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나눠도 마음은 나눠지지 않았다.
2022년 1월 7일,
딸이 태어났다.
아빠가 될 준비로 여러 계획을 세웠다.
그중 첫 번째는 ‘반반육아’였다.
동생을 비롯한 육아 선배들에게
아이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귀가 닳도록 들어온 터였다.
물론 시기마다 힘든 포인트는 다르겠지만,
신생아 시기의 핵심은 수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갓 태어난 아기는
잠을 오래 잘 체력조차 없다.
두세 시간마다 깨서 먹고, 트림하고, 다시 잔다.
직접 해본 사람은 안다.
‘두세 시간’이라는 말에는 숨겨진 함정을.
먹이고, 트림시키고, 겨우 재운 뒤
허리를 펴려 하면.. 다시 깬다.
잠이 없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와 부모 모두가 통잠을 자는 날을
‘백일의 기적’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난관을 정면으로 돌파해 보기로 했다.
부부가 둘인 이유는,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작은 생명체를
혼자서 돌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둘이라면 가능하다고 믿었다.
우리는 하루를 네 조각으로 나눴다.
1시부터 7시, 7시부터 1시.
6시간씩 교대근무제 육아가 시작됐다.
이 계획을 세울 때만큼은
평소 나를 괴롭히던 불면증이
정말 든든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청해서 새벽 근무를 맡았다.
밤새는 일엔 익숙했으니까.
자연스럽게 하루의 흐름이 정해졌다.
새벽엔 아이를 돌보고,
아침을 먹은 뒤 소설을 썼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오후 육아를 맡고,
저녁 7시에 식사를 후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1시에 기상.
아내는 아침 7시에 교대해
오후 1시까지 아이를 돌봤다.
그 즈음 점심을 준비해 함께 식사했고,
이후엔 자유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7시에 다시 교대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육아가 아닌 시간’엔 완전히 분리하려 했다.
확실히 방에 들어가거나,
아예 집 밖으로 나갔다.
쉴 땐 제대로 쉬고,
육아할 땐 온전히 집중하자는 전략이었다.
놀랍게도,
우리의 계획은 정말 잘 들어맞았다.
아이는 순한 편이었고,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니
오히려 직장 다닐 때 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게 느껴졌다.
교대 후엔 영화를 보러 외출도 했다.
“이렇게 육아해도 되는 거야?”
서로를 바라보며 웃던 기억이 생생하다.
백일이 지나,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일정을 다시 조정했다.
아이의 수면 시간을 부부의 공동 수면 시간으로 삼고,
나머지 시간을 네 등분 하는 방식이었다.
가끔 분리수면 중인 아이가 새벽에 깨는 일도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자는 패턴이
몸에 꼭 맞는 옷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가 제안한 변경안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겹치는 시간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대화도 늘었다.
부부 사이도 더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보람차던 반반육아는
예고 없이 멈췄다.
직장 복귀도 한몫했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딸이,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생후 12개월 아기가
몸짓과 표정으로
한 가지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다.
“아빠 싫어.”
문자 그대로 청천벽력이었다.
솔직히, 배신감이 들었다.
1년의 절반을 온전히 책임졌던 사람에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2주 가까이 심란한 마음으로
딸을 지켜보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딸은 엄마를 주 양육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 엄마를 대신하여 등장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교대 육아라는 구조 속에서
아빠가 나타나는 순간,
엄마는 사라졌다.
딸에게 아빠는
엄마를 데려가는 사람,
엄마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로
우리는 방식을 바꿨다.
퇴근 후엔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았다.
같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
딸은 금세 마음을 풀었다.
아빠가 더 이상
엄마를 데려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자
딸은 다시 아빠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로봇청소기와 라이벌이긴 했지만,
싫어하지 않게 된 것만 해도
내겐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다.
처음부터
딸이 이 시기를 기억할 거라 기대하며
직장을 쉰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했던 아빠를 미워하는 딸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꽤 아팠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그 1년은 딸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조그마한 아이를 안고 재우던 감촉.
오직 하나의 생명체에게만
모든 감각을 집중했던 나날들.
매일매일 달라지는 아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사실.
그건 앞으로 어떤 시간이 오더라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단 한 번뿐인 시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