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희 Dec 19. 2023

우리 동네 네모 아줌마

 '네모'는 영희의 별명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낯선 얼굴들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조그만 빌라에 살고 있는 이웃들은 각각 오래된 이웃들이라 여느 아파트 같지 않게 친목이 잘 형성되었다.

 빌라 입구 주차장 한편에는 넓은 평상이 있다. 

 아줌마들은 모여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든지, 재미있는 일에는 박장대소했다. 어쩌다가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할아버지로 보이는 어른이 지팡이를 의지하여 걸터앉았다가 이내 자리를 뜰 때가 있다. 아줌마들은 시골에서 가져온 도라지 한포를 풀러 놓고 같이 깎기도 하고,  파김치 담는다고 펼쳐 놓고 손을 빌려 다듬기도 했다. 한가하고 심심한 아줌마는 같이 거들어 한 줌씩 얻어 가기도 하고, 자식이 없어 급할 일이 없는 아줌마는 같이 수다 떨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몇 가구 안 되는 조그만 빌라는 관리하는 총무가 아니더라도, 요즘 보기 드문 이웃이며 낯선 사람은 시선을 많이 받았다.

 우리의 네모 아줌마는 남편의 직장 이동으로 인해 출근하기 가깝다는 이곳에 이사를 왔다. 

 그다지 빼어난 미모를 지닌 얼굴은 아니어도 보기 싫은 얼굴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면 각이 진 네모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동네 엄마들이 모여 앉으면 얼굴이 네모형이라고 수근덕거리다 아예 '네모 아줌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네모 아줌마는 이웃들의 시선을 모르지는 않았다.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다.

 '영희'라고 부르나, '네모'라고 부르나 특별할 것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되었다.

  영희는 어렸을 때,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한숨 섞인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아이고, 우리 딸을 어떻게 팔아먹어야 하나. 얼굴이 떡반 같아서,,,."

 제사 때 떡을 담는 그릇이 둥글넓적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친청 아버지는 딸을 쳐다보면서 근심스러운 표정과 함께 똑같은 말씀을 자주 하셨다. 어린 딸은 자신의 얼굴이 부모의 큰 근심 덩어리인 줄 알고 죄송한 마음으로 자랐다. 맏이로 자란 것도 있었지만 집안의 궂은일은 맏이의 몫이었다. 불만이 있을 리 없었고 당연한 일로 여기며 자랐다.

 사춘기를 보내면서 살이 오르기 시작하자 동네에서는 '맏며느리감'이라고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힐끔 거리며 쳐다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정말 싫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자주 했던 떡반 같은 얼굴이 '맏며느리감'으로 바뀌었다. 별명이 바뀌었다고 둥글넓적한 얼굴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떡반 같은 얼굴은 양손으로 턱을 괴고 거울을 봐야 얼굴 면적이 줄어 보였다. 

 가정 형편이 녹록하지는 않았음에도 진학하겠다는 딸을 아버지는 간호대학에 보냈다. 주변에 대학생 딸을 둔 집이 많지 않았을 때라 부모님은 흐뭇해하셨고, 딸을 대학에 보냈다는 자부심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주인공이 되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취업했을 때, 월급은 봉투째 고스란히 집으로 부쳐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했다. 엄마는 이불속에서 딸이 보낸 월급봉투를 열어 몇 번이고 돈을 세었다. 동네에서는 우리 집을 많이 부러워했다.

 그러던 영희에게 애인이 생겼다. 

 남자는 영희를 많이 아꼈고 '희야'라고 불렀다. 영희는 '희야'라고 부를 때마다 두리번거렸다. 그런 고상한 이름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닭살이 돋기는 했음에도 나쁘지는 않았다. 연애할 때는 다 그런가 보다 생각도 들었다. 

 남자는 다정다감했고 배려할 줄 알았으며 모난 데가 없어 보였다. 삼 교대 근무로 인해 만남이 불편해도 다 이해했다. 결혼 얘기가 오고 갔고, 집에서도 혼기 놓치면 안 된다고 서둘러 날을 잡기를 원했다. 아버지는 떡반 같은 딸이 임자 있을 때 빨리 보내버리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여 아쉽지만 서둘렀다.

 

 결혼식이 끝나고 폐백을 마친 후에 한복을 입은 신혼부부는 버스를 타고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해가 떨어져서야 호텔방에 도착한 신혼부부는 하루 종일 치른 행사에 녹초가 되었다. 신랑이 먼저 씻으러 들어갔고,  다음으로 신부가 욕실로 들어갔다.

