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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Nov 21. 2023

김씨네(2)

 산에서의 김씨네 전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산중이라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 오롯이 부부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다였다.

무너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을 기술 좋은 김 씨가 만지기 시작했다. 오래되어 틀어지고 먼지가 쌓인 문짝을 붙들고 김 씨  아내가 틈새마다 닦아내어 창호지를 바르고 볕이 잘 드는 마당 한편에 순서대로 갖다 말렸다.

 흙으로 빚어 만든 벽은 오래되어 바람이 들어있을 것 같은 벽지 사이로 만질 때마다 마른 흙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찾아올 사람도 없고 집들이할 일도 없지만 김 씨 부부는 서로 각자의 역할을 찾아 익숙하게 움직였다. 집 뒤편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가재도구를 뒤적거려 쓸만해 보이는 것들을 한쪽에 모았다. 오랫동안 사용하다 팽개친 듯한 곤로, 솥단지, 부식된 양은 냄비, 빛바랜 플라스틱 소쿠리 등이다.

 "고물상에도 안 받겠다."라며 김 씨 아내가 한숨을 쉬었다. 

 우선 밥은 먹어야 하니 부엌 아궁이 하나에 버려진 솥 하나 박박 씻어 걸쳐 놓고는 물을 부었다. 주변에 널려 있는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폈다. 매캐한 연기가 집안을 자욱하게 하면서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파트 주방에서 가스 불만 사용하던 김 씨 아내는 부엌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로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와 집을 새카맣게 그을리겠다고 투덜거렸다. 이삿짐 차를 이용하지 못하고 피난민처럼 걸어 들어왔기 때문에 살림이랄 것도 없었다. 김 씨 아내는  임시 먹을 수 있는 약간의 식량과 밑반찬을 챙겨와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쌀을 씻고 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아쉬움 없이 갖춰진 아파트에서의 편안했던 생활이 떠올랐다. 가까운 곳의 대형마트에서 눈에 보이는 식재료와 생필품을 카트에 가득 담아 계산대에서 기다렸던 긴 줄이 생각났다. 

 하루 삼 세 끼를 준비하는 일이 성가신 일이라고 불평할 때도 있었지만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족들의 모습이 흐뭇할 때도 있었다. 살림꾼이었던 김 씨 아내는 집안을 쓸고 닦고 하는 일을 본업처럼 참 열심히 하고 살았다. 그을림과 매캐한 연기는 볼일도 없었다. 

원해서 시작한  자연인의 삶이라고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생활이 주는 불편함이 몸과 마음을 고된 피곤함으로 다가왔다. 

 지붕에서 내려온 김 씨가 배고프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구색이랄 것도 없이 점심 상이 차려졌다.

 식탁 대신 비닐을 깔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하얀 밥을 양푼이에 가득 퍼 담아 놓았다. 꽁지만 잘라낸 빨간 김치는 넓적한 큰 대접에, 가지고  온 구운 김은 점심상을 여유 있게 보이게 했다.

  부부는 아침에 대충 요기하고 일을 시작했던 터라 서로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다.

 김 씨 아내는 앞에 놓인 빈 그릇을 하나 집어 들고 고봉밥을 만들어 남편에게 건넸다. 밥그릇을 보고 김 씨가 웃었다. 

 "고맙소 마님" 하며 김 씨는 너스레를 떨었다. 썰지 않은 넓고 긴 빨간 김치를 밥 위에 접어 올려놓고 한입에 넣느라 빨간 김치 국물이 입가를 타고 내렸다. 식성 좋은 김 씨는 아내가 해주는 밥에 불평을 하는 법이 없었다. 김 씨 아내는 급히 휴지를 돌돌 말아 남편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식사 때마다 과하게 입에 퍼담아 가끔 잔소리를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잘 먹어주는 남편이 고마워서 푸념처럼 나오는 소리이기도 했다. 부부는 양푼이에 수북 떠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거의 다 비웠다. 먹성 좋은 김 씨도 평소 보다 더 많이 먹은 듯했고 김 씨 아내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배가 부르긴 했지만 식후 따끈한 커피믹스 한 잔이 주는 달콤함이 목을 타고 내리면서 온몸을 이완 시켰다.

 

 부지런한 부부는 마루며 안방이며 어떻게든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마에서부터 흐르는 땀은 온몸을 적시면서 입고 있는 옷을 축축하게 적셨다.

 갑자기 김 씨가 비명을 지르면서 김 씨 아내를 찾았다.

 "여보. 여보!"

 부엌에서 김 씨 아내가 무슨 일이냐며 뛰쳐나왔다.

 "빨리 프라이팬 갖고 와! 빨리!" 

 "프라이팬?"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프라이팬을 찾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되물을 여유도 없이 김 씨 아내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갖고 온 프라이팬을 내주며 김 씨 아내는 그제야 왜 그러냐고 물었다. 김 씨가 프라이팬을 받아 들고 굳은 얼굴로 입술에 손을 갖다 대더니 마루 한쪽 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큰일이 벌어진 줄 알고 쫓아온 김 씨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의 행동을 쳐다보기만 했다.

 김 씨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힘을 다해 마루의 한쪽 벽을 내리쳤다.

 아직 도배도 제대로 못한 벽지 사이로 흙이 우수수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고 조그만 생쥐 한 마리가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김 씨 아내는 대꾸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말없이 쳐다보는 김 씨 아내를 향해 김 씨가 자랑스럽게  먼저 말했다.

  "쥐가 있잖아!"

  "쥐 잡으려고 프라이팬 찾았어요?"

  "응, 프라이팬이 쓰기에 좋잖아."

 용도를 다한 프라이팬을 김 씨 아내에게 건네자 프라이팬은 수돗가에 내동댕이 쳐졌다.

 

 여름 날씨이기는 하나 산에서는 해가 빨리 떨어져 서둘러야 했다. 일찍 마무리하고 쉬자고 하는 데는 부부가 일심동체가 되어 동작이 빨라졌다. 종일 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부부가 마당에서 순서로 수돗물을 틀어 몸을 씻었다.


  저녁상을 일찍 물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부부가 자리를 깔아 반듯하게 누웠다.

 "아이고 허리야"라며 동시에 소리가 나와 서로 웃었다.

 부부는 다음 장날 읍내에 나가 사야 될 품목 들을 주고받으며 꼼꼼한 김 씨가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종류가 많기도 했지만 걸어서 읍내로 나가는 차를 타야 하려면 먼 길을 가야 하는데 김 씨 아내는 습관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산으로 가자고 할 때는 김 씨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으나 행동함에 있어서는 김 씨가 더 앞서고 불평이 없었다. 오히려 김 씨는 내일 소풍 가는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였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따라 피워 놓은 모기향의 냄새가 하루의 피곤함을 노곤한 휴식으로 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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