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청할 때도 거절을 잘 못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잘하세요?"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하면 굳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밤을 새워 하곤 했다. 일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주는 것도 마다하지 못했다.
홈쇼핑을 곧잘 하는 언니는 가끔 박스에 옷을 넣어 보내온다. 홈쇼핑은 대량으로 묶어 판매하는 경우가 많으니, 언니는 나와 나눌 것을 염두에 두고 주문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언니가 그렇게 보내는 옷들이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영 내 취향이 아닐 때도 있다는 거다. 그래도 보내는 건 다 고맙게 받는다. 그런 것들은 언니와 만날 때 한 번쯤 입어 보여주기도 하지만, 태그를 떼지 않고 있다가 기증을 하기도 한다. 언니는 나누는 기쁨을 느꼈을 테니 그걸로 됐다.
예전에 친정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내가 갈 때마다 냉동실에 들어 있던 것들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언제 넣었는지도 모르는 식재료들이 검정 비닐봉지 안에서 꽁꽁 얼려 있었다. 엄마는 일일이 '귀한 것'이라고 하면서 조리법을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워낙 요리에 젬병인데다 직장에 다니면서 바쁘게 끼니를 챙겨 먹는 내 입장에서는 손질을 해야 하는 그 식재료들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그래도 싸주는 건 마다하지 않고 챙겨 왔다. 대부분 그 다음날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것을 모르는 엄마는 귀한 것들을 막내딸에게 주었다고 내심 좋아했을 거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봉사 점수를 굉장히 까다롭게 따졌다. 아이는 우체국 일을 돕기도 하고 천변에 쓰레기를 줍기도 했지만 그래도 봉사 점수는 부족했다. 마침 주민센터에서 독거노인과 결연하는 자원봉사 가정을 모집했다. 아이 혼자 할 수는 없고 부모가 함께 한 달에 한 번, 독거노인을 방문해서 말벗이 되어 드리는 게 주요 봉사 내용이었다. 신청자가 굉장히 많았고, 로또 뽑는 주사위로 추첨을 했다. 우리는 운이 좋아 한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영세민 아파트에서 살고 계셨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심하게 흔들렸고, 복도에는 고물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일자형으로 이루어진 할머니의 집은 단칸방이고, 좁았고, 더러웠다. 그리고 역시나 짐이 많았다.
할머니는 처음에우리 방문을 매우 어색해하셨지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며 우리를 반가워했다. 우리는 그 집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할머니 집에서는 대략 두 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그 시간 동안 거의 할머니 혼자 이야기를 했다. 아까 했던 이야기를 조금 후에 반복하기도 하고, 지난달에 했던 이야기를 이번 달에 또 하기도 했다. 아들아이는 텔레비전만 보았다.
가끔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아이도 데리고 갔다. 딸아이는 무뚝뚝한 오빠처럼 텔레비전만 보지 말고 살갑게 대해 주길 바라서였다. 어린아이가 합세하니 분위기는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다. 넷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좁은 방에서 할머니는 두 아이를 손주처럼사랑스럽게 바라보시곤 했는데, 그 사랑은 눈빛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급기야 냉장고 안에 쌓여 있던 먹을거리를 주려 하셨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어하셨기 때문에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꺼냈다. 딱딱하게 굳은 떡, 포장지 안에서 시들어 물러버린 포도와 쭈글쭈글해진 사과, 그리고 비닐봉지에 든 수십 개의 요구르트. 복지관 봉사자들이 하루에 한 개씩 가져다준 것을 계속 모아둔 것이다. 할머니는 요구르트 봉지를 열어 우리 앞에 꺼내주며 먹으라고 권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것들이었다.
마음속에서 갈등이 요동쳤다. 우리를 주겠다고 아껴 놓았다가 내놓은 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고, 상했을지도 모를 요구르트를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 앞으로 과일 그릇을 밀어주었다. 상하고 무른 것을 떼어내니 포도송이는 몇 알갱이 남지 않았고, 사과는 푸석거렸지만 그래도 그게 더 나았다.
나는 아이들 앞에 놓인 요구르트를 뜯어단숨에 마셨다. 날짜는 많이 지났지만 다행히 상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기들 것을 빼앗아 먹는다고 생각했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아이들이 과일 좋아해서요. 아이들은 이것만 먹어도 배 불러요."
할머니가 더는 강권하지 않았고, 요구르트는 우리가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올 때 아이들 손에 봉지째 쥐어 주셨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요구르트를 마신 첫 번째 이유는 내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였다. 두 번째는 주는 사람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였다.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거절하지 못해 한 일이니 좋은 일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만약에 그날 할머니가 준 요구르트가 상해서 내가 배탈이 났다고 해도, 나는 내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귀한 것을 주었다고 행복해하셨을 테니.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할머니는 아직 살아 계실까? 지금도 누군가를 위해 요구르트를 모으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