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by 옥희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2024


한 강 1970년 겨울에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 사회』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 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대산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에밀기메 아시아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르웨이 '미래도서관' 프로젝트 참여작가로 선정되었다. 2024년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읽게 된 동기

최근에 『소년이 온다』를 읽은 다음이라 노벨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해도 당장 읽기에는 망설여졌다.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 진정되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의 소설 한 권을 읽은 후에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과연 우리나라의 글로 써 내려간, 우리나라의 작가가 쓴 책이 몹시도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용

『작별하지 않는다』, 작가인 주인공 경하가 꿈을 꾸면서 시작한다.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눈 내리는 들판에 묘비처럼 등성이까지 심겨 있다. 묘지가 여기 인가, 생각하는 순간, 발아래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덤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조급한 마음으로 꿈에서 깬다.

경하는 그것이 그 무렵에 꾸었던 다른 악몽들과 같이 지난 책에서 다룬 학살에 대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인선이는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같이했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로 내려간 인선이는 그곳에서 목공 일을 하는 중이다. 경하와 인선은 함께 그 꿈과 연관된 작업을 영상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 후 몇 해 동안 힘든 시기를 겪고 삶을 회복하는 사이 계획은 생각처럼 진척되지 못하면서 경하는 그 꿈을 잘못 이해했다고 여긴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경하는 인선으로부터 병원으로 와달라는 다급한 연락을 받는다. 인선이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하여 서울로 와서 봉합수술을 받은 것이다. 곧장 병원을 찾은 경하에게 인선은 제주 집에 가서 혼자 남은 새에게 물과 먹이를 주어 살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내일 가겠다는 경하에게 지금 바로 가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한다.

경하는 인선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서둘러 제주로 향한다. 때마침 제주는 온통 폭설과 강풍으로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질적인 두통까지 겹쳐 시달리며 인선이네 집을 향한다. 경하는 겨우 마지막 버스를 붙든다. 그러나 인선이네 집은 정류장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있어, 눈길을 헤치고 산을 오르던 길에서 눈보라와 어둠에 갇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미끄러지면서 눈 속에 파묻힌다.

생각지도 않은 사고를 당하면서도 경하는 인선의 집을 찾아간다.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캄캄한 인선의 집에서 촛불을 밝혀 그림자와 함께 어스름한 빛을 함께한다.


경하는 인선의 집에서 칠십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얽힌 가족사를 알게 된다. 이유 없이 온 가족을 잃고 십오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아버지, 한날한시에 부모와 동생을 잃고 오빠의 생사도 모르는 채 언니와 둘이 남겨진 어머니의 이야기. 수십 년을 오빠를 찾는 일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의 이야기를 외딴 집의 촛불 아래서 듣는다. 찾아야 할 사람을 애타게 생각하는 마음이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 경하에게로 함께 넘나든다.


감상

정작 제주에서 자란 세대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잘 모른다. 그동안 함묵하고 있던 세대들은 세상을 떠났든지 살아있는 세대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도 충분하지는 않다.


p225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듣어 먹었을 거 아닙니까?


발췌된 증언이 오래전에 들었던 아버지의 내용과 흡사하여 몇 번 읽었다. 사실 아버지가 들려줬던 내용은 아니었다. 우리는 중산간 쪽에 살지는 않았으나 서귀포에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있는 정방폭포가 있다. 폭포 끝에 사람들을 줄 세워 놓고 총으로 사살하여 몇 년 동안 폭포 밑에 보말, 소라 등의 해산물을 먹지 않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작 가족을 잃고 수십 년을 뼈에 사무치게 잊지 못하고 살아왔던 가족들은 '왜'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없이 살아왔다.


p197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어렸을 때 처참하게 가족이 해체되는 기억이, 부모 형제를 찾아다녔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어둠이 밀려올 때마다 듣는다. 어떠한 모습이든 만남이 있기 전까지 작별할 수 없다.

어쩌면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조용히 닫혀버린 국가폭력에 의해 벌어진 인권유린의 실상을 두려움으로 하여금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는데 쉽지 않게 했다. 묻혀버린 우리의 과거사, 노벨문학상을 거머쥠으로 내부로부터 우리 인권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총 칼이 아닌, 펜을 들고 이겨냈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한 강이 쓴 지극한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1화청춘, 이 한마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