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희 Nov 17. 2023

김 씨네(1)

 김 씨 부부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산으로 이사 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후에도 걷고 또 걷고 한참을 걸어들어 가야 했다. 

 살림을 줄일 만큼 줄인다고 했지만 보따리 가방 등이 손에 들고 등에 지고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사람이 왕래한 흔적을 따라 점점 깊은 산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부부는 서로 말이 없다.

 주변의 나무들은 조경을 생각해서 심은 나무들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자라다 구부러진 나무며 가시나무며 키 큰 나무를 휘감아 올라간 덩굴들이 아무렇게 자라 거침없어 보였다. 어떤 나무는 벼락 맞아 쓰러진 것으로 보이는 나무도 있었다. 

 평소 부지런한 김 씨는 저런 나무는 끌고 가서 땔감으로 써도 좋겠다며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애틋한 정을 속삭일 나이로 보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부부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걷기만 해도 부부의 이마에는 송송 맺혔던 땀이 한 줄씩 흘러내렸다. 입은 속옷이 축축 젖어 있었지만 서로는 말이 없었다.


 키 큰 나무가 빽빽 자라 드리워진 그늘에서 남편은 잠시 쉬자고 먼저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휴, 좀 쉬자. 다리에 쥐 생기겠다." " 응, 그럽시다. 많이 걸었네".

 아내는 등에 메어 있던 가방을 열어 포일에 싼 김밥과 물 한 병을 꺼냈다.

 등에 메었던 가방을 엎어 밥상 삼아 김밥을 올려놓고 남편에게 먼저 권한다.

 가지런히 썰어 놓였을 김밥은 짊어지고 오는 동안 먹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살짝 찌그러져 있었다. 김밥은 한 개씩 먹어도 될 만큼 썰어져 있었으나 남편은 두 개씩 입에 넣어 씹느라고 볼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별말이 없던 아내는 김밥을 잔뜩 담아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입에 있던 김밥과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아내는 웃음을 참느라 꺽꺽대고 남편은 입에 들어있던 김밥을 대충 씹어 삼키느라 꾸역 댔다.

 김밥을 씹어삼킨 남편은 "아까워라" 하면서 다시 김밥 두 개를 입에 넣었다.

 웃음을 그친 아내가 이번에는 화를 내면서 쏘아붙였다.

 "거 좀 한 개씩 드셔. 누가 뺏어 먹나?"

 그러거나 말거나 무표정한 남편은 김밥 두 개씩 입에 넣어 꾸역꾸역 잘도 먹는다.

 남편의 김밥 먹는 속도가 느려지고 한 개씩 입에 넣기 시작하면서 아내도 꼭꼭 씹어 삼켰다.

 남편은 옆에 놓여 있는 물병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입을 벌리고는 꼭지를 입에 안 닿게 하여 쏟아부었다

 입이 나온 아내의 얼굴을 흘끔 쳐다본 남편은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가방을 정리하는 아내에게 "이 가방은 내가 메고 갈게" 하며 친절을 보였다.

"여태 내가 메고 왔걸랑요." 

아내는 쏘아붙였지만 마다하지는 않았다. 둘 다 배가 부르고 느긋해져 서로 맘에 두지 않았다.

 남편은 옆에 풀이 자란 곳에 태충 드러누웠고 아내는 키 큰 나무를 등받이 삼아 기대앉아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을 기분 좋게 느겼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해서 부랴부랴 김밥 몇 줄 말고 오느라고 아내도 허둥대고 피곤했다. 피곤함이 배도 부르고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으로 위로를 받는 듯했다. 

 그새 남편은 코를 골고 아내도 깜빡 잠이 들었다.

 갈 길은 아직  더 남아 있지만 잠깐의 휴식은 몸과 마음을 가볍게 했다. 


 시내에서 사는 동안 장사하는 남편을 도와 별 불만 없이 아들 둘을 키우면서 살았다.

남편은 부지런했고 착하고 쉬는 법이 없었다. 남편이 가슴을 쥐어뜯고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기 전까지는.

병원에 실려간 남편이 받은 진단은 공황장애라고 했다. 

증상이 심하여 갑자기 심장마비처럼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몇 날 며 칠을 생각하다 그래도 집안의 가장을 살려야 한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애들은 얼추 컸다고 했으나 아직은 중학생이다. 친정에는 그간 모은 돈으로 양육비를 주면서 멀리 시골로 가서 남편의 심신을 쉬게 해야 한다고 사정을 얘기했다. 처음에는 펄펄 뛰던 남편도 가장이 건강해야 한다는 말에는 조용해졌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가게도 정리해서 손에 들 수 있는 옷가지 몇 벌, 냄비 한두 개만 챙겨 이 깊은 산골로 같이 왔다.

산에서 자연인 생활을 하다 보면 건강을 되찾겠지 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먼저 깬 남편이 아내를 깨웠다.

남편은 "날 어둡겠다" 하면서 아내가 도로 뺏을 여유 없이 밥상으로 썼던 가방을 먼저 둘러메고 양손에 부피 큰 보따리를 들고 섰다.

등가방 하나가 없어진 아내는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아직도 멍한 얼굴을 펴지 못한 채 눈을 깜박 거린다 

어느샌가 부부의 몸에 적셔있던 땀이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남편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소리쳤다.

"이제 다 왔다!  저기 보이네 우리 집. 아담한 전원주택!"

쳐다보던 아내가 아담한 전원주택이라는 말에 얼굴을 고정한 채 "그래, 아담한 전원주택." 하며 입술만 움직였다.

마당에 도착한 부부는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빈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손 보고 수리해야  할 부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감도 오지 않았다. 

지붕에 슬레이트를 걸쳐놓고 흙으로 벽을 만들었으나 반은 허물어져 있고 문짝에는 창호지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물은 있으나 전기는 들어오지 않은 아담한 전원주택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