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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샘 Oct 06. 2022

젠가를 보수하자

보복 말고 보상

 관계라는 건 젠가와 비슷하다. 한 사람이 잘못을 하면 나무도막 하나를  것이다. 하나 둘 빠지다 보면 와르르 무너진다. 처음에 좋았던 관계는 없고 미움만 가득한 채 파탄이 난다. 우리가 부드럽고 착한 사람을 찾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안정적인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빠진 나무도막을 복구할 수 있는가, 즉 "관계를 회복할 능력이 있는가"이다. 아무리 천천히 나무도막을 뺄지언정 그것을 보수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무너진다.


 문제의 해결은 단순하다. 한쪽이 잘못을 했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피해만큼 보상을 하면 된다. 보상을 할 때는 상대의 기분마저 좋아질 만큼 하면 더할 나위 없다. 이러한 커플은 갈등을 겪을 때마다 관계가 돈독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A가 B의 물건을 고의든 실수든 망가뜨렸다. A는 자신이 잘못했고 다신 안 그러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망가진 물건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새로 사주었다. 잘못 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이다. B는 전보다 A가 더 좋아진다. 새 물건은 덤이다.


 관계가 렇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 이유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1.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경우.

2. 상대의 잘못을 알려주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우

3. 잘못이 아닌데 잘못이라고 착각하는 경우.

4. 잘못에 앙갚음으로 대응하는 경우.


각 유형들은 2개 이상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유형의 솔루션은 반대로 하는 것이다. 잘못은 인정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알려주며, 잘못 유무를 분별하고, 앙갚음하지 않는 것. 하지만 이런 매너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는 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훨씬 많다.



1. 잘못 인정이 어렵다.

 1번 유형이 자신에게 해당한다면 인정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답이다. 지금 "내 잘못이야. 미안해." 10번 낭독해본다. 그리고 카톡이나 메모장에 써두고 연인에게 잘못했을 때 영혼 없이라도 "그대로" 읽어주자. 상대는 당신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다. 울지도 모른다. 그 밖에 "맞는 말이야." "음. 그렇군요"와 같은 상대를 긍정해주는 말도 연습해보자.


 1번 유형이 상대에게 해당한다면 좀 더 까다롭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부린다면 이렇게 말해보자. "당신이 한 행동을 내가 그대로 당신에게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상대가 "기분이 나쁘겠죠" 등의 대답을 한다면 대화의 여지가 있다. 자신의 기분이 어땠으며 당신이 사과하길 바란다고 이야기해보자. 그런데 반대로 대답을 피하거나 "기분 나쁠게 뭐 있냐"와 같이 말한다면 자리를 피하고 서로에게 머리를 식힐 시간을 주자. 비합리적•비공감적 사고에 빠져버린 사람을 당장 마음 고쳐먹게 할 수는 없다. 물론 합리적인 말들을 통해서 논파해줄 수는 있고, 내 힘이 센 경우에는 사과까지 억지로 이끌어 낼 수도 있지만 그 경우엔 상대의 미움이 더 커진다. 부모자식, 스승제자 간에는 모를까 연인에게는 적절하지 못하다.



2. 잘못을 알려주는 것이 어렵다.

 2번 유형이 자신에게 해당된다면 이것도 연습이 답이다. "당신의 행동을 보았을 때 저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행동은 우리의 관계를 악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사과하고 앞으론 반복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탑에서 나무도막을 뺐다면 그것을 알려주고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무너진다. 저 말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참 뻔하고 딱하다. 잘못을 지적받은 상대가 도리어 기분이 나빠져 나무도막을 하나 더 뺄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잘못했다고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평화적인 언어로는 전달해야 한다. 참고 넘어가는 것은 연인이라면 연애기간을 늘릴 뿐이지 파국을 막을 수는 없고, 부부라면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이어갈 뿐이지 행복할 수는 없다.


 2번 유형이 상대에게 해당된다면 조금 더 쉽다. 상대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긴장을 덜어주면 된다. 나는 혹시라도 당신에게 잘못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며, 당신의 행복에 늘 기여하길 원하고, 우리의 행복한 관계를 위해선 당신의 피드백이 꼭 필요하다고 말해주자. "잘못"이라는 표현을 너무 어려워한다면 "나무도막이 빠졌어"와 같은 부담이 덜 가는 표현을 주고받기로 하자.



3. 잘못과 아닌 것을 혼동한다.

 3번 유형이 자신에게 해당하는 경우 잘못을 판별하는 명시적인 기준을 마련해 분별할 때 사용해보자.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황금률"이다. 스스로에게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상대에게 했는가?"하고 물어보자. 원초적이 자아는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공평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고 내 이익을 위해 상대를 부당하게 대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때 우리의 착한 마음인 이성이 작동한다. 내 욕구(혹은 감정)의 판단과 이성의 판단이 서로 모순된다면 우리는 이성을 택해야 한다. 상대방이 그렇게 해주기를 우리가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이성이 "이 행동은 나였어도 싫어했을 거야"하고 답을 냈다면 잘못한 것이다. 인정하고 사과하자.


