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아. S시에 언제 올거니?
화요일쯤 가려는데 기차표는 아직 못 구했어.
알겠어~
그리고 며칠 뒤, 온 카톡.
승차권이 도착했습니다!
2025년 01월 28일 (화), KTX 211
서울 12:48 > S시 13:34
<전달받은 승차권 보기>
-코레일톡
엄마다. 명절에 엄마집에 가기 위한 기차표를 못 구한 딸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취소표를 구해 카톡으로 보내준.
그리고 화요일 아침, 전날에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던 중 드르륵드르륵 휴대폰 진동 소리에 깼는데, 화면을 보니 아빠다.
아빠 왜?
아니 여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기차역 데리러 못갈거 같아. 혼자 BRT타고 올 수 있겠어?
당연히 갈 수 있지. 걱정 마.
그래, 엄마가 옷 가지고 오지 말래~ 엄마 옷 입으라고. 그냥 와~
응~ 이따봐.
나이를 훌쩍 먹은 딸이 올때면 항상 기차역으로 데리러 오다가 이번엔 폭설로 차를 몰기 어려우니 혼자 올 수 있겠냐는 전화. 그리고 카톡을 확인하니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엄마아빠집 밖 풍경 사진. 정원에 눈이 한가득이구나.
잠에서 깬 김에 씻고, 괜히 딸이 못지낸다 생각하지 않게 에어랩으로 머리도 매만지고 서울역으로 출발.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또 아빠의 전화.
BRT타면 어디서 내리지? 그 정거장으로라도 데리러 가려고.
아니야, 뭘 데리러 와. 알아서 갈게.
BRT에서 내려 네이버 지도를 보며 아직도 길을 못 외운 엄마아빠집을 찾아가 아파트 현관 초인종을 누르고, 집을 찾아가는데 현관문이 열린다.
R, 왔어?
응 엄마~~~
R아, 배 먹을래?
뭘 애한테 지금 배를 줘. 이따 저녁먹어야 하는데. R아, 근데 이따 저녁으로 뭐 먹고싶어?
응, 나 그냥 집밥 좋아. 집에 먹을거 좀 있지?
엄마가 갈비찜은 해놨는데, 딴거 또 먹고싶은거 있어? 잡채해줄까?
여보, 우리 참치회 사다 먹을까? R도 갈비찜만 있음 심심할텐데.
아니, 나 그냥 갈비찜에 반찬 먹을래~
온김에 먹고싶은거 다 먹고 가. 코스트코 가서 쇼핑 해올게.
엄마, 아빠. 막내딸 평소에 너무 잘 먹어서 문제에요. 그냥 집에 있는거 먹을래.
소파에서 뒹굴거리는데 또 엄마의 말.
아니, 근데 얘 왜 이렇게 이쁘지. 얼굴도 함초롬하니.
엄마 닮아서 그렇지 뭐.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이번에 운전면허를 땄으니 차를 사달라 조르는 말에 아빠 왈.
R아, 아빠는 너가 운전을 안했으면 좋겠다. 위험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운전하면 차도 많고 주차도 어렵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운전을 안하면 스트레스 받는 일이 훨씬 줄어들어. 운전하는 대신 대중교통 타고 택시도 타고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럼 R한테 택시비라도 주던가.
맞아, 아빠, 나 지금 택시비만 한달에 백만원이 들어. 월급으로는 지금 택시비 겨우겨우 감당하는 중이라고.
앓는 소리를 하니 아빠가 저기 어디서 현금을 찾아다 준다.
됐지? 이게 집에 있는 현금 전부야.
와, 감사합니다!
의도했던 자동차 대신 택시비를 얻었다.
이렇게 S시 엄마아빠집에서의 명절 첫날밤이 지난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있으니 마음이 풍요롭다. 아무 조건없이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되나. 올해는 엄마아빠집 좀 자주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