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학군, 내가 본 학군.

내가 괜찮았다고 모두 괜찮은 건 아니다

나와 동생은 아주 시골에서 태어나

소도시에서 학교를 다녔고,

결국 목동이라는 대표적인 학군지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군의 양극단을 모두 경험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학군의 장단점을

몸으로 잘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학군지는 교육적으로 유리하다.

주변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입시 정보도 넘친다.

‘경쟁’이라는 말은 일상이었고,

그 덕분에 성적도 오르고,

좋은 대학에 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학군’ 덕분이었을까?



공부는 결국 본인이 하는 것이다.

옆 친구가 열심히 한다고

나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건 아니다.

그 열기가 항상 좋은 자극이 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오히려 더 주눅 들고 지쳤다.

친구 따라 공부를 해보려 했지만

나와 맞지 않는 옷이었다.

결국 고생 끝에

내 리듬을 찾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입시 정보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학군지는 정보가 많은 대신,

그만큼 혼란도 컸다.

특히 힘들었던 건,

어머니가 어디서 뭔가를 듣고 오실 때였다.


그 정보들이 대부분은

나에게 맞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진심을 다해 말씀드렸다.

“다른 엄마들 만나지 마시고,

그냥 교회 가서 기도나 해주세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뒤로 어머니도, 나도,

성적도 편안해졌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입시라는 걸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를 학군지에 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여기셨을 것이다.


정보와 환경이 있었기에

우리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모든 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결국 내가 얻은 성취는

학군이 준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스스로 부딪치고

찾아낸 결과에 가까웠다.


그래서 학군의 효용에 대해

언제나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치맛바람’에 휩싸여 자라는 것이

과연 긍정적인 일인지 의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생각이 조금 바뀌는 계기가 찾아왔다.


당시 일하던 치과에서

초등학교 구강검진을 나갔던 날이었다.

여러 학교를 돌며 아이들을 진료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학교마다 아이들 입안 상태가 달랐다.


초등 저학년은

스스로 양치를 잘하기 어려운 나이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챙겨주는지가

입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 멀지 않은 학교들인데도

길 하나 건너 ‘학군지’ 학교 아이들의

구강 상태는 확연히 달랐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좋은 학교’에도

관리가 안 된 아이가 있었고,

그 반대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예외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괜찮을 거라 여긴 건,

어쩌면 오만이었을지도.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통계가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학군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환경은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하니까.


하지만,

그 효용에 대해서는

한 번쯤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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