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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Dec 05. 2023

외가

단편소설

 나는 맏이다.

 월요일 조회 시간이 되면 학생회장이 단상에 서서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이다.

 그러므로 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집안에 맏이로 태어난 것이다. 내가 노는 곳에는 항상 동생이 딸려 있다. 막내는 태어나서 걸어 다닐 때까지 내 등짝에서 내려와 본 적이 없다. 가끔 학교도 같이 갈 때가 있다. 오후 반일 때는 맡길 곳이 여의치 않아서다.

 내 동생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앞집의 작은 엄마는 밭일 갈 때면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를 조용히 부를 때가 있다. 어린 사촌을 업고 과수원에 가시면서 만화책 몇 권으로 날 유혹했다. 밭에 가서 일하는 동안 어린 사촌을 봐 달라는 것이다. 틈만 나면  만화가게에서 살다시피 했던 나는 만화책은 강력했다.

 가지고 간 만화책을 열 번도 더 보고 나서도 작은 엄마는 일이 안 끝났다. 나는 애 보는 맏이였다.

 그런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동생들도 모자라 사촌까지 애보기를 감당했다. 가끔 동생들이 내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아 내가 먼저 울어 버린 적도 있다.

 

 어느 날 엄마가 외가에 제사가 있다고 다녀 오라며 버스비와 보자기를 손에 쥐어 주셨다. 그러면서 당부하기를 막내는 학교 안 다닌다고 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하셨다. 

 여동생 둘을 데리고 한참을 기다리다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차장은 인당 십원을 계산하고 삼십 원을 달라고 했다. 어찌나 무섭고 험악하게 얘기하는지 주눅이 잔뜩 들어 막내 얘기를 뱉어보지도 못하고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말았다.  억울해서 말도 못 하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포장이 안된 도로는 뿌연 먼지만 가득했다. 

 손에 손에 장비를 든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하는 모습이 차창 밖으로 뿌옇게 보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참이라 도로를 넓히는 공사를 하는 중이다. 집집마다 한 사람씩 차출되어 외삼촌이 아침에 작업을 나가기도 했다.

 방학 때는 외가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동네에는 또래 친구도 많았고 무엇보다 읍내에서 왔다고 귀하게 대접해 주는 것이 좋았다. 미자언니, 경자 등 그때 같이 놀았던 이름들이다.


 

 정류장에 내려 외가에 가는 길에는 동네 어귀에 큰 고목나무 몇 그루가 자리를 지켜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는다. 여름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줘서 해가 긴 여름날에는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야 자리를 뜬다.

 골목마다 저녁 짓는 냄새가 난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타는 냄새와 여름 저녁 즐겨 먹는 보리밥과 호박잎국의 구수함은  오늘저녁 밥상의 모습을 그려낸다.

 외가에 도착해서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모아놓은 담배꽁초를 풀어 종이에 말고 계셨다. 반갑게 맞이하는 할아버지께 절을 하고 준비해 간 담배 두 갑을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입가에 굵은 주름을 만들면서 담배는 아리랑 보다 한라산이 고급이라며 좋아하셨다.

 안채로 들어가니 두 분 할머니께서 제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한창 자라도록 왜 외가에는 할머니가 두 분인지 궁금했지만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다. 대답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불문율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두 분 할머니는 우리에게 잘해주셨고 두 분이 서로 티격거리는 걸 본 적은 없다. 할머니가 준비해 놓은 빙떡, 상애떡(집에서 만들었던 술빵) 등을 동생들과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빠지지 않고 물어보신다.

 "버스비는 얼마 줬니?" 

 먹은 게 체할 것 같았다. 동생이 잘난 체하듯 삼십 원 줬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할머니가 흥분하면서 버스 기사를 욕하기 시작했다. 어린것들이 뭘 안다고 버스비를 삼십 원씩이나 받느냐고 하면서 정제(부엌)로 들어가셨다. 작은 할머니와 큰소리를 내며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큰소리의 주인공은 버스차장이지만 내가 미련한 주인공이 되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 자리를 빨리 피해야 했기에 방에서 빠져나왔다. 자연스럽게 동생들과도 각자 집안에 놀이터를 찾아 나섰다.

 외가는 오래된 고택의 느낌이 있다. 나는 정제(부엌)로 이어진 뒤꼍을 좋아한다.

 뒤꼍에는 고목이 된 커다란 동백나무 두 그루 있는데 들어서면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나무에 올라가 빨간 동백꽃을 따서 단단한 가지에 걸터앉아 꽃송이 꽁지를 쪽쪽 빨면 달달한 물이 목으로 흘러내린다. 동생들도 모르는 나만 아는 비밀이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밑을 내려다보면 붉은색의 동백꽃이  바닥을 물들어 놓는다. 나무에 걸터앉아 생각 없이 놀고 있는데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동생이 나를 찾는다고 했다. 막내가 볼일이 급하다고 했다. 변소(화장실)를 가야 하는데 외가의 변소는 나도 극히 가기 싫어하는 유일한 곳이다.

 동생을 다독여서 마당 끝에 있는 변소로 데려갔다. 둘이 선뜻 돌계단 두 개를 못 올라가 망설였다.

 두 개의 돌판을 밟고 앉아 가까이 오는 돼지 두 마리를 못 오게 해야 한다. 나는 동생 옆을 지켜 서서 돼지가 소리를 내며 가까이 오면 긴 장대로 물리쳐야 했다. 간신히 볼일을 마친 동생이 한숨 쉬며 옷을 추슬렀다.

 

 제주도 화장실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은 소재는 단연 똥돼지이다. 

 시대가 변하고 삶이 풍족해지면서 다들 실내 화장실을 갖추고 사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경악할 얘기로 들릴지 모른다. 외지로 나가 있을 때 모르는 사람들이 똥돼지 얘기 하면 얼굴을 들기가 힘들었다.

 살기가 퍽퍽한 시절 변소에는 짚을 깔아 돼지가 밟으면서 묶인 분뇨를 모아 거름으로 쓰고 돼지는 키워 살림에 보탰다.  추운 겨울 돼지가 새끼를 나면 할머니는 얄팍한 이불에 싸서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는 아궁이 앞에서 추위를 피하게 해 줬다.  가족들의 밥줄이기에 잘 살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해 봄이 되면 구덕(바구니)에 넣고 짊어져 장날 먼 길을 걸어 팔러 나가셨다. 

 

 다음 날 아침  동네 어른들이 계신 곳은 채반에 하얀 쌀밥 한 그룻, 고기 한 젓갈, 나물 약간, 떡 몇 개 등을 담아 제삿밥 배달을 다닌다. 누구네 제사가 언제인지 어른들은 기억들 하고 있어 찾아올 거라 기대도 갖고 있는 터였다.

 아침상 물리고 우리도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할머니는 보따리에 뭔지 모르지만 잔뜩 싸서 들려주시고는 차비도 손에 쥐어 주셨다.

 버스 탈 때는 "꼭 동생들은 학교 안 다닌다고 해라"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지만 듣기는 좋지 않다. 무서운 차장에게 그 말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버스 요금을 받으러 온 차장이 어제 그 차장이 아님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묻기도 전에 먼저 얘기를 꺼냈다.

"얘는 학교 안 다녀요"

아, 나는 드디어 맏이의 사명을 완수했다. 고개 들어 엄마의 얼굴울 쳐다볼 수가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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