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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Dec 12. 2023

기다려봐

 성미 부부는 애가 없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났는데 집안에 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시골에 내려가면, 어른들은 애 얘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모처럼 내려온 큰아들 내외가 맘 상할까 되려 눈치를 보기도 한다..

 성미는 길을 가다가 배부른 여자가 지나가면 넋 놓고 쳐다보다가 볼일을 잊고 오기도 했다. 그런 날은 집에 돌아와도 일이 손에 안 잡혀 생각 없이 모로 누워 있을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 아기 백일이니, 돌잔치 등은 모른 척 넘기지는 않는다. 

 아침에 아파트 정문 입구에는 젊은 엄마들이 올망졸망한 어린애들을 손잡고 서서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고 있다.

성미는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그 시간은 피해서 간다. 웃으면서 인사는 하지만 부딪치기는 싫다. 애들을 보면 예쁘다고 한 마디쯤은 해 줘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이쁘지도 않은 애들에게 인사치레를 하고 싶지 않았다.

 

 성미는 요즘 들어 부쩍 젊은 엄마들과 마주치는 걸 피하고 있고 그런 자신이 점점 싫어졌다.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 잔주름이 더 또렷이 보였다. 전에는 안 보이던 새치도 몇 가닥 보였다. 활달한 성격이라고 하는 성미도 한숨 쉬는 횟수가 조금씩 늘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속을 섞이거나 성미에게 무관심하여 섭섭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아침에 남편을 출근 시키고 나면 전 같지 않게 초점 없는 눈으로 밖을 쳐다볼 때가 잦아졌다. 같이 다니는 미숙이와 산책 가는 것도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다 보니 이제 부르지 않는다. 미숙이는 고등학교 친구다. 살림에 흥미도 없어졌다. 아침에 간단한 설거지와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소파에 드러누워 생각 없이 TV 리모컨만 붙들고 있다. 

 서른을 넘기면서 결혼한 성미는 이제나저제나 하다 보니 곧 마흔을 앞에 두고 있음이 살짝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친구 모임도 키즈 카페에서 만나야 하고, 성미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도 곧 학부형이 될 거라고 우는소리를 하면 듣기가 싫다.  처음에는 성미에게 조급해 하지 말라던 친구들도 이제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성미 남편이 서울로 교육차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남편은 친정에라도 잠시 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성미는 친정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딸 때문에 '근심'이라고 쓰인 엄마 얼굴을 보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침저녁 전화 올 때는 "약은 잘 먹고 있느냐?"가 인사다. 친정엄마는 용하다는 한의원에 성미를 끌고 가서 한약도 지어다 주기를 몇 차례다.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면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가는 출장이지만 주말에는 올 수 있다고 한다. 성실한 남편은  혼자 있을 아내가 염려되기도 하고 아직은 별 불만 없이 애틋하다. 출장 가기 전에 여유로운 시간을 만들자고 우울해 보이는 성미를 데리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직원이 주문을 받고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가 나왔다.

 "요새 기운 없어 보여." 남편이 고기를 씹으면서 성미를 쳐다보았다.

  성미는 말없이 먹고 있다.

 "가거든 몸조심해" 성미가 대꾸했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아내의 말투에서 오히려 침울해 보이는 분위기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공원 긴 의자에 둘이 앉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깊어가는 가을 날씨가 공기조차도 가볍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부부는 외출이 오랜만이었다. 지난여름은 너무나 더웠다. 실내에서는 에어컨을 틀 수가 있다고 하지만 밖에 나오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언제 여름이 지났는지 생각이 안 나네. 날씨가 너무 좋다 그지?" 남편은 성미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남편의 말에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게 된 성미가  "응." 하며 짧게 대답했다.

 집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했던 성미도 초저녁 밤의 오늘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공기였다.

 다음날 아침, 출장용 캐리어 가방에 갈아입을 속옷이며 세면도구, 정 장 한 벌 등을 챙겨 넣었다. 남편은 주말마다 다녀갈 것이므로 많이 챙겨 넣지 말라고 했다. 성미는 불안한 것보다는 낫다며 꾹꾹 채워 넣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부부는 서로 몸조심하라는 같은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남편은 성미 등을 다독거리며 쓰다듬는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남편의 차를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성미는 출장 준비하느라 흩어져 있는 남편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일상적인 출근 모습에서 벗어나니 할 일이 많아져 바빠 보였다. 분주한 모습이 오히려 생기가 돌았다.

 주방의 설거지며 청소기 돌리는 것이며 오늘은 동작이 빠르고 약간 생기가 돌았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더 많았지만 일찍 끝내고 커피를 내려 거실 소파에 앉아 옆에 있는 탁자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소파에 앉은 성미가  TV 리모컨을 찾는 대신 미숙에게 전화했다.

"미숙아, 오늘 괜찮으면 산책하고 점심 같이할래?"

 "나야 좋지만, 웬일이니?" 

 친구 미숙이가 의아해하면서 되물었다.

 "그냥, 본지 오래됐잖아." 미숙은 그러자며 흔쾌히 대답했다.

 남편이 정상적으로 출근할 때와는 달리 주말에 다녀가면 갑자기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다가왔다. 

 

 둘은 물길을 따라 뻗어있는 산책 코스를 천천히 걷고 있다. 반대편으로 이어폰을 끼고 뛰는 사람도 스쳐가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라도 지나가지만 서로 관심들은 없다. 

 성미와 미숙은 "오랜만에 걷는다"라고 시작해서 일상 얘기로 들어갔다. 다른 때라면 "애들이 말을 안 들어 죽겠다"라는 푸념 조의 얘기도 듣기 싫었겠지만 오늘은 들어줄 만 했다. 걷다 보니 점심때가 되어 가끔 가는 보리밥 집으로 향했다. 점심때라 그런지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맛있게 먹고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여 앉았다.