 한편 상대방의 행동을 검증할 때는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이미 자신의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이 아닌데 착각해서 화가 나는 때도 있고, 심지어 상대가 옳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때는 "내 기분이 나쁘다고 반드시 상대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렇게 평온을 되찾고 나면 침착한 분위기에서 상대에게 "당신의 행동을 보았을 때 저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행동은 우리의 관계를 악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사과하고 앞으론 반복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하자. 그리고 상대가 이견을 갖고 있더라도 발끈하지 말고 타당성을 찬찬히 검증해보자.


 3번 유형이 상대에게 해당할 때가 가장 힘들다. 대개의 경우 자신의 기분 나쁨과 상대의 잘못을 혼동하고 있고 자신의 감정마저 상대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행동이 날 기분 나쁘게 했어!"). 더구나 잘못 유무를 함께 검증해볼 정도로 이성적인 상태가 아닐 것이다. 이럴 때는 황금률을 꺼내는 것은 화를 부추긴다.  감정에 경도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폭력대화다. 상대는 비합리적인 발언들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합리적인 답변을 해주는 것도 해결법이 아니다. 상대는 귀 기울여 듣고 자기 생각을 바꿔볼 의사가, 적어도 그 순간에는, 전혀 없다. 그러니 우리는 따라가 주려는 마음을 접고,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 그 대화의 주제는 상대의 감정과 욕구이다. 불안한지, 답답한지, 화나는지, 슬픈지 물어봐주고 "그랬구나~"하며 공감해주면 상대는 점차 마음을 놓는다. 내 감정에 관심 갖고 알아주는 사람은 내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면 상대가 뭘 원하는지 물어봐주고 구체적인 요구(부탁)로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자. 이런 경로의 대화를 나누면 잘못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유보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요구가 타당한지, 들어줄 것인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은 그 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다.


 그런데, 비폭력대화도 만능은 아니다. 상대가 합리성도 공감능력도 잃었다면 남은 방법은 쿨다운뿐이다. 미련 갖지 말고 서로 머리 식힐 시간을 주자. 이후에 대화를 재개할 때는 감정적으로 변하기 쉬운 육성 대화보다는 문자메시지 같은 글로 하는 것이 좋다.


4. 앙갚음을 한다.

4번 유형은 자신이든 상대든 안 하는 것이 상책이다. 당신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앙갚음하기를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 연인이 서로 앙갚음을 안 하면 관계가 오래 갈 것이다. 반대로 서로 앙갚음을 하면 어떻게 될까? 파탄이 난다. 앙갚음을 하는 이유는 상대가 자신을 따라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은 상대가 앙갚음하는 것이 두려워 그에게 잘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앙갚음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관계를 개선시키려는 의도로 앙갚음하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감정풀이를 하기 위해서, 상대를 통제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다. 즉 사랑과는 정반대 편에 있다. 앙갚음은 반드시 관계를 해친다.


 앙갚음을 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그것이 잘못임을, 더구나 대개 실수로 일어나는 일상적인 잘못 보다 더 큰 잘못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고의든 아니든 상대가 탑에서 나무도막 하나를 빼냈다. 앙갚음을 하는 것은 상대를 비난하면서 자신도 나무도막 하나를 빼는 행위이다. 이런 일은 갈등을 "싸움"(전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전쟁이란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줌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가장 폭력적인 외교적 수단이다. 전쟁에서는 분명 팃포탯(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 가장 합리적이다. 네가 한 대 때릴 때 나도 한 대 때리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없다. 그런데 너와 나는 연인, 부부 사이다. 싸움모델을 적용하면 관계가 황폐해진다. 국가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우호적인 관계를 버리더라도 영토, 자원, 인력을 전리품으로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이의 싸움은 이겨도 전리품이 없다.


 앙갚음을 그만하기 위한 두 번째 걸음은 싸움모델을 문제해결모델로 바꾸는 것이다. 누가 잘못했든 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빠진 나무도막 자리를 보수하는 일이다. 상대가 나무도막을 뺐을 때 나도 빼는 일은 하지 말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 방금 나무도막 뺐어. 원래 자리에 돌려놓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도 그런 잘못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의 한계 때문에 그랬다면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갈등이라는 것은 10:0으로 판별할 수 있는 일방적인 잘못 보다는 어느 정도는 쌍방과실에서 시작하거나 외부요인일 경우가 많다. 이때 "다 너 때문이다. 네가 다 책임져라"하는 태도는 건강하지 않다. 가해자에게 우선적인 책임이 있지만, 피해자 또한 가해자를 불쌍히 여기는 한도 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더 성숙한 사람이 그의 연인을 이끌어주는 것이다. 너와 나는 적이 아니라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함께 협력해 해결하는 동료이다.


 앙갚음에 대한 마지막 솔루션은 간단하다. 앙갚음도 잘못으로 다루고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 먼저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고 보상을 한다. 앙갚음을 한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을 한다. 이런 약속을 정하고 실천하는 커플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앙갚음의 빈도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는 커플은 탑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실수, 잘못, 갈등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내버려 두면 반드시 무너지고 보복하면 더 빨리 주저앉지만, 사과하고 보상하면 영원히 함께 행복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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