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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an 16. 2024

그때 그 언니들은

  오늘 길에서 만난 여고 동창에게 영이 언니 소식을 들었다.

  반갑다 보니 옛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났다.

  우리 집골목을 중심으로 좌우에 나보다 두세 살 정도 많은 언니들이 살았다. 언니들은 일도 잘해서 나무하러 갈 때나 바다 고동을 주우러 갈 때는 나를 데리고 다녔다. 언니들이 나무를 한 짐씩 짊어지고 올 때, 나는 나무 몇 개를 새끼줄로 감아서 질질 끌고 집으로 오곤 했다. 도시락 싸 들고 나무하러 산에 다녀왔다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바다 고동을 주우러 갈 때는 양팔로 감싸 안을만한 소쿠리를 들고 가서 언니들은 소쿠리가 넘치도록 주웠고 나는 소쿠리 바닥에 깔아놓을 정도로 주워왔다. 고동을 주워온 소쿠리를 볼 때마다 할머니는 "쯧쯧" 하며 혀를 내둘렀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산으로, 바다로 가면 무엇이든지 들고 올 수 있었다.

  전이 언니는 좌측에 살았고 영이 언니는 우측에 살았다.

  영이 언니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마당에서 한 곡조 뽑는 소리를 들을 때면, 가수 하춘화가 공연 왔다고 할 정도였다. 영이 언니가 줄넘기 줄을 손에 한번 감고 마이크 삼아 간드러지게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았다.

  어느 날 영이 언니가 집에서 국수 삶아 먹자고 담너머 얼굴을 내밀면서 나를 불렀다. 언니들 틈에 끼여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냉큼 달려갔다. 언니는 연탄불 위에다 솥단지를 올려놓고 물을 붓고 있었다. 연탄을 갈아야 할 때가 되기는 했지만 국수는 삶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이 끓거든 국수를 넣으라고 하고는 마당으로 가더니 또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시키는 일이니 지켜 앉아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솥뚜껑을 열면 김은 솟아오르는데 물이 바글바글 끓지를 않았다. 마당에서 노래하고 있는 언니에게 가서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고 했다. 언니는 "빨리 국수를 넣어야지."라고 했다.

  나는 뜨거워진 물에다가 국수를 풀어 넣었다. 그런데 연탄불이 꺼져가는 불임을 알지 못했다. 국수를 넣을 때도 물이 팔팔 끓지를 않았는데 국수를 저을수록 덜 익은 국수가 죽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나는 다급하게 언니를 찾았다. 노래를 부르다 말고 언니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솥뚜껑을 들고 서있던 내가 언니를 보자 얼굴로 솥단지를 가리켰다. 언니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아이고! 이를 어쩌면 좋아!"

  언니는 부랴부랴 솥단지를 연탄아궁이에서 들어 내렸다. 연탄아궁이에 연탄불이 거의 꺼져가기 시작했다.

  연탄불을 꺼트리면 언니네 엄마 안테  놀면서 연탄불 꺼트렸다고 맞아 죽을 일이었다. 타버린 연탄은 밖으로 꺼내고 위에 있던 연탄을 밑에다 놓고 숯을 올려 불을 피우고 새 연탄 한 장을 올려놓았다. 부엌에는 숯이 타는 연기가 자욱했다. 

  그동안 솥단지에서 불고 있던 국수는 풀죽이 되어 먹을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둘이는 솥단지를 뒤꼍으로 들고 가서 땅을 파서 구덩이에 붓고 묻어버렸다. 완전 범죄를 만들어 공범이 되었다.

  그 후로 언니와는 국수 얘기를 하는 법이 없었다.

  

  골목길 좌측에 살던 언니는 전이 언니였다.

  전이 언니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지 언니는 엄마 안테 두들겨 맞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도 언니네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서 언니가 혼나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엄마보다 날렵했기 때문에 몽둥이를 든 엄마를 피해 골목 끝으로 후다닥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밤이기는 하지만 그림자를 통해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전이 언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는척할 수는 없고 근처에 있다는 표시를 했다. 가끔 언니가 도망칠 때는 맨발일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네 엄마는 집 마당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며 딸의 험담을 하고 있었다. 전이 언니가 야간 하교에 갈 때마다 책가방에 쌀을 집어 담고 등교한다는 것이다. 군것질할 거리가 귀하던 그때 맨 쌀을 씹으면 요기도 되고 입이 심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어린애들은 이해가 되는데 어른들은 귀한 양식을 빼돌렸다고 생각하여 온 동네 사람들 들으라고 딸을 윽박질렀다.

  그래도 전이 언니는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이며 동생들 챙기는 일이며 잘했다. 그저 언니네 엄마가 욱하면 큰 소리부터 내는 바람에 별것 아닌 일을 가지고 언니를 동네 망신 시키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언니들도 뿔뿔이 헤어졌다. 나도 진학한다고 집 떠나면서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오기 힘들었다. 노래 잘하던 언니는 몇 년 후 시집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일 잘했던 전이 언니는 어디선가 젓가락 두드리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는 얘기를 아는 사람을 통해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살던 집도 팔리고, 골목도 없어졌으며 우리의 그 시절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최근 오랜만에 만난 여고 동창이 영이 언니는 노인정 같은데 다니면서 어른들에게 노래를 불러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는데, 별명이 '하춘화'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었다.

  언니들은 나를 집에서는 맏이였으나  어린 동생을 챙겨 주듯 재미있는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세월은 가도 옛날이 남아 추억에 잠겨 웃음 지을 일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언니들도 나처럼 조금씩 생기는 얼굴의 주름과 팔뚝에 생기는 검버섯을 보면서 한탄하고 있을까? 만나면 알아보기는 할까?

  아쉽지만 때가 되면 사랑하는 것들과도 작별해야 한다. 

  아파트 현관문을 닫는 순간, 우리는 이웃과 단절되는 소리를 들으며 고립되는 기분을 맛보아야 한다.

  단절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보기 위해 현관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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