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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Dec 26. 2023

윤이와 열이

 윤이와 열이는 서로 얼굴만 보고 결혼했다.

 집안 어른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혼처이고, 서로 밉상은 아닌 얼굴이라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윤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군대를 입대하여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했고 학생회장도 지냈던 터라 동네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윤이를 찾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다로 나가 풍랑을 만나 돌아가신 후에 청상과부가 되어 5남매를 키웠다. 

 어머니는 새벽 4시에 절간에서 들리는 종소리에 눈을 떠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부두로 갔다. 남들보다 일찍 가야 물 좋은 생선을 사서 등에 짊어지고 동네로부터 이웃 마을까지 걸어 다니며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듯이 윤이도 집안의 장남이니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생각하면 어깨가 가벼울 리 없었다. 어머니 말씀을 거역해 본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 윤이에게 근처 마을 아가씨를 소개받았다.

 어머니는 집안의 장남이니 장가를 먼저 가야 한다고 했다. 대학을 가고 싶었던 윤이는 답답한 마음에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가서 상의드렸다. 세분을 찾아갔는데 모두들 장가가서 어머니께 효도하라고 하는 말을 해주었다.

 윤이는 대학을 가는 꿈을 접고 장가가서 어머니께 효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열이는 아버지가 후처를 두고 있었다. 기울어진 양반집이었으나 기세는 등등하여 동네에서 목소리가 컸다. 그런 아버지가 큰오빠는 장남이라고 논 팔고 밭팔아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다. 

 딸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언니와 열이는 제때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어머니는 글이라도 깨쳐야 한다고 늦은 나이임에도 아버지 모르게 열이를 19살에 국민학교에 입학시켰다. 담임선생님과 서너 살 정도의 나이차가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아버지는 여편네가 남편 말을 안 듣고 멋대로라며 마당에 있는 놋대야를 집어던졌다. 

 학교를 가는 일은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야 했다. 아버지 앞에서는 학교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공책에 연필을 말아 골목 어귀 담벼락 구멍에 꽂아 놓고 눈짓을 보내면 꺼내 들고 학교로 뛰었다.

 그렇게 공부하던  열이는 국민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23살이 되어 시집을 가게 되었다.

 윤이네 집 마당에서 큰 돼지 한 마리를 잡고 이장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 윤이와 열이는 바깥채에 방 하나를 내주어 살림을 차렸다. 시렁에는 하얀 광목천에 십자수를 놓아 만든 가리개로 쳐져 있었는데, 하얀 바탕에 색색의 꽃무늬는 한눈에 봐도 신혼 방으로 보이게 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아무 일도  겪어 보지 않은 신혼부부는 앞으로 겪어낼 삶의 고단한 무게를 깊이 생각 못 했다. 

 윤이는 집안의 가장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일자리가 없는 것이 근심이 되었다. 어머니가 시키는 집안일은 이제 윤이 식구의 생계를 위한 돈이 생기지 않았다. 윤이는 이리저리 일자리를 찾아다니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어머니는 하얀 쌀과 보리쌀을 한 봉지씩 담고 텃밭에 심은 야채와 함께 마당으로 향해 있는 부엌문 옆에 말없이 갔다 놓았다. 그나마 얼마 후부터는 쌀을 구경할 수가 없게 되어 보리밥만 상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열이가 밥상을 치우고 방으로 들어오니 윤이는 방바닥에 헌 종이를 깔고 있었다.

 "뭐 허전 햄 수과?(뭐 하려고요?)"

 "응. 가리방"

 "가리방?" 하고 되물으며 열이는 윤이가 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군청에서 가리방 일을 얻어왔죠."라며 윤이는 웃으며 열이를 쳐다보았다. 윤이의 얼굴에서 가장으로서의 뿌듯함이 묻어났다. 

 군청 서기에게 방법을 익히고 왔건만, 다시 하려니 뭔가 어설펐다.  손과 옷에 온통 검은 물로 얼룩졌다. 오늘 밤에 도대체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윤이 얼굴이 조금씩 굳어갔다. 열이도 어떻게든 도와주고픈 마음으로 거들려고 하면 윤이는 마다했다. 구겨진 자존심이 윤이 고개를 꺾어 버렸다.

 열이는 주변에 흩어진 검은 잉크가 잔뜩 묻은 종이들을 말없이 한 장 두 장 모아 한 편에 쌓아 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윤이도 익숙해져서 속도도 빨라지고 검정 잉크도 골고루 퍼져 파지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윤이는 그제야 얼굴이 폈다. 작은 신혼 방에는 검정 먹물 냄새가 났다.

 다음날은 완성된 분량을 군청에 갖다주고 새 일감을 받아왔다. 

 그렇게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받는 급료를 열이에게 내밀었다.

 "소과 수다(수고했어요)." 하면서 열이는 남편이 밤마다 가리방을 긁어 수고한 대가를 아내인 자기에게 건네주는 것을 고마워했다. 얼마 되지 않은 돈을 가지고, 쌀을 대준 어머니께 조금 드리고 다음에 먹을 쌀을 사놓고 나면 손에 남는 게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들이미는 보리쌀을  이제 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거북했던 속이 개운해졌다.

