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힘이 있기에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언령의 시대, 진심이 가지는 마법

‘언령(言靈)’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의 말에 깃든다고 여겨지는 힘.


‘말이 씨가 된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같은

우리 속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문화권을 막론하고, 말이 어떤 실재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은 보편적이다.


그래서일까.
현실을 반영한 소설의 세계에서도
말이 힘을 갖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마법사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거나
‘마나에 대한 맹세는 절대 어길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 정말 그런 신비한 힘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말에 무언가의 힘이 실리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낀다.
나는 그걸, ‘거짓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체험하고 있다.



거짓말을 그만둔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다.
그전까지는 누구나 그렇듯,

작은 거짓말쯤은 곧잘 하던 아이였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학교가 뜻밖에 일찍 끝났고,

학원 수업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일단 학원에 들렀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오락실로 향했다.
돈은 없었지만, 형들이 게임하는 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학원 수업은 이미 시작했고,

결국 땡땡이를 쳤다.
시간을 때우다가,

학원이 끝날 무렵 맞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따라 아버지가 일찍 귀가하셨다.
“학원 다녀왔니?”라는 평범한 질문에
별생각 없이 “네”라고 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학원에 두고 온 내 가방을 들고서.


거짓말은 금세 들통났다.
아버지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또 이런 일이 있으면, 크게 혼날 줄 알아라.”


아버지는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키는 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한 거짓말은,

어찌 그렇게 귀신같이 알아채시는지.

그날 이후로,
나는 적어도 가족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작은 두려움에서 비롯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발적인 선택이 되었다.
그 편안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론 말을 의심하거나 해석하느라

소비하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대화는 더 간결해지고, 신뢰는 쉽게 쌓인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편안했다.


그러던 중,
나는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에도 민감해졌다.

목소리 톤만으로도 거짓말임을 알아챌 때가 늘었다.

내가 하는 거짓말도 예외가 아니었다.

스스로 어색함을 크게 느끼는 만큼

더욱 거짓말을 하기는 힘들어졌다.


20년 넘게 지나는 시간 동안
내가 해본 거짓말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몇 번의 순간조차
놀라울 정도로 어색했기에

상대가 알아챘을 것이라 생각한다.



거짓말에 서툰 사람이 된 대신,
진실을 전하는 데는 조금씩 능숙해졌다.


그 경험 속에서 나는
‘말이 지닌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단지 언어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진실은 말의 문맥 바깥에서도 드러난다.


말투, 어조, 표정, 생각하는 시간.
그 모든 비언어적 요소 속에
진심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 진심이,
때론 마법처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게 바로 언령의 근원 아닐까.



혹시 이 글을 읽고
비슷한 힘을 갖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한 가지는 꼭 명심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모든 진실을 말하는 것은 다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침묵의 가치를 잘 알아야 한다.
사실을 모두 말하지 않아도
신뢰는 지킬 수 있다.


그것이
진실을 통해 말의 힘을 지니려는 사람의

첫 번째 덕목이다.

keyword
이전 11화진료실은 있었지만, 진료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