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다운 어휘로 말하고 싶다.

어른의 어휘력

by 옥희


어른의 어휘력. 유선경. 앤의 서재. 2023.


어른의 어휘력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한 것은 상상, 공상, 망상, 일곱 살 때부터 멈춘 적 없는 책 읽기와 글쓰기, 세상구경.

세상과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에 "왜?"라고 묻고 그 근원과 영향에 대해 독자적으로 사유하고 음미하고 추론하기를 즐긴다. 1993년부터 KBS와 SBS, EBS 등 라디오 방송에서 드라마, 다큐멘터리, 시사, 문화, 음악 프로그램을 맡아 매일 3천 자 이상의 원고를 집필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면서 어휘력 부족이 단순히 국어능력 문제가 아니며 얼마나 일상에 커다란 불편을 가져오는지 깨닫는다. 지금 우리에겐 '어른다운' 어휘력이 필요하다. 작가는 어휘력의 쓸모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 책에 담았다.

2004년부터 책을 집필했으며 또 다른 책으로는 《감정 어휘》, 《나를 위한 신화력》, 《문득, 묻다》,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소심해서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등이 있다.


작가는 어휘야말로 모든 인문의 기본이라 한다. 읽다가 줄이 그어지는 부분을 필사해 보았다.


책을 읽으려면 상당히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게 도리어 당연하다.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그래도 읽는 게 좋을까요?"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는 지금 이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한다.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담을 수 있는 그릇과 같다.


"이해하지 못해도 읽으면 좋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못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잊고 살다 어느 순간 찾아옵니다. 이제 이해일 수 있을 때가 된 것이지요. 그때 다시 읽으면 기막힌 이야기가 됩니다."


어휘력이 부족하면 생기는 일


어휘력이 부족하면 지시대명사를 많이 동원하고 활용 범위가 넓은 낱말을 남용한다. 어휘력이 부족하면 말이나 글에 지체 구간이 생기고 늘어진다. 표현하고 싶은 용어나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것을 설명하느라 정작 하려던 말이나 글을 중단하고 곁가지 서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말이나 글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미 용어나 낱말을 아는 사람에게는 쓸데없고 지루하다.


정확한 어휘를 구사해야 하는 이유는 해석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나의 세상은 언어의 한계만큼 작거나 크다.


어휘력, 관심만큼 줄고 관심만큼 는다.


어휘력은 관심에서 출발한다.


사물과 대상에 관심이 없다면 어휘력은 늘리기 쉽지 않다.


어휘력, 감정을 품위 있게 제어할 수 있는 능력


인간에게 극한의 스트레스를 주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정당한 분노임에도 억누를 수밖에 없어 생기는 억울함은 모멸감과 비루함을 동반한다.


눈물은 나를 변화시키지도 상황을 바꾸지도 못한다. 말 안 하면 왜 우는지 남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사람은 자기 세계밖에 있는 상대의 언어를 '당장'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반대말은 주장이다.


언어적 직관의 중요성을 이해하라.

사물에 쓰는 말과 사람에 하는 말을 구분하자.

인격은 연출이 불가능하다.


언어가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우리는 어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가졌다.


공감, 어휘력을 키우는 조건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 보면 나 역시 끊임없이 똑같은 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들은 소름이 끼치도록 낡았고 평범하며 수백만 번 사용하여 닳고 닳은 것들이다. - 파스칼 메르시어


공감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이 아닐 수 있다고, 사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일도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고 오랜 훈련과 철학적 경험을 필요로 한다.


'좋아요'나 '♡'는 공감의 표시가 아니라 반응의 표시이며 많이 누른다고 공감 능력은 늘지 않는다. 물론 어휘력도 늘지 않는다.


영혼을 일으킬 수 있는 말

"많이 힘들지요? 그래도 지금만큼 힘든 시절은 다시없을 거예요. 나중에 큰 사람이 되면 지금을 잊지 말고 꼭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세요.


누군가의 오늘을 보고 함부로 내일을 예측하지 말자. 고작 한 두 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못된 습관이다.


고정된 정의에서 벗어나면 어휘력을 확장할 수 있다. 원래 그런 거라 하는 것들을 속속들이 뒤집으면 고정관념의 실체가 드러난다. 자신이 가진 지독한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P249 어휘 '아름답다'를 음미하다.

한편으로 아름다움은 낡고 닳은 어휘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아름다운 일을 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며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 것. 많은 사람의 꿈이 아닐는지. 그러나 꿈과는 별개로 누가 그런 식으로 문장을 쓰면 나는 빵점을 줄 것이다. '아름답다'는 어휘는 햇살 좋은 오후, 해변을 거닐다 발견한 입 꾹 다문 하얀 조가비 같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부귀했는지, 헌신적이었는지, 출중했는지, 행복하고 즐거웠는지, 보람 있었는지, 뭐가 어땠는지 구체적인 정보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아름답다는 어휘의 잘못이 아니다. 본디 뜻이 이러하다.


아름다움에 기준을 들이대면 폐해가 발생한다. 아름다움은 세상의 온갖 소란 속에 잊고 지낸 진실을 찰나의 빛처럼 일깨워 준다. 자칫 허무나 비관으로 빠질 수 있는 '생의 유한성'을 지혜롭게 견딜 힘을 준다. 아름다움은 희귀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태어난 것은 모두 죽으니 그 죽음의 개수만큼 흔하디흔해야 한다.

인연도 그러하다. 언제 누가 훔쳐 가거나 잃어버리거나 할지 모른다. 물건은 발이라도 없지, 사람은 발까지 달렸다. 인연이 우리 사이를 잇는 동안 내게 생긴 가장 좋은 것을 나누고 닳도록 사랑하자.

다음을 기대하지도, 기약하지도 말자.


감상


'입에서 나오는 것이 다 말이 아니다, 노트에 쓰는 것이 다 글이 아니다'라고 알려주고 있다. 우리말을 쓰고 있으면서 우리말에 대해 무책임하게 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습관처럼 쓰고 있는 잘못된 어휘는 제대로 된 어휘를 알아야 고칠 수가 있다. '의식을 가져 말하고 쓰자'라고 새로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말을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 가기 위한 자세는 올바른 말과 글을 쓰는 데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가 아니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필독서라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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