 조금이라도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열이도 가만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리방을 긁지 않으니 밤에 바닷가에 가서 미역이라도 채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해산물  채취하는 것은 단속 대상이었다. 해녀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수거한  뒤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기 때문이었다. 말이 수출이지 강탈에 가까웠다. 

 열이는 누가 망을 봐주기만 하면 할 수 있다고 했고 윤이는 위험하다고 말렸다.

 다른 때는 조용하던 열이가 이번에는 적극적이 되어 신랑에게 보챘다. 이번만 해보고 담에는 하지 않겠노라고도 했다. 윤이도 할 수없이 열이를 돕기로 했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 생활고를 위해 나서주는 열이를 고마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토요일 밤이 되었다.

 물 때를 맞춰 물이 들어오기 전에 바다에서 나와야 했기에 열이는 모든 준비를 일찍 마쳤다. 

 짊어지고 갈 구덕(큰 대나무 바구니)에  테왁, 호미, 갈아입을 옷 등을 챙겨 넣었다. 늦가을이라 밤이 되며 더 추울 것이었다. 

 늦은 밤이 되자 부부는 집을 나섰다. 안채의 어머니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새벽에는 어김없이 부두에 가셔야 했기 때문에 항상 일찍 불이 꺼져 있다.

 정방폭포로 향한 윤이와 열이는 바닷가로 내려가는 험한 바위를 타고 조심조심 발을 디뎠다.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빛과 높게 떠 있는 둥근달이 오늘이 보름임을 알려주었다. 큰 바위로 살짝 가려지는 곳에 자리한 윤이는 열이가 갈아입을 옷을 지키고 앉아, 혹시 모를 단속반이 다니는지 망을 봐야 했다. 

 연이는 테왁을 끌고 천천히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몸에 적셔지는 늦가을 밤의 바닷물은 어찌나 차가운지 물에 닿자 몸에 소름이 먼저 돋았다. 

 망을 보던 윤이는 열이가 바닷속에서 나올 때까지 숨을 쉬지 못했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소리도 못 냈다. 열이도 바닷속에서 나오면 숨이 찼다. '숨비 소리'를 마음 놓고 내지 못해서였다. 숨이 찰 때는 테왁을 붙들고 가늘게 숨을 가다듬었다. 테왁 밑에는 미역으로 채워졌다. 보인 것은 보이는 대로 안 보이는 것을 감으로 따서 채웠다. 어쩌다 운이 좋은 때는 바위틈의 소라도 몇 개 건져 올렸다.

 윤이가 양손을 흔들며 그만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열이는 마지막 한 번이라며 바닷속에 잠겨 들어갔다.

 윤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온 열이가 가쁜 숨소리와 함께 테왁을 끌고 왔다. 상당한 무게였다. 윤이는 이것저것 가려낼 여유가 없어 닥치는 대로 구덕에 쓸어 담았다. 물 밖으로 나온 열이는 추위와 무서움이 더해져 입이 굳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해녀 옷을 벗고 닦을 여유도 없이 가져온 마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광목천으로 만든 젖은 해녀 옷이 잘 벗어지지도 않았다.

 구덕을 짊어진 윤이가 앞장서서 길 안내를 하며 열이가 밟을 바위를 안전하게 짚어 주었다. 집을 향해 돌아오는 길은 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윤이의 등짐은 무거웠고 바닷속을 헤집어 다닌 열이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윤이는 부엌에 구덕을 숨겨놓았다. 그러고는 솥단지에 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장작 몇 개를 집어넣고 타오르게 했다. 

 열이는 입술이 까맣게 변해서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윤이가 아랫목에 이부자리를 펴면서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윤이는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부엌에 들어간 윤이가 솥뚜껑을 열어 끓고 있는 물을 한 대접 퍼서 들고 들어왔다.

 "마셔봐." 윤이가 건네주는 대접을 열이가 받았다. 

 "너무 뜨겁네." 하면서도 열이는 양손으로 받아 언 손을 녹이고 있었다. 호호 불면서 뜨거운 물을 마시고 방안에 깔아놓은 온돌 바닥이 따뜻해지면서 부부는 이제야 집에 무사히 돌아왔음을 안도했다.

 열이의 귀와 뺨이 온기로 인해 빨갛게 변해갔고 몸이 따듯해지면서 열이는 쏟아지는 잠을 애써 참으려고 하지 않았다. 잠이 든 열이가 어린애처럼 쌕쌕 소리를 냈다.

  누워있는 열이를 이불로 꽁꽁 싸주면서 윤이는 열이의 발그레 변해가는 얼굴을 보았다.

 윤이는 잠든 열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앞으로 내 평생에 식구들 굶길 일은 없을 거다."

 그 밤 이후로 열이는 밤에 물질 나가는 일을 하지 않았다.

 윤이는 일자리 찾는 일에 더욱 열심이었고, 하루 버는 일에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갔다.

 윤이는 오로지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이제 삶의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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