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희 Feb 27. 2024

흐르는 눈물( 2 )

  옥이는 간호사였다.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만 보낸 시간이 이십삼 년이나 되었다. 애들은 이제 말이 통할 만큼 자라서 엄마가 일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흥미 있어했다. 가족들은 엄마가 과거에 간호사였다는 것을 새로워했고 출근을 위해 벽에 걸린 병원 가운을 만지작거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뛰고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음에도 용기 내라는 가족들의 응원이 격려가 되지는 못했다.


  옥이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우선이어서 고령의 자신을 흔쾌히 받아준 직장에 고마운 마음이 많았다. 수간호사, 차지 너스 등의 서열을 따라 옥이가 맨 하위였다. 어린 차지 너스들에게 고분고분해야 했고 병원의 오리엔테이션이 아직 안 돼있어 하루 종일 종종 뛰어다녔다. 마무리 못한 일들로 인해 퇴근시간이 언제인지 명확하지도 않았으며 일이 끝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라치면 무릎을 구부릴 수도 없었다. 병원 현관 밖으로 걸어 나올 때는 발을 질질 끌면서 나왔다.


  초주검이 된 상태로 퇴근하여 움직일 수조차 없이 소금에 절인 생선처럼 늘어져 있어도 가족들은 훌륭한 간호사라고 치켜세웠다. 옥이는 보름을 일하고 월급날 액수가 적힌 월급명세서를 받았다. 몇 푼 되지 않았지만 이 고령의 아줌마가 이십몇 년 만에 취업해서 받은 급여였다. 한 달 후에는 액수가 조금 더 불었고 그 후에 야근이며 연장근무며 하게 되니 몸은 고되었으나 일하는 재미가 따르기 시작했다. 

  돈의 힘은 위대했다. 항상 뛰어다니고 아직도 어리바리하여 어린 차지 너스들의 핀잔도 있으나 아무 생각 없이 견디었다. 이십 대의 자녀가 취직하면 집안의 경사이며 오십이 넘은 어른이 취직하면 국가의 경사라고들 했다. 

  

  남편의 수입만 의지할 때와는 또 다른 자신감이 생겨났고 얼마 남지 않은 남편의 퇴직도 두렵지 않았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힘들지만 버티면서 다니다 보니 대출금도 갚았고 퇴직한 남편의 일도 도움을 주었다. 친정에 다녀갈 때마다 전 같지 않게 여유도 생겼다. 그동안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꼭 사표 쓰고 와야지' 하고 별렀지만 사표를 못 쓰고 하루하루 버티었더니 사는 게 자신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옥이는 친정에 다니러 가서 돌아올 때 우는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쏟아지던 눈물이 눈물샘이 막힌 것처럼 흐르는 일이 없어졌다. 전에는 난감하고 답답한 상황들이 옥이를 끌고 다녔지만 이제 옥이는 순서대로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십 년 넘게 열 손가락이 터지고 갈라지면서, 두 다리가 부서지게 뛰어다니고 걸어 다니면서 버텨냈더니 삶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너무도 피곤한 몸이 슬퍼할 여유를 갖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옥이는 포기하지 않고 버티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옥이는 자신이 머리가 굉장히 좋지 않아서 겪고 있는 팔다리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 옥이가 뒤늦게 대학원 입학을 하고 환갑의 나이에 졸업했다. 대학원 수업 중에도 "내가 이 나이에 뭔 영화를 누려보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라며 끊임없이 되물었으나 졸업이 대답을 대신했다. 


  옥이는 이제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사는 동안 남들처럼 내세울 것 없었던 친정으로 인해 의기소침했던 마음이 조금씩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해 늘 시한폭탄을 끌어안은 것 같은 아들과 말기 암을 앓고 있는 친정엄마, 알코올중독인 친정 동생 등 이 모든 것들이 옥이가 짊어진 삶의 무게였다. 그러나 이제 옥이는 이런 주변 상황이 짐이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애써서 안 되는 것들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는 동안 앞으로도 크고 작은 일들은 끝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살아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니어 클럽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면 즐기면서 여유롭게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인생이 계획대로 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 고난이여 오라. 내가 맞이하겠다."라며 옥이는 마당의 풀을 거침없이 뽑아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눌러쓴 옥이에게 청년의 다부진 기운이 느껴졌다.

이전 14화 흐르는 눈물( 1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