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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Feb 20. 2024

흐르는 눈물( 1 )

  친정이라고 다녀갈 때마다 옥이는 남이 보거나 말거나 눈이 퉁퉁 붓고 벌게지도록 울었다.

  

  친정 엄마가 건네주는 보따리를 받아 들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참 길었다. 엄마는 매번 친정을 다녀갈 때마다 무엇이든 싸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없는 살림 뻔히 알고 있는 옥이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정말 싫었다. 

  "섭섭해서 어떡하냐. 애고 챙겨줄 것도 변변찮아서 섭섭해서 어떡하냐?"

  "엄마는, 뭐가 섭섭하다고 자꾸 그래. 지금도 너무 과해. 이런 거 돈 주고 사야 되는데, 담부터는 준비하지 마세요."

  그래도 엄마는 끝까지 섭섭해서 어떡하냐고 버스가 올 때까지 중얼거린다. 옥이는 버스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공항 가는 버스가 도착하자 옥이는 엄마 팔을 붙들고 말했다.

  "엄마, 몸조심하고 쉬면서 일해. 냉장고 위에 봉투 있어. 얼마 안 돼서 미안해요."

  옥이는 얼른 버스에 올라탔다. 옥이의 등 뒤에서 엄마의 야단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며 가며 차비도 버거울 걸 뭐 하러 놓고 가."

  옥이는 들은 체 만 체 버스에 올라탔다. 차창 밖으로 엄마가 뭐라고 하는 모습이 보였으나 차는 곧 출발했다. 의자에 앉은 옥이는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급하게 쏟아져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닦아낼 생각도 없었다. 눈물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 잘못돼서 집과 과수원 등 조금 있던 가산들이 날아갔을 때, 엄마는 이제 어떻게 사냐며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옥이는 아버지가 노름한 것도 아니고 식구들과 잘 살아 보려고 애쓰다가 그런 건데 그만하시라고 엄마를 타박했다. 

  아버지는 70회 생신을 보내고 다음 해 돌아가셨다. 

  옥이는 엄마가 되고 또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을 아버지가 안쓰러울 때가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생각나는 아버지, 지금 같은 좋은 세상에 누려보지 못한 여유와 많은 것들을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다 흘러내고 고통스러운 짐만 떠안고 가셨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평행을 잡고 정상궤도에 진입하게 되자 제주가 작은 섬으로 보였다. 저 작은 곳에서 낳고 자라면서 그 많은 일들을 겪다니,,,. 옥이는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친정을 다녀갈 때마다 거의 매번 이랬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이 대물림되는 것처럼 보여 언젠가는 꼭 이런 궁상스러운 모습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할머니는 90세가 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엄마가 찾아갈 때마다 부스럭거려 찾아낸 콩 한 줌을 밥 할 때 넣고 먹으라고 내어주시는데, 엄마도 고분고분하는 법이 없이 노인네가 별걱정 다한다고 큰소리가 오갔다.

  지금 옥이와 친정엄마가 그렇다. 옥이는 넉넉지 못한 친정엄마에게 시원한 도움이 못 되는 무능한 자신이 싫었다. 외할머니와 친정엄마와의 궁상스러워 보이는 모습이 옥이에게는 대불림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끊을 수 있기는 한 것인가. 자라는 동안 분명 좋은 일도 있었고 행복한 일도 있었을 테지만 도무지 옥이는 친정에서 편안하게 지내본 기억이 없다. 기내 차창에 머리를 기대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옥이는 반겨주는 가족으로 하여금 편안한 가정이 있음에 감사했다.

  성실한 남편과 착한 아이들은 모두 보배였다. 서로 얘기를 하겠다고 우기는 애들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런 다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도 힘이 드는 일인가 생각했다. 


  옥이는 이렇게 안주하며 살다가는 후에 외할머니와 친정엄마와의 삶을 대물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꼈다. 이십여 년 동안 살림하고 애 키우며 살았는데 이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이는 취직하기로 결심했다. 이십 년 넘게 전업주부로 지냈는데 가능한 일일까 두렵기도 했다.

  옥이는 옛날 앨범 사이에 꽂아둔 간호사 면허증을 찾아냈다. 젊은 날 병원에 잠시 취직해서 결혼과 함께 사직한 일이 전부였던 옥이는 그나마 간호사 면허증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옥이는 일을 시작했다.

  강산이 두 번 뒤집어지고 나서 딸 같은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한다고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 이십 년이 지났으니 많은 것들이 새로워졌을 거라고 내심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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