 "밥을 급하게 먹었는가 봐. 요즘 자주 체하는 것 같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성미가 말했다.

 "혼자 있으면 몸을 아껴야 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병원 가서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아." 

 미숙은 부드럽게 말하며 웃었다

 성미는 앞에 놓인 커피를 반도 못 마시고 둘은 자리를 떴다.

 

 미숙이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도로변에 있는 동네 병원으로 들어갔다. 

 접수대에서 간단한 신상과 증상, 마지막 생리일을 물었다. 이 달을 걸렀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정확한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이름을 부른 후 진료실로 들어가 의사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일단 가임 기간이니 소변 검사를 통해 임신 여부부터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의사가 말했다.

 "네." 성미는 짧게 대답하고 화장실에서 검사를 위한 소변을 받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은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컵에 담긴 소변을 받아 갔다.

 잠시 후에 진료실에 서 성미의 이름을 불러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마다 남편은 빨랫감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남편이 오는 날은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부산스럽다. 혼자 있을 때는 적당히 끼니를 때우느라 제대로 밥상을 차리는 법이 없었다. 식빵을 뜯어 먹거나, 쿠키 한 조각에 커피 한잔 넘길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식사 준비를 제대로 하려니 잔치 치르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 같지 않은 성대한 밥상이 부부를 기분 좋게 했다. 남편은 만찬이라며 얼굴이 환해졌고, 성미는 그런 남편의 얼굴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고 더불어 배불리 먹었다. 차와 과일 접시를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남편 옆에 앉았다. 남편은 스포츠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한다. 성미는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진료받던 날 의사는 성미에게 임신이라는 소식을 알려 주었다. 성미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소식인데 왜 흥분이 안되고 지나치도록 차분한 지 본인도 모를 일이었다. 산부인과를 찾아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의사는 임신 3주라는 진단을 진단을 내렸다. 너무나 조용하게 한 주를 보내면서 남편에게 어떻게 소식을 알릴까 이리저리 궁리했다. 조금 흥분되고 설레며 기다린 주말이다.

 "당신이 이제 아빠가 되나 봐." 성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응." 하고 남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남편의 의외의 반응에 성미가 당황했다.

 " 3주래 ."

"응. 뭐라고?" 남편이 성미를 쳐다보았다. 이제 성미가 자신이 생겼다.

 "임신 3주래. 당신이 아빠가 된다고 했어." 성미가 큰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남편은 과일을 먹던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으면서 정말이냐고 물었다.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성미도 눈물이 났다. 성미 남편은 말없이 성미를 끌어당겨 어깨를 감싸 않았다. 서로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그동안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어찌 아내뿐이고, 어찌 남편뿐이겠는가.

 잠시 후에 진정된 성미와 남편은 다음 주말에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자고 하고 기쁨의 조용한 밤을 보냈다.

 

 다시 한 주간이 지났다. 

 여느 때처럼 성미는 남편을 보내고 다시 아침 산책을 나갔다. 

 바깥공기가 다른 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풀 한 포기, 늦게 핀 꽃 한 송이 한 송이 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길 옆의 노란 루드베키아 가지를 만지고 있을 때, 학생들 몇이 웃고 떠들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성미가 짧은 비명을 질렀고, 자전거를 탄 학생들은 세차게 페달을 밟으며 이미 저 멀리 빠르게 가고 있었다. 

 루드베키아 덤불 사이로 쓰러진 성미가 선뜻 일어서지 못했다. 산책로를 걸어오던 여학생이 빠른 걸음을 걸어 성미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학생이 물었지만 어딘가 아프긴 한 것 같은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학생에게 응급실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응급실에서 연락을 받고 친정 엄마가 찾아왔고, 친정엄마는 성미 옆에서 성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성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성미를 3일 동안 친정엄마가 지켜보다가 친정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성미에게 푹 쉬어야 한다면서 국도 끓여놓고 더러 반찬도 해 놓고 가셨다.

 아기가 유산됐다는 얘기를 또 해야 하다니,,,,,,.

 밤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지?"

 "우리 아기 잘 크고 있어?" 남편의 질문에 성미는 아무 말이 없다. 저쪽 전화기에서는 왜 그러냐고 자꾸만 묻는다.

 성미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애가 유산됐어. 미안해." 

 저쪽 전화기에서 반응이 없다. 한참 후에 저쪽 전화기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봐! 내가 더 튼실한 놈으로 다시 만들어 줄게."

 공중전화 부스에서 수화기를 떨어뜨리며 성미 남편은 주저앉아 어린에처럼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흐르는 눈물로 인해 헛손질을 몇 번 하고서야 수화기가 걸렸다. 몸으로 밀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휘청 거리며 걸어가면서도 어린애처럼 우는소리를 내었다. 성미에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내게도 세상을 얻을 수 있는 이런 행운을 가져 볼 수 있음을 얼마나 기뻐했던가.

 기뿐 순간이 손에 잡아보지도 못한 채 연기처럼 지나갔다. 성미 남편은 누구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어둑한 길에 지나가던 행인이 흘끔 쳐다보았다.

 

 성미는 전화기 너머 씩씩하게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가 어쩐지 슬프게 들렸다. 슬프기는 성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슬픈 마음 한편에 한줄기 빛이 보이는걸 느꼈다. 내게도 애가 찾아오고 싶어한다고 생각이 되었다. 오히려 나를 찾아와줄 우리애를 반가이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얼마 후에 성미는 하얀 헤어밴드를 한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천천히 밀면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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