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주세요
우리는 모두 작가다.
연재를 하지 않아도, 출판을 하지 않아도
글이든 말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풀어낸 적이 있다면
이미 우리는 각자의 장르를 써 내려간 작가다.
그래서 나는,
‘자기소개서’라는 이름의 작품들을
한 명의 ‘독자’로서 읽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들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읽다 보니 ‘다름’이 느껴졌다.
가령 여러 자기소개서에서
“나는 성실한 것이 장점입니다.”라는
문장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사한 문장이라도
품은 의도는 제각각이었고
비추는 모습 또한 전혀 달랐다.
불성실한 동료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
과거의 학습 부진을
만회하고 싶은 사람,
성실하지 못했던 시간을 딛고
변화했음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
비슷해 보였던 이력서들이
천차만별로 달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문장은 거울이었다.
거울의 모양이 비슷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비친 ‘작가’의 모습이었다.
그 사람다움의 ‘표정’ 말이다.
이력서를 통해 최대한 사전 정보를 모았으니
다음은 면접 차례다.
모든 것이 처음인 만큼,
스스로의 판단을 온전히 믿기도 어려웠다.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
그리고 판단 자체의 신뢰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과 면접을 잡았다.
면접에 앞서 질문도 몇 가지 준비했다.
지원자가 쓴 문장을 읽으며 파악한 인상은 있지만,
내 질문에 대한 반응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치과 소개 역시 따로 준비했다.
면접은 일방적인 파악이 아니라
상호 간의 파악이 이뤄지는 자리다.
앞으로 주인공이 되실 분들에게
우리 치과의 철학이자 방향성인
‘세계관’을 어필해 둘 필요가 있었다.
시간은 한 사람당 한 시간 정도로 넉넉하게 잡았다.
지나고 보니, 시간을 덜 잡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면접관’이라는 입장은 처음이라 어색했다.
“오늘, 하루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치과.”
라는 슬로건의 유래로
치과 소개를 시작할 때마다
익숙지 않은 낯간지러움이 있었다.
하지만 면접은 순조로웠다.
지원자들과 40분씩은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은 한 시간으로도 모자랐다.
아직 인테리어 공사 중이기에
면접은 치과 근처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끼니 역시 카페에서 모두 해결했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이어진 면접일정은
고되었지만, 즐거웠다.
돌이켜보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사전에 파악했던 ‘작가’의 모습을
면접 자리에서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것.
내가 맞아도, 틀려도 좋았다.
이를 통해 지적인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준비한 ‘세계관’을 어필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보는 것이었다.
“이런 치과가 있다면 꼭 한 번 일해보고 싶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했던 수많은 고민이
헛된 것이 아니란 사실에
감성적인 충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즐거움과 별개로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갈 수는 없었다.
결국,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나는 우리 세계관의 주인공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좋은 팀플레이어일 것.
내가 생각하는 치과 진료는
치과에 발을 디딘 모든 사람이
협력해서 이루는 것이었다.
그래서 ‘팀워크’가 개인의 역량보다 우선이었다.
둘째는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일 것.
우리 치과의 세계관의 핵심인 ‘플러스섬’은
주인공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애초에 성립부터 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필수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더해지는 것이 ‘역할’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럿일지라도
주인공들은 각자 맡은 바가 다르기 마련이다.
단순히 직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 따라가는 사람처럼
캐릭터에서도 다양한 조합이 필요했다.
여러 방면에서 입체적인 ‘주인공’들이
서로 다른 방면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연차, 나이, 직무, 업무 중 성향, 업무 외 성격 등등
최대한 많은 변수를 고려하여 ‘팀’을 꾸렸다.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주인공들이 어느 순간, 작가의 손을 벗어나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는 표현을 자주 한다.
실제로 살아있는 우리 세계관의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내 손을 벗어나 있던 만큼
빠르게 내 생각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나는 개원 직후 밀려드는 업무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주인공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그들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고칠 부분이 있나요?”
나는 소리 없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건, 내가 쓴 어떤 이야기보다도 잘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