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은 있었지만, 진료는 없었다.

혼자서는 진료가 굴러가지 않는다

공보의 시절, 내게는 진료실이 있었다.

문도 열려 있었고, 진료 의자도 반듯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환자는 없었다.

한 달에 한두 명 올까 말까.


보건소를 찾아오는 사람은 있었다.

그러나 모두 의사 선생님이나 한의사 선생님을 찾았다.

내 진료실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아가 아픈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진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치과 진료의 많은 부분은 비보험이다.

보철에 들어가는 재료값, 기공 비용,

시술 시간까지 고려하면

건강보험 급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제도적으로도 급여 대상에서 빠져 있다.


하지만 공중보건의가 이런 비보험 진료를 하려면,

일반 치과의원과는 다른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보의는 ‘공무원’이니까.

공무원이 진료를 하려면 관련 예산이

사전에 확보되어 있어야 하고,

재료비든 기공비든 모두 보고와 결재를 거쳐야 한다.


환자를 보기 전, 먼저 행정을 마주해야 하는 구조.

그렇게 진료를 한다고 해도, 보상은 없다.

준비는 부족하고, 일은 번거롭고, 보상은 없다.

누가 자발적으로 진료하고 싶어 할까.


그래서 일부는 ‘편한 길’을 택한다.

절차를 생략하고, 환자에게 직접 비용을 받아 진료한다.

겉보기에 모두가 이득이다.

마을 주민들은 싸게 진료를 받을 수 있고,

공보의는 수입이 생기고, 행정은 조용하다.


하지만 법과 절차는 불편하라고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불편함은, 누군가가 다치지 않도록 만든

최소한의 울타리다.



내가 부임했을 때, 전임 공보의가 남긴 흔적은

환자들의 입 안에 있었다.

몇몇 어르신들이 열 개가 넘는 치아를

한 번에 연결한 보철물을 하고서는

보철물이 빠졌다고 찾아왔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하얗게 덧씌운 보철물에 처음엔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보철물은 오래가지 못한다.

1~2년이 지나면 버티지 못한 보철물이 떨어지고

보철물 아래 치아들은 처참한 몰골이 된다.


하지만 전임 공보의는 복무를 마치고 떠났다.

남겨진 진료 기록 하나 없고,

기공소와의 연계도, 치료계획도, 결제 내역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진공 상태.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분들을 도와줄 자원도,

그 보철물에 손을 댈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대학병원을 추천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무지했는지, 악의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 흔적을 정리하는 일은

내 손 바깥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비난만 하며 손 놓고 있는 것은

‘올곧은 의사’ 코스프레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보험진료 안에서라도, 뭔가 해보고자 했다.


마을엔 노인이 많았다.

오랫동안 치과에 가지 못한 분들이었다.

스케일링이나 치주치료만으로도

공중보건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진료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건소 안팎에서 진료를 하려면,

도움을 줄 직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이 많은 직원들은 이미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과로하는 사람에게 일을 하나 더 얹는 것은

미안함 이전에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한가한 사람에게 부탁해도 문제였다.

그분들은 이미 실무에서 손을 뗀 지 오래였다.

대화를 시도하면, “좋아요, 해볼게요”라고는 하시지만

그다음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실력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점점 깨달았다.

나 혼자만의 열정으로는 진료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결국, 분란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있는 편이

모두에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그렇게,

조용히 열리지 않는 문을 보며 3년을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내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다.

진료는 치과의사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치과위생사가 ‘기꺼이 진료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지금 내가 개원한 치과에서 가장 먼저 챙기는 것.

그건 환자도, 장비도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위생사가 환자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이 가볍다면,

그날 진료는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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