 신랑은 그래도 첫날이라는 생각에 빠진 것이 없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신랑은 신부가 밖으로 나오면 같이 열어볼 생각으로 폐백 때 받은 봉투 묶음을 가방에서 꺼내 이불 위에 쏟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욕실로 들어간 신부는 나올 생각을 않는다. 신랑은 욕실 문을 노크했다.

 "네" 하고 짧은 대답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라며 신랑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욕실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기대 누운 신랑은 하품하면서 신부를 기다렸다. 폐백 때 받아 마신 술기운이 이제야 몸을 이완시켜 기분 좋게 했다.

 

 욕실에 들어간 신부는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고민에 쌓였다. 다리에 난 털이 너무 길고 많았기 때문이었다.

 깜깜하면 좋으련만 생전 처음으로 남녀가 한방에 있는 지금, 방안 불빛은 너무 밝았다. 신혼 첫날 다리에 있는 털을 신랑에게 보일 생각을 하니 화장기 없는 얼굴이 문제가 아니었다. 신랑에게 야만스럽게 보인다는 말을 들을까 봐 나갈 수가 없었다. 

 고심하면서 준비한 것은, 검정 스타킹이었다.

 영희는 검정 스타킹을 신고 욕실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한참 후에 영희는 욕실 문을 빠끔히 열면서 밖으로 살금살금 나왔다. 신랑을 코를 골며 잠이 들었고. 이불 위에는 폐백 때 받은 봉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조용하게 흩어진 봉투를 모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영희는 실내 모든 등을 꺼버렸다. 어둠 속에서 신랑이 닿지 못할 것 같은 최대한의 거리를 두고 침대 끝을 붙들고 누웠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아주 깊이.

 하루 종일 시달린 신랑 신부의 코 고는 소리가 어두운 방안을 진동시켰다.

 밖에서 비치는 들어오는 불빛이 통유리 커튼을 통하여 가라앉은 어둠을 가볍게 거두었다. 

 순간적으로 눈을 뜬 영희는 누운 채로 눈을 깜박거렸다.

 벌써 씻고 나온 신랑이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신혼 첫날밤을 그냥 보내서 미안해. ㅋ"

 "언제 깼어요?"라고 물으면서 일어나 앉았다.

 하룻밤 푹 자고 피로가 풀렸을 뿐이데 둘이는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았다. 영희는 씻기 위해 욕실로 걸어가다가 침대 밑에 널브러져 있는 검정 스타킹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뒤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새벽에 코 고는 소리에 눈이 뜨인 신랑이 옆에 누워있는 영희에게 손을 뻗어 끌어안으려다가 발끝에 걸리 적 거리는 게 신경 쓰여 이불을 들추게 되었다. 스타킹을 신은 영희의 두 다리를 보는 순간, 웃음을 참느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코를 골면서 자고 있는 영희의 스타킹을 조용히 벗겨내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번개 같은 동작으로 스타킹을 수거하려는 찰나, 신랑의 손이 더 빨랐다.

 영희는 주저앉았다.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낸 수치심으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희야." 신랑이 말을 시작했다.

 "넌 나의 영원한 '희야'야! 얼굴이 네모져도 다리에 털이 많아도 나의 '희야'라고."신랑은 계속했다.

 "그럼 나의 희야는 내가 키가 작고 짧은 목을 가진 거를 부끄러워하겠네?" 신랑은 조용하게 물렀다.

 영희는 신랑이 키가 작고 짧은 목을 가졌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제 이런 거 안 신어도 됩니다 사모님." 하면서 영희의 어깨를 감싸않았고 영희도 고개 들어 신랑을 쳐다보았다.

 슬픈 얘기는 아니었으나 영희는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신랑이 손으로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

 "눈곱은 떼야지" 

 그제야 영희는 아무런 꾸밈이 없는 적나라한 모습을 신랑에게 드러내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희는 신랑 손에 들고 있던 스타킹을 낚아채고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 일 이후로 영희는 외모에 대해 무심했고, 하는 일에 자신이 생겼으며 주변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이웃의 아픔을 감싸 않을 줄 알고, 넉넉한 인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좋은 기운으로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틈틈이 읽어대는 독서는 조용하게 품격을 높여 지적인 얼굴로 보여갔다. 

  "네모 아줌마!"라고 대놓고 불러도 상처가 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네모 아줌마'라고 부르는 일이 점점 없어졌다.

 신랑은 사람들이 있거나 없거나 사십 고개의 자기의 와이프를 여전히 "희야"라고 불렀다. 시샘 어린 동네 아줌마들도 "희야 아줌마"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희야 아줌마'는 영희의 새 이름이 되었다.

이전 05화 기다려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