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3-(1)
1. 상처는 타인이 주지만 흉터는 본인이 남긴다.
2. 상처는 자해를 제외하면 외부의 환경 혹은 타인에 의해서 발생한다. 살아감에 있어서 불가피한 요소이다. 걷다 보면 돌부리에 한 번은 걸리듯, 살다보면 상처는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혹은 정신적인 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 때문에 병원을 찾을 일이 생길수도 있겠지만, 일상 속에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생채기는 다행히도 우리 인간이 감내할만한 수준이다. 문제는 그 상처가 아물고 사라지느냐, 혹은 흉터로 남느냐는 우리의 대처에 달려있다. 흉터는 어떻게 내 몸에 새겨지는 것일까? 애꿎은 상처를 긁고, 간질이고, 딱지가 앉으면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딱지 뜯어내다보면, 패였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못하고 흉으로 남아버린다. 상처는 돌부리가 냈지만, 흉터는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참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약을 발라주고, 가려우면 긁는 대신 반창고로 덮어주고, 때로는 공기가 통할 수 있게 열어두기도 해야 한다. 보살핌이 필요하다.
3. 마음이라고 다르겠나 싶다. 마음의 상처도 보살핌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마음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피가 나지도 않고, 멍이 들지도 않는다. 가렵지도 않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는 마구 긁어버린다. 계속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후회한다. 상처가 아물 틈이 없다. 기억 혹은 경험에 메여버린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웠고, 나 자신을 자책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계속 나 스스로 상처를 누르고, 긁고, 딱지를 떼었다 붙였다 한 것이다. 결국 흉터로 남게 되는 것이다.
4. 바라보고 인정하자. 과거 그런 선택을 했던 나 자신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 받은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자.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듯 말이다. 그러고 반창고로 덮어놓듯, 그 상처를 들쑤시지 말자. 아물기를 기다렸다가, 가끔 열어보고 다시 들여다보는 걸 반복하자. 공기를 쐬어주듯 말이다. 상처의 크기에 따라 몇 주가, 혹은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묵묵히 견뎌주자. 우리의 마음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위해 평생을 곁에 있어준다. 우리도 응당 그에 대한 보답을 해줘야한다. 마음에 흉터를 내지 말자. 흉터를 남기고 아니고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5. 상처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상처 없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성숙해질 기회를 박탈당한 삶이다. 반성할 수도, 자기를 돌볼 기회도 없다는 말이다. 상처를 쫓아다닐 필요야 없지만, 상처를 받는다고 해서 괴로워하지 말자. 잠깐 통증을 겪을 뿐이다. 문제는 그 상처를 성숙의 발판으로 삼을지, 미숙한 대처로 흉터를 남기어 평생 그 기억 속에 괴로워하거나, 어긋난 욕망을 가지게 될 지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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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3-(2)
1. 알파치노 주연 ‘여인의 향기’는 두 가지를 내게 던져주었다.
2. “실수를 하는 순간 스텝이 엉키고 바로 그 순간 멋진 탱고가 탄생하는 거죠!”
인생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상황에서 짜여진 듯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실수들과 우연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내 삶이 살짝 엇박을 탈 때, 실소를 터뜨리고 미소 짓게 된다. 행복을 계획하는 사람은 잘 없다. 친구와의 약속 중에, 여행 중에, 혹은 업무 중에, 우연찮게 웃게 된다. 오늘 어떤 대화를 할지 대사를 하나하나 짜서 사는 사람은 없다. 삶의 리듬과 박자에 맞춰 춤을 추다 보면 합이 맞는 순간이 온다.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해진 클라이막스를 달려가는 것보다, 언제 올지 모를 클라이막스를 위해 내 몸을 맡기는 것이 좋다. 그 불안정감이 좋다. 그 불확정성이 좋다. 그 불안정감과 불확정성 속에도 일말의 안정감과 찰나의 확정성이 온다는 믿음이 있기에, 눈을 감고 엉켜진 스텝 속에 나를 맡기는 것이 아니겠나. 영원한 실수란 없다.
3. “난 여기 왔을 때 지도자의 요람이라는 말을 들었소. 그러나 그 줄이 끊어지면 요람은 추락해요. 그 줄은 여기서 끊어졌소. 난 잘 모르겠소. 찰리의 침묵이 좋은지 그른지. 그러나 그는 장래를 위해서 누구도 팔지를 않았소. 그건 순결함과 용기죠. 그게 지도자들이 갖추어야할 덕목이오... 여기 있는 찰리도 지금 갈림길에 있어요. 그가 선택한 길은 바른 길입니다. 신념으로 만들어진 길, 바른 인격으로 이끄는 길이죠. 그가 계속 걸어가게 하세요. 파괴하지 마세요. 보호하고 포용하세요.”
4. 나는 영어 단어 중 'integrity'라는 단어를 아낀다. 사전적 정의로는 ‘진실성,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고 되어 있다. 내가 느끼는 integrity는 약간 이 사전 속에 적힌 의미보다는 조금 더 깊은 의미이다. 바로 저 대사가 integrity를 표현해주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옳은 신념을 지키는 태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무엇에 팔리지 않고,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군인정신이 될 수도 있고, 기업가 정신이 될 수도 있다. 종종 진정한 어른이란 어떤 어른일까를 고민해볼 때가 있다. 내 기준에서는 integrity를 갖추어야한다. 한 조직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 아니면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혹은 그리 거창하지 않게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한 명의 선장으로서 integrity를 잃어서는 안된다. 영화 말미의 저 연설은 내게 integrity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워주었다. 올바른 신념과, 올바른 인격, 순결함, 그리고 용기. 눈을 감지 않는 것이다. 갓길로 새지 않는 것이다. 작은 것을 좇지 않는 것이다.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것이다. 안아주는 것이다.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어른이고, 리더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삶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