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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샘 May 08. 2021

교양으로 읽는 성경

기본 고전 독법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 이 한줄에 학생들이 국어시간에 눈물을 흘렸다. 사진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성경 이야기의 사실성과 진실성

어떤 사람은 성경에 사실만 적혀있다고 믿는다.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 갈등은 상당히 첨예하지만, 장르를 알고 나면 싸울 일이 없다. 성경의 장르는 대체로 문학, 역사, , 논설로 정리된다. 이때 성경은 사실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성경의 문학인 부분을 두고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답은 문학은 허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엔 그리스신화 같은 신화도 있고 삼국지 같은 역사소설도 있다. 즉,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픽션(fiction)이다.


허구라고 하여 거짓말이라고 폄훼한다면 부당한 일일 것이다. 소설이 허구라고 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의 가치는 현실의 고통을 드러내고 때로는 해결까지 제시하는 데 있다. 이것이 문학의 진실성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보자. 주인공 김첨지는 아픈 아내를 위해 늦게까지 일해서 설렁탕을 사오지만, 아내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 소설은 허구지만, 그 시대의 빈부격차도, 열심히 일한 노동자도, 억울한 죽음도 모두 진실이다. 작가는 이러한 고통들을 엮으며 “이건 너무 슬프잖아 이래선 안 되지”라는 메시지를 담아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마르두크는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를 죽여 상반신으로 하늘을, 하반신으로 땅을, 그의 남편 킹구의 피를 흙과 섞어 인간을 만든다. 사진은 대영박물관 소장 중인 니네베의 부조벽화.

창조이야기

『운수 좋은 날』이 그러하듯, 성경 또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의 7일의 창조이야기는 일요일엔 좀 쉬게 해 줘!!”라는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단락의 장르는 일종의 저항 신화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식민지였는데, 바빌론은 신들의 왕 마르두크가 반란을 일으킨 신들의 몸을 갈라 세상을 만들고, 흘러나온 피를 흙과 빚어 인간을 만들어 신을 섬기게 했다는 신화를 갖고 있었다.* 이 신화에서 인간은 나면서부터 패배자였고 신들을 섬기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신이란 바빌론의 지배층을 의미했다. 신화는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지배 이데올로기였고, 그 메시지는 너희 식민지 백성들은 우리의 지배에 반항하지 말고, 쉬지 말고 일해라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사를 왜곡하려 했던 것과 동일한 의도였다. 그리고 한국의 지식인들이 역사와 언어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것과 동일한 목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새로운 신화를 썼다. 이 이야기에서 신은 전쟁이 아니라 말씀과 일로써 세상을 만들었고, 인간은 신을 닮은 귀한 존재였고, 따라서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라고 되어있었다. 성경이 분석한 고통스러운 현실의 원인은 바로 제국의 지배였고, 그 해결은 존엄성의 확보, 구체적으론 휴식이었다. 성경의 창조신화는 과학논문 같은 것이 아니고, 사상적 대결과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한 투쟁문학이었다.


코셔 인증을 받았음을 표시한 맥도날드. 독실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돼지를 비롯한 성경이 금하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성경의 법은 모두 진리인가

문학이 아닌 성경의 나머지 절반은 법이나 논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체로 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그 윤리들은 보편적인 진리냐, 오늘에도 적용할 수 있냐라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 답은 성경은 역사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라는 것이다. 모든 책이 그렇듯 작가는 당시의 관심사를 갖고서 당시의 독자들에게 글을 쓴다. 따라서 그 시대에 매우 유익한 지혜였을지라도, 시공간을 무시하고 오늘날의 기준으로 사용하려고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쓰여 있지만, 그건 이스라엘의 지리적 풍토로 인한 관습이기에,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당장 이 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다들 곤란해할 것이다. 따라서 경전에 쓰여 있더라도 그것이 타당한지, 여전히 이로운지, 그래서 본받을 만한지 생각해가면서 읽는 것이 좋다.

 

한편 과거의 구체적인 법이나 지침의 수명이 짧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가 지닌 가치는 보다 오래갈 수 있다. 수천 년이 흘러도 세상살이가 힘든 이유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노예 소유를 금하는 율법이나 노예해방을 요구한 바울의 편지는 신분제·빈부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고, 모두에게 땅을 돌려주라는 "희년법" 같은 경우 부의 재분배와 정의로운 토지제도에 대한 해결 전망을 제시해준다. 2000년도 더 전의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 좀 답답하기도 하지만, 이럴 때 성경을 비롯한 여러 고전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주는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되어준다.


기본 고전 독법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성경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문학으로서 허구성과 진실성을 동시에 갖는다. 또한 성경의 윤리지침이 모두 보편진리인 것은 아니다. 역사적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이건 모든 고전이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사마천의 『사기』나 헤로도토스의 『역사』 같은 권위 있는 옛 역사서에도 착오나 과장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그럼 고전은 어떤 가치가 있는 거지? 왜 읽지?" 그건 고전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삶의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고전은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해서 권위를 얻은 것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지혜를 보여주기 때문에 권위를 얻은 것이다.


 지혜가 얼마나 설득력 있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가 그 책의 가치를 결정한다. 따라서 고전을 읽는 사람은 작품의 메시지를 오해 없이 이해하고, 또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본적인 독법은 이러하다. 첫째로, 장르를 확인한다. 장르를 착각하면 작품해석이 첫 단추부터 어긋나기 때문이다. 둘째로, 장르가 문학이었다면 상징과 서사구조에서, 비문학이었다면 정보와 논리구조에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추출한 작품의 메시지를 이성에 비추어 그것이 여전히 도움이 될만한지 그래서 본받을 만한 것인지 살펴가며 읽으면 되는데, 이는 성경뿐만 아니라 모든 고전에 통용되는 독법이다.



*강성열,『고대 근동의 신화와 종교』(살림출판사, 2006), 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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