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치위생사여야만 했다.
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잘 다니던 치과에서 잘렸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잘린 것’은 아니다.
경영상의 이유로 페이닥터 자리를
한 자리 줄인다는 통보였다.
나보다 먼저 있던 원장님을 밀어내고
‘굴러온 돌’이 된다는 선택지는
나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나왔다.
급작스러운 실직에 페이닥터의
파리목숨을 한탄하고 있을 때
마침 가까이 이사 온 친동생이
개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보고 있자니 답답했다
“콘셉트 그렇게 잡는 거 아닌데.”
내가 방향을 잡을 테니 같이 개원하자고 했다.
6년 전, 벽을 느끼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그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해볼 만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동생과 나는 같은 가정교육을 받았고,
성격이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남에게 손해를 주느니,
차라리 내가 손해를 감수하는 쪽이다.
그런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세계관’이 필요했다.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적어도 ‘치과의사가 최고 존엄인 세상’보다는
현실적이었다.
상대에게 평균보다 더 많이 준다면
본인은 내준 만큼 적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상식적이다.
평범한 세계에서 우린 ‘호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설계해야 할 세계는,
‘플러스섬’이어야 했다.
더 주고 덜 받아 합이 0인 제로섬이 아니라
더 주고 더 받는 과정 속에 상승이 일어나는 구조.
돈과 같이 물질적인 가치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만족감’ 같은 정신적인 가치를 포함해야 한다.
월급이 평균 정도라 해도 직장생활이 만족스러울 수 있다.
치료비용이 평균 정도라 해도 병원이 만족스러울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돈은 두 번 째다.
중요하지만, 항상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떤 세계관이 사람들을 더 만족하게 만들까.
나에게는 즐거운 고민이었다.
생각을 거듭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은
이 세계관의 주인공은 결국
직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상승의 시작과 끝에 이들이 있었다.
치위생사.
명칭도 익숙지 않은 분이 많아
흔히 간호사라 잘못 불리는 사람들.
이 사람들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했다.
나는 치과의사이기에
이들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인만큼
사실에 근접한 추측을 할 순 있을 것 같다.
내가 위생사라면 무슨 생각을 할지
내면에 작은 위생사를 만들어 대화를 나눠보았다.
안타깝게도 이 작은 친구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속삭였다.
부조리해. 태생적으로 부조리해.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고시보고 면허 땄잖아.
근데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간호사는 주사도 놓고 의사와는 다른 일도 하잖아.
나는 뭐냐고. 그냥 치과의사 보조일이 다야.
치위생사는 영어로 dental hygienist야.
대학에서 ‘환자의 구강 위생을 책임지는 전문가’라 배웠고
교수님도 자부심을 가지라고 그랬어.
그런데 졸업하고 나서 하는 일은… dental assist.
이거 외국에선 다른 직업이야.
월급도 다르고, 역할도 달라.
내가 이러려고 치위생사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니깐.
그녀는 치위생사는 그래도 근무조건이나
수입이 괜찮은 편 아닌가 하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돈? 중요하지. 비슷한 조건의 친구보다
조금 더 버는 게 맞아.
하지만 몸 갈아 넣고, 마음 덜어 내며 일해서
돈 조금 더 벌면 뭐 해.
매일 조금씩 더 나아지는 내일이 없는걸.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 결국 쉬어야 해.
누군 정착 안 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그리고 치위생사 대부분 여성인데
임신하고 출산하면 경력단절 어쩔 거야.
대기업이나 공무원은 그래도 육아지원이 있지.
치과는 대부분 그런 복지도 없다고.
작은 치위생사는 좀처럼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다 받아 적자면, 이 글은 한풀이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서 멈춘다.
이 이야기를 현실의 치위생사에게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다.
하지만 가상의 작은 친구가 쏟아낸 말들이,
이상하리만치 현실적이었다.
우리 친구가 마주한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태반이라
일개 치과의사인 내가 온전히 해결해 주긴 어렵다.
하지만 내 세계관이 이런 문제를 커버하는 만큼
‘만족도’는 올라갈 것이었다.
치위생사들이 만족은 환자의 만족으로 이어진다.
특히나 직업적 자부심에 관한 부분이 중요하다.
치위생사들이 직업적 자부심을 내비칠 수 있을 때
환자는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업무 하중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사람은 피곤하고 지치면 자부심 따위의 사치는
먼저 내려놓는 법이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런 발상으로 시작하여 한 조각 한 조각 세계관을,
우리 치과의 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정립했다.
확신은 없었다.
내가 만든 세계관이 얼마나 치위생사들에게 매력적 일지.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정말 주인공처럼 행동할지.
결과가 나와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맞다고 하는 생각들이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틀렸을 때를 대비하여
플랜 B, C를 준비해 놨다.
하지만 그 플랜들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나의 첫 작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글이 아니라, 현실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놀라운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