄마가 내게 말을 붙여 보려고 하다가 말없이 돌아섰다. 

  걷다 보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든 멈춰 서야 했다. 문득 오늘 목사님이 출장 가서 사모님 혼자 계실 거라는 생각을 했다. 목사님 댁에 초인종을 눌렀더니 사모님이 나오셨고, 얼굴을 보자마자 서러운 눈물과 함게 소리 내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사모님은 내가 울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둘이는 밤새 얘기했고, 같이 기도했다. 사모님도 나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워  새벽을 맞이했다. 

  뛰쳐나갈 때는 용감했으나 집으로 들어갈 일이 아득했다. 외롭고 슬픈 내 마음 한 줌 둘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몹시 무거웠다. 

  현관문을 열고 살며시 들어갔다. 겁나게 조용했다. 희미한 새벽빛으로, 난장판을 생각했던 거실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깨지지 않은 화장품 몇 개가 구석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안방에는 모기장을 쳐서 가운데 애들이 자고 있고 남편은 안방 문 입구에 이마에 팔을 올려 누워 있었다. 자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늘어진 모기장을 들춰서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과는 저 멀리 떨어진 반대편에 허리와 다리를 뻗고 누웠다. 뻣뻣하고 피곤했던 몸이 편안한 잠자리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어디 갔다 왔어?"

  남편이 저음의 목소리로 조용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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