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그 이름에 '~하다'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절기는 청명밖에 없습니다. 입춘하다, 곡우하다, 동지하다, 이런 말은 없어도 '청명하다'라는 형용사는 자주, 즐겨 쓰는 말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청명 절기는 반드시 청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요. 봄바람이 불어오면 어느새 높아지는 미세먼지와 황사로 탁한 공기를 마시고 있습니다.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중국 탓'이라고 되는 양, 공기질이 나빠지면 중국부터 미워하게 됩니다만, 중국이라고 예전부터 그랬을까요. 공기가 나빠진 죄를 묻자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아무도 없지요.
저는 청명을 한자로 '청명(靑明)'이라고 쓰는 줄 알았어요. 이 절기가 되면 세상이 온통 푸르러지니까요. 아하! 땅을 내려다봐도 초록, 허리를 펴고 먼 산을 봐도 초록. 세상이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어 가는구나, '푸른빛으로밝은 절기' 청명은 푸를 청, 밝을 명 이름이랑 꼭 들어맞는구나, 하고요.
"청명에는 부지깽이만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이 있어요. 무엇을 심어도 싹이 날 만큼 온 천지에 생명력이 가득하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니 밭 갈랴, 씨앗 심으랴 바쁜 노동에 하루 해가 짧아도 마음은 희망으로 약동하는 절기가 아닌가 합니다. 땅을 보며 열심히 일을 시작한 이 시기에는 시선 닿는 곳마다 초록초록한 세상이겠죠.
[절기서당](김동철, 송혜경/ 북드라망)]에 따르면, 24절기가 체계적으로 완성되기 전에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어떤 장면들을 묘사해 놓는 것으로 달력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살아 있는 달력 그림"인 거지요. 제가 우리 아이들과 만들고 있는 절기살이 그림책도 그와 비슷한 게 아닌가 합니다.
예전 달력에는 춘분이 속한 '계춘'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는군요.
계춘의 달에는 오동나무가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되며, 쥐가 변화하여 메추라기가 되고, 무지개가 비로소 나타나게 되며, 수중식물인 개구리밥이 비로소 생겨나게 된다.([역주 예기집설대전 월령], 정병섭 옮김, 216쪽)
[절기서당]은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오동나무의 꽃망울이 비로소 터지는 것도, 어두운 밤을 틈타 숨어 다니던 쥐가 백주대낮에 하늘을 나는 메추라기가 되고, 햇살이 대기 중의 물방울을 통과하며 일곱 가지 색을 드러내고, 물 밑에 있던 개구리밥이 물 위로 올라오는 것 모두 "음에서 양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장면들이라고요.
절기가 거듭되어도, 책을 반복해 읽어도 음양오행에 대해서는 감이 잘 안 잡히는 저는 이를 완전한 변화와 탈바꿈이라고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움츠렸던 것이 활짝 펴지고, 숨어 있던 것이 드러나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이는 때라고요.
내일 찍으면 또 얼마나 쑥 자라 있을까요? 밭에 심긴 감자조차도 재를 묻힌 몸을 새로운 생명으로 탈바꿈하는 중입니다.
초록빛의 먼 산을 자주 보면 침침했던 시력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지금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찾는 계절도 아니고,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을 보는 절기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나는 작물의 초록 잎들, 먼 산을 덮어가는 나무들의 초록빛을 원 없이 추앙하는 때 같습니다. 눈이 맑아지면 마음도 맑아질 테고요.
그러니!
청명에는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청명하기를,만나는 모든 존재에게 축원하고 싶어집니다.
[또 다른 달력 / 전례력]
'청명이나 한식이나'라는 말이 있다. 기껏해야 하루 차이라 생긴 말이다. 한식(寒食)이라는 말은 불을 쓰지 않고 찬밥을 먹었던 데서 유래한단다. 건조한 날씨에 불이 나기 쉬워 그렇다는 말도 있지만, 그때 즈음 나무를 비벼 만든 새 불을 얻는 때여서 그렇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부활 성야에 축성하는 새 불을 생각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묵은 것을 온전히 벗어버리는 영적 탈바꿈이 필요하다. 물도, 불도, 사람도 모두 새롭게 되기 위해서다. 완전한 변화와 탈바꿈, 전례력이라고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