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준비했고 철학에 반응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햇살이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나는 ‘디지털 치과’라는 소재를 가지고

누가 가장 만족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환자입장에서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건

‘시간’ 일 것이다.

예전에는 보철 하나 붙이려면

일주일씩 기다려야 했지만

지금은 디지털 장비 덕분에

20분 만에 끝나기도 한다.


물론 퀄리티도 조금 더 좋아지긴 한다.

하지만 그 차이는 몇 년은 지나야 느껴지는,

미세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당장 큰 차이를 체감할 사람은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

즉 바쁜 직장인일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오피스 상권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디지털이라고 해서 모든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사실 짧아질 수 있는 건 보철 과정뿐이다.


임플란트가 자리 잡는 데 필요한 시간이나,

근관치료에서 소독약이 작용하는 시간은

디지털치과에도 똑같이 필요하다.


그래서 치과를 보철 중심으로 구성했다.

치아와 신경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은

원래 내 진료 성향과도 잘 맞았다.


뿌리를 잡으니 줄기는 자연스럽게 뻗어 나갔다.

가령 어떤 진료시간이 직장인에게 유리할까 고민해 보니


“점심시간에 잠깐 치료받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퇴근길에 들렀다가 집에 갈 수 있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차례차례 이어졌다.


그래서 그에 맞춰서 진료시간을 설계했다.

오전 11시 시작, 저녁 8시 30분까지 야간 진료.

우리 점심시간은 조금 늦은 오후 2시부터.

직장인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구상은 톱니바퀴처럼 맞아 들어갔다.

진료 퀄리티는 빠르게 안정되었고

치료받은 환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아, 진짜 바뀌고 있구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세상은 느리게 변했다.

몇 달쯤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원데이 진료’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일주일 걸리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하루 만에 끝나는 진료를

애초에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모르면 찾아올 수도 없다.


설령 알고 있어도 문제는 남는다.

모든 진료가 원데이로 끝나는 건 아니니까.

환자가 자기 진단명을 정확히 알기 어렵기에

“오늘 끝내주세요.”를 기대하기 힘들다.


게다가 ‘원데이 진료’를 표방하는 치과들도

기준이 제각각이다.

어디는 진짜고, 어디는 말뿐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알고 찾아오는 건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개조차 어렵다는 사실은,

예상하지 못했다.

추천하려 해도, 확신이 없으면

사람은 쉽게 추천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런데도 환자는 늘었다.

예상보다는 조금 느리게,

하지만 꾸준히 치과를 찾는 환자가 많아졌다.


그 이유는 특별한 시스템이나 고가의 장비보단

오히려 평범한 진료,

그리고 ‘우리의 약점’이라 여겼던 성향 때문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치과의 세계관을 고민했던 이유는

우리 남매의 성격에 있었다.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성향.

사소한 실수에도 잠 못 이루던 햇병아리의 모습은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의 성향’이라는 건

완전히 바뀌는 법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안전하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이런 성향은 페이닥터 시절

자주 단점으로 지적받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적으로 매출이 적었기 때문이다.


매출을 지표로 시정을 요구받을 때면

나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바꿀 수 있었다면 진작 바꿨을 것이다.

눈치가 보여도, 결국 나는 나였다.


개원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편하게, 더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그렇게 진료하다 보니,

어느새 하나의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과잉진료 없는 치과’



나는 과잉진료를 피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과소진료를 걱정하는 쪽이다.


진단이라는 건 언제나

어느 정도의 ‘여지’가 존재한다.

조금 더 하면 과잉, 조금 덜 하면 과소.


내가 덜 하는 쪽에 가까운 이유는,

그저 성향 때문이다.

조금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더 신중한 판단을 하게 될 뿐.


오해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진료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지만

그게 ‘특별한 무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요즘 웬만한 치과는 다 그렇게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긴 돈을 벌기 위해 진료하는 느낌이 아니에요.”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당연히 생계를 위해 진료한다.


다만,

나답게 벌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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