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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샘 Jul 20. 2021

착함을 경쟁력으로 치환한다

게임이론과 신뢰의 진화

일러두기

이번 편은 니키 케이스(Nicky case)의 <신뢰의 진화>라는 게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짧고, 재밌고, 게임이론과 협력의 생존전략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매우 유익한 게임이니 꼭 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신뢰의 진화> https://osori.github.io/trust-ko/ 모바일은 가로로 플레이하세요 :)


해피바이러스 프로젝트, 실현 가능한가

전편에서 출세를 포기하고 갑질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거부한 사람들을 보았다. 이들은 피라미드 안에 있지만 높이가 아니라 깊이를 추구하고,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돌보며,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전파시킨다. 그렇게 온 세상이 좋은 사람들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 해피바이러스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감염” 시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 변화라는 것이 특별히 고매한 인격을 지닌 사람의 희생정신으로만 가능하다면 승산이 없다. 해피바이러스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그 변화가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해야 한다. 


즉 착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이로움과 일치하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그걸 가능하게 할까?


답은 단순하다. 서로 잘해주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상호이익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 원리를 시각화해 확인할 수 있도록 게임이론을 잠시 살펴보자.


게임이론의 승리자

상자에 동전을 넣으면 상대에게 동전 3개가 주어진다. 협력은 동전을 넣는 것, 배신은 넣지 않는 것이다. 둘 다 협력하면 좋겠지만, 상대가 배신하면 동전을 잃는다. 오른쪽은 보상표

게임이론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이다. 둘 다 협력하면 전체로 볼 때 최선의 결과를 낳지만, 내가 배신하고 상대가 협력하면 내가 큰 이익을 본다. 반대로 상대가 배신하면 큰 손해를 보지만 나도 같이 배신하면 그 손해를 줄일 수 있다.  

왼쪽이 자신의 점수. 상대의 협력을 가정하면 3 > 2 이므로 배신이 합리적이다. 상대의 배신을 가정해도 0 > -1 이므로 배신이 합리적이다. 배신은 수학인 것인가!?

요는 상대가 협력해도 배신하는 것이 이득이고, 배신해도 배신하는 게 이득이라는 것이다.


역시 세상은 전쟁터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빼앗고 겁주고 속이는 게 성공하는 길일까? 상대를 단 한 번씩만 만난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을 여러 차례 만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따라쟁이는 협력으로 시작하지만 배신당하면 응징한다. 항상협력꾼, 항상배신자는 이름으로 설명이 충분하다. 나머지 둘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5명의 사람들이 10라운드씩 상호작용을 한다. 누가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을까? 항상협력꾼, 따라쟁이(협력과 응징), 항상배신자. 선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은 협력꾼을, 세상이 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배신자를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승리자는 협력을 추구하지만 배신자에게는 응징하는 따라쟁이다. 착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사람. 배신자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따라쟁이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지속적인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그러나 가는 말이 미웠는데 오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그건 호구다.

신뢰의 진화

자 그럼 게임이론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원래 주제를 다뤄보자. 선하고 의로운 사람의 사회적 유전자는 확산될 수 있을까? 이번엔 게임을 확장시켜보자.

진화론의 개념을 차용한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서 점수를 적게 딴 5명을 멸종시키고 점수를 많이 딴 유전자를 5명 추가한다. 이 게임을 반복하면 누가 사회 전체를 장악하게 될까?

협력꾼이 절반이상이라는 낙관적인 상황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배신자에게 점점 먹히더니 협력꾼은 금방 멸종했다.

배신자가 절반 이상이다. 세상이 부패와 사기, 폭력과 무질서로 가득하다. 이번에야말로 나쁜 놈들의 시대가 되는 걸까?


따라쟁이들끼리 도움을 주고받더니 순식간에 배신자들을 제압했다. 배신자들끼리는 서로 협력할 수 없지만, 따라쟁이들끼리는 서로에게 협력꾼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 따라쟁이들이 서로를 돕더니 배신자들에게 역전승을 거뒀다. 상호작용의 횟수가 충분하다면 따라쟁이는 배신자를 몰아낼 수 있다. 세상은 착한 사람으로 가득 차고 해피바이러스 프로젝트 대성공이다. 종교와 사상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착하고 지혜롭게 살라는 덴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라운드가 일정 횟수 이하로 떨어지면 배신자가 승리한다. 인간관계가 얕고 좁아질수록 사기꾼이 유리해지는 것이다.

라운드는 실생활에서 상호작용의 양을 가리킨다. 5라운드까지 떨어지면 배신자가 승리하기 시작한다. 가족이 적고, 친구가 적고, 여가가 적을수록 나쁜 놈들이 유리해지는 사회가 된다.

즉, 따라쟁이라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어떤 조건인지가 최적의 전략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개인차원에서는 게임의 조건을 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생존전략이다. 라운드 수가 적은데도 따라쟁이를 고수하는 것은 멋지지만 어리석은 일이다. 환경은 우리를 결정한다. 그러나, 환경 또한 우리에게 적응한다. 같은 원리를 사회적 차원의 넓은 시야로 다시 보자. 조건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원하는 종을 남길 수 있다는 뜻이다.


현실게임 승리조건

그러면 현실세계로 돌아오자. 어떻게 하면 라운드 수를 늘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따라쟁이가 승리할 수 있을까?


답은 이미 이야기했다. 따라쟁이들을 모아서 서로 이익을 주고받게 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만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돕고, 또 사회적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서로 마련해준다. 이런 협력적인 사회적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홀로 있는 따라쟁이나 남을 등쳐먹고사는 배신자보다 훨씬 더 경쟁력(생존력)있다. 생존력이 높다는 말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퍼뜨린다는 뜻이다. 적자생존이다.


세상의 제도를 바로잡자는 것, 착한 구성원을 늘려나가자는 것, 멋진 대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희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건 참 부담스러운 제안이다. 그러나 선하면서도 나를 이롭게 하는 이 방법은 실제로도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 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만들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은유했지만 그 내막은 상호이익을 통해서 외부의 사람들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실제로 성공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인들은 출산율이 높았으며, 빈곤과 전염병에서 살아남았고,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기독교인은 4세기 만에 제국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신뢰의 진화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게임이론의 따라쟁이들이 바로 기독교인이다. 건강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에 귀의하지 않은 따라쟁이들도 기독교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익명의 그리스도인”). 오히려 배신자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자칭 그리스도인보다 낫다.


또 따라쟁이들의 커넥션을 조직으로 만든 것이 바로 교회이다. 이것이 좋은 기독교인들이 좋은 교회를 세우고 확장시키고 싶어 하는 이유이다. 사회가 모두 따라쟁이가 되면 모두가 협력꾼인 사회와 동일해진다. 이것이 기독교가 지향하는 특이점(종말), 앞서 말했던 유토피아(하나님나라)이다.


거창하게 말했는데 다시 개인적 차원에서 이야기해야겠다. 선함과 의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윤택하게 살기 위한 전략은 따라쟁이들을 조직해서 서로 돕고 사는 것이다. 그러면 내 이익추구가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그건 다시 우리 조직의 경쟁력이 된다. 조건을 갖춘다면, 악한 것은 도태되며, 착한 것이 살아남고 생태계를 지배한다.

왼쪽 그림에 있는 여섯 명의 따라쟁이 조직을 교회라고 부른다. 열세인 것처럼 보여도, 이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악을 몰아내고 게임을 장악할 수 있다. 지저스의 누룩(이스트)과 소금의 비유는 이를 가리킨 것이다.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리고, 적은 소금이 물 전체를 짜게 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기독교가 지향하는 전망은 모든 인류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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