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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Nov 28. 2023

김 씨네(3)

단편소설

 오늘은 읍내 오일장이다.

 김 씨 부부는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장에서 사야 되는 물건을 적어놓은 작은 수첩은 잘 챙겼는지 확인하기를 여러 차례 했다. 읍내까지 타고 나가는 마을버스를 타려면 산에서 일찍 내려가야 했다. 이른 아침 한번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놓치면 큰일이다. 김 씨 부부는 밝아오는 하늘을 배경 삼아 바쁜 걸음을 걸어 산을 내려갔다. 

 

 읍내 장에 들어선 김씨네는 오랜만에 사람들이 북적이며 떠드는 소리 속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길 따라 멀리 가판대가 늘어서 있다. 가판대를 지키고 서있는 상인들은 소리소리 지르기도 하고 조용히 불러 세우기도 했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었다.

 행거를 이용해 형형색색의 여자 옷을 걸어놓고 팔고 있던 남자 주인은 두리번거리며 지나고 있던 김 씨 아내를 불러 세웠다.

 "아줌마가 입으면 딱 어울리는 옷이여!"라며 붉은색과 군데군데 반짝이가 섞인 블라우스를 들이대었다. 김 씨 아내는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걸려있는 옷들을 구경하느라 눈동자가 바삐 움직여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남자 주인이  "따끈따끈한 신상이요."라며  다른 꽃무늬 블라우스를 더 보여주었다.

 며칠 동안 먼지 속에 파묻혀서 작업복만 입고 있던 김 씨 아내는 걸려있는 모든 옷이 예뻐 보였다. 넋 놓고 있는 김 씨 아내를 김 씨가 빨리 가자고 잡아끌었다. 여자 옷은 수첩에 적혀있지 않았다. 김 씨의 손에 잡혀 끌려가고 있는 중에도 김 씨 아내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 주인은 아쉬워하듯 자꾸 손짓을 보냈다.

 성질 급한 김 씨는 "이렇게 늦장 부리다가 하루해가 곧 떨어져."라고 말했다. 수첩을 꺼내 뒤적거리며 김 씨는 다음 순서를 향해서 빠른 걸음을 걸었다. 김 씨의 등을 바라보며 걷던 김 씨 아내는 갑자기 숨이 차 올랐다.

 "좀 천천히 가자고요!"라며 소리쳤다.

 앞서가던 김 씨는 아내의 목소리가 목덜미를 서늘하게 하는 것을 느꼈다. 걸음을 멈추고 아내의 얼굴을 보기가 겁이 났다. 김 씨의 걸음이 조금씩 늦춰졌고 따라오는 아내의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산에서 쓸 물건들을 사서 배낭에 꾸역꾸역 담았다. 여분으로 가지고 간 큰 주머니에도 채워지면서 장 보기는 얼추 끝나갔다.

 "어디 가서 뭐 좀 먹자"라며 김 씨는 아내를 달래듯 얘기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오기도 했고 초행길의 장을 찾아 긴 시간 걸어오느라 부부는 시장했다. 

 

 근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 안에는 붐비는 시간이 지나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남자 주인이 먼저 반찬 접시를 들고 왔다. 김 씨 부부는 모처럼 고기가 들어있는 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김 씨가 먼저 수저를 놓았고 김 씨 아내는 천천히 먹는 중이었다. 김 씨는 셀프 커피를 타서 마시고 계산을 끝낸 후에 아내더러 잠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밥을 입에 담은 김 씨 아내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대답했다. 

 검정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김 씨가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밥을 다 먹고 앉아 있던 김 씨 아내가 물었다.

 "어딜 다녀와요?" 

 배가 불러 여유로워진 김 씨 아내가 부드럽게 물었다.

 "당신은 이 사이즈가 맞지?" 하며 김 씨가 검정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열었다. 옷 가게에서 신상이라며 남자 주인이 보여준 꽃무늬 블라우스였다. 김 씨 아내는 눈만 껌뻑거렸다.

 "이걸 왜 사?"

 무표정하게 김 씨 아내가 대꾸했다. 김 씨는 아내가 싫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앞치마 두른 식당 주인이 그릇을 정리하면서 부러운 듯이 말했다.

