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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샘 Jul 26. 2021

십일조도 내는데 교회는 뭐 해주는 거 없나

사회안전망 교회 - 기본소득과 주거안정

십일조(헌금)란 무엇인가

십일조란 소득의 1/10을 희사하는 것을 말한다. 매주 예배에서 내는 주정헌금은 5천 ~ 5만 원 정도이므로 보통 한 달 20만 이상인 십일조는 개신교에서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모임 헌금은 성직자의 생활비, 교회 건물과 조직의 유지비, 포교와 사회적 공헌을 위한 선교비로 사용된다.

     

십일조의 기원은 구약의 율법이다. 일종의 세금으로서 국가와 종교를 유지하고 빈곤을 해결하는 데 사용되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도 세금으로 1/9, 1/10을 걷은 걸 보면 “세금=1/10”이라는 것은 고대에 어느 정도 보편성을 지닌듯하다.


십일조를 내지만 예배만을 공급받는다

소득의 1/10은 큰돈이다. 여유로운 노후를 위해서 1/10씩 저금을 하면 충분하다고 한다. 이 말은 과장을 보태서 성실한 신자들은 안정된 노후를 교회에 투자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금으로 1/10을 교회에 내는 나에게 무엇이 보장되는가 하면 예배말고는 제공되는 것이 마땅히 없는 것 같다는 게 문제다.


세상의 정부가 오히려 낫다. 노동능력을 상실하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될 수 있고, 출산하면 아동수당도 주며, 직장을 잃으면 실업급여도 주고, 의료서비스와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나이 들어서는 노령연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교회는 내가 가난해졌을 때 무엇을 해주는가? 거의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어려울 때 함께 돕지 않는다면 공동체라거나 형제자매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전에 신자들은 그냥 내라니 내거나 사후세계의 복락을 받을 테니 냈다. 그런데 이제는 자의식이 강해졌고 내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적어져 기꺼이 헌금하려는 사람이 줄었다. 아울러 헌금이 교회의 사회사업의 원천이 된다는 인식도 적고,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기쁨만으로 소득의 1/10을 쓴다는 게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움직임: 기본소득, 주거지원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문제를 느끼고 변화를 추구하는 교회 흐름들이 생겨났다. 이는 교회의 씀씀이에 대한 문제의식이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한계와 삶의 고통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서울 노원구의 생명사랑교회는 코로나로 전 국민이 앓던 2020년 4월, 유아를 포함한 모든 교인 114명 전원에게 각각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어떤 교회들은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여 현장예배를 강행하려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어려운 시기 교인들의 생활을 걱정해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교회도 있었던 것이다.*


화평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매월 초 전달하는 기본소득 지급 봉투. 사진출처 - 국민일보

코로나 이전에도 이러한 실험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주 화평교회는 기본소득헌금을 신설해 유아를 포함한 모든 교인들에게 월 15,000~20,000원을 지급했는데 2018년 당시에도 이미 2년간 시행하고 있었다.**  


하나의교회 첫 번째 공동주택 하심재.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로에 있다. 사진출처 - 노컷뉴스

영국 성공회는 부동산 약자를 위하여 교단 토지자산의 3%를 사용하는 커밍홈(Coming Home)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교회의 토지를 내놓아 공동주택을 짓는 사업이다. 또 서울 서대문구의 하나의교회는 신도들이 조합을 결성하여 공동주택을 지어 산다. 2021년 4월 세 번째 공동주택 “하담재”를 짓고 있었는데 하담재는 주거위기에 노출된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일부의 것이고 상징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중요하다. 그 교회의 방향과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며, 거기에 기꺼이 자신의 것을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더 큰 규모로 지속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고대 기독교: 사회보장조직

위의 시도들은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의외로 전통적인 교회 모델이다. 1세기 초기 기독교 시기부터 교회는 가난한 신자를 부양하는 사회보장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의 전제조건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이었는데 상부상조의 실천은 이를 더 강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에 따라 구제는 점차 확대되었는데, 가령 3세기 로마교회는 가난한 신자 1,500명을 부양했다.°° 일요일 예배에서 내는 헌금은 바로 여기에 사용되었다.


이때의 교회는 요즈음 익숙한 예배를 그저 “보러”가는 사람들의 모임과는 다른,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였다. 이 공동체에서 기여하는 사람은 소속감과 존경심을 제공받았고, 도움받는 사람은 생활의 안정과 소속감을 제공받았다.

     

이러한 공동체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구성원 모두에게 안정감과 보람을 느끼게 해 줬다. 부담 없이 결혼°°°하고 다산하는 한편, 새로운 가입자가 계속해서 늘었다. 교회를 일구어 나가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인구와 주택이 늘어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이것을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 “작은 상가 교회의 특별한 시도…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든 교인에게 생활 지원금 지급”, 『뉴스앤조이』, 2020.04.28.,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0602 (2021.7.25.)


** ““가난한 자 없게 하라” 기본소득 실험하는 전주화평교회, 『국민일보』, 2018.11.08.,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826501&code=61221111&cp=nv (2021.7.25.)


*** “[기획보도-교회와 부동산] ⓶ 교회가 짓는 공동주택” 『노컷뉴스』, 2021.04.30.,  https://www.nocutnews.co.kr/news/5545618 (2021.7.25.)


° 게르하르트 로핑크,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정한교 역, (분도출판사, 2017), 257. 물론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할 것을 요구하고 일자리도 알아봐 주는 직업보도체제이기도 했다.


°° 헨리 체드윅, 『초대교회사』, 박종숙 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9), 65.


°°° 반대로 교회 덕분에 부담 없이 결혼(재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은 혼자 살고자 하는 여인들, 특히 재산이 많은 과부들에게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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