 " 애고. 보기가 좋네요."라며 밖에 있던 남자 주인을 쳐다보았다. 죄 없는 남자 주인이 눈총 세례를 받아야 했다.


  산에 들어온 김 씨네는 그동안 다섯 번의 여름을 보냈다. 주변에 한 가구가 더 생겼고 전기가 들어왔다.

  산에 들어올 때 큰돈을 들고 오지는 않았지만 김씨네는 돈이 궁하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움직이면 돈이 되었다. 장날이면 산에 있는 나물들을 캐다가 팔았다. 누가 심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밤나무도 몇 그루가 있어 떨어진 밤을 주어다 짊어져 가서 팔았다. 텃밭의 야채도 두 부부가 먹고도 남아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장날 읍내 가는 버스에는 반가운 이웃이 생겼다. 모두들 내다 팔 보따리를 챙기고 있었다. 장에서도 인사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대자루에 짊어지고 간 밤은 싸게 팔아 인기가 좋았다.  일찍 팔고 끝내 버리는 김 씨 부부에게 주변 상인들은 가벼운 시샘을 보이기는 했으나 퍼주기 잘하는 김씨네를 좋아했다. 


 추석이 가까 오자 여느 때 같지 않게  김 씨 아내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아닌 일에 김 씨를 타박하기도 하고 혼자 툴툴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영문을 모르는 김 씨는 아내에게 가끔씩 면박을 당했다.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김 씨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여기 좀 엎드려 봐."

 "왜?"

 '허리 좀 눌러 줄게"

 "허리는 무슨!" 퉁명스럽게 김 씨 아내가 대답했다. 멋쩍은 김 씨가 포기하지 않고 아내를 엎드려 눕혔다. 김 씨가 어깨부터 천천히 누르며 내려갔다. 괜찮다고 했던 김 씨 아내가 끙끙 신음 소리를 냈다. 김 씨 아내는 온몸이 시원했으나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김 씨는 요즘 왜 그렇게 저기압이냐고 조용히 물었다. 김 씨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김 씨가 재차 물었으나 김 씨 아내는 조용했다. 잠시 후에 일어나 앉은 김 씨 아내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난 이제 우리가 웃으면서 지내는 게 애들 안테 미안하네."

 김 씨가 말이 없다. 김 씨 아내가 한숨 쉬며 이어 말했다.

 "첨에는 당신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밀어붙여 여길 왔는데 이리 오랜 시간 지날 줄 몰랐어."

 애들이라는 말에 김 씨도 가슴이 먹먹했다.


 사실 김 씨는 '사람 좋은 김 씨'라는 호칭에 눌려 항상 '예스맨'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 거절 못 하고 속앓이 하는 것이 있었다. 산에 와서 거침없이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억척스럽고 근육이 생긴 것처럼 심신이 단단해져 있음을 알았다. 아내의 말을 듣던 김 씨가 약간의 허세를 붙여 대답했다.

 "진즉 얘기하지. 안 그래도 우리 이제 집으로 가도 된다고 할 참이었는데." 

 김 씨 아내가 반가움 반 염려 반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김 씨 부부가 살고 있는 전원주택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곧 흥정이 됐다. 그동안 집값이 열 배 가까이 올라 팔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집 주변에 심어 놓은 작은 나무와 화초들은 전원주택을 한껏 돋보이게 했다. 장에 갈 때마다 사다 놓은 자잘한 살림살이는 이사 올 사람이 쓰겠다고 했다. 워낙 깔끔한 살림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산에서 내려갈 때는 맨 처음 올라올 때보다 갖고 갈 물건이 별로 없었다. 

 오일장에 갈 때처럼 새벽에 읍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러 내려가야 했다. 

 김 씨네는 마당을 쓸던 빗자루를 제자리로 갖다 놓고 창고는 잘 정리되었는지 확인했다. 김 씨 아내는 부엌에 들어가 이제껏 삼세기를 책임져준 그릇들을 제 위치로 놓았다. 김 씨 부부는 늘 하던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버스를 놓칠 수는 없었다.

 산을 내려가는 김 씨 부부의 발걸음이 빠르고 가벼웠다.

 이제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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