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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Jul 23. 2024

상복(賞福) 있을 여자

feat. 오렌문학상

나는 상복(賞福)이 없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상복이 없는 게 아니라 상 받기에는 내 재주가 모자라다. 자고로 상이라는 것은 그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여야 받을 수 있다. 주최 측이 세운 기준에 의한 상대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해야 한다. 상 받을 사람을 미리 정해 놓는 농간을 부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성적이 일정 기준 도달하면 무조건 주는 학업우수상이나 하루도 결석하지 않으면 주는 개근상도 나는 몇 번 받아 보지 못했다. 평균 1점이 모자라거나, 하루 또는 이삼일 결석해서 그렇다. 아슬아슬하게 탈락되었을 때 나는 내가 상복이 없어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점수가 부족했고, 내가 학교에 가지 않아 그랬던 거지 결코 복이 없어 못 받은 것은 아니다.


나는 상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눈에 띄게 우수한 재능을 천부적으로 타고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상을 받고 싶으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을 텐데, 상을 받고 싶은 마음만 컸지 재능을 향상하려는 지구력은 없었다.

 

여고시절, 친구들이 상을 받으면 내심 부러웠다. 친구들이 받은 상은 학업우수상이나 개근상처럼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면 주던 그런 상이 아니었다. 자기 실력을 겨뤄 쟁취하는 거였다. 상을 주는 대회에 아무나 참여하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예선처럼 치르고 거기에서 잘된 작품들을 내보내기도 했고, 어떻게 알았는지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서 상을 받아온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들이 글쓰기 대회(당시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탄 작품은 교내 신문에 실렸다. 나는 몇 명 안 되는 교내 신문 기자 중 하나였는데, 친구들이 상 받은 작품을 신문에서 읽으며 친구들의 글솜씨를 부러워했다. 친구들의 글은 장원답게, 차상이나 차하답게 정말 훌륭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글은 쓰지 못할 것 같았다. 나처럼 애매하지 않고 독보적인 재능을 지닌 친구들이 부러웠다. 부러움은 종종 질투로 바뀌었다. 또 가끔은 '내 글은 글도 아니야!'라는 자기 비하의 가면을 썼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다른 작가들이 쓴 글을 읽으며 '와! 진짜 글 잘 쓴다!' 하고 감탄한다. 프로필을 외울 정도로 자주 메인에 올라오는 작가들, 수천 명의 구독자를 가진 작가들, 브런치를 통해 상을 받고 출간한 작가들, 거액의 응원을 받는 작가들을 보며 질투했다. 그리고 종종 '내 글은 글도 아니네. 일기장 수준이야.' 하고 자기 비하도 한다. 사십 년 전의 유치한 감정은 이렇게 내 내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던 중, 내가 구독하던 어느 작가의 브런치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글을 읽게 된다.

'작가님 글도 좋아요'라는 이 브런치북에서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문학상을 만들었단다. 유쾌하게 적어 내려간 시상의 조건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쥔장 마음대로' 준다는 말이다.(오렌문학상의 자세한 취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하시라. 04화 제1회 오렌문학상 수상작 발표 (brunch.co.kr) )


나는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럴 수도 있구나. 부러움과 질투와 자기 비하가 아니라, 기분 좋은 응원과 유쾌한 칭찬을 할 수 있었던 거구나. 나처럼 상복 없는 사람들, 인정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의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거구나. 비록 브런치 공모전은 우리 재능을 못 알아봐 주었다고 해도, 브런치를 방문하는 수많은 독자들은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고 해도 글을 쓴다는 행위에 작가들이 서로 의미를 부여해 줄 수도 있었던 거구나. 종이책을 발간한 출간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었던 거구나, 그것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오렌문학상은 나의 이 <그 사람이 했던, 어떤 좋은 일>이라는 브런치북한 꼭지 들어갈 만한 사례였다. 처음에는 이 상이 생기고 나서 바로 이 문학상을 소재 삼아 글을 쓰려 했다. 하지만 '내가 상을 받고 싶어서 이런 글을 썼다고 오렌 작가님이 오해하면 어쩌지?' 하는 데 생각이 이르자, 글을 올리기가 꺼려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 '교황주일'에 썼던 내 글이 상을 받은 것이다! 09화 제 5 회 오렌문학상 수상작 발표 (brunch.co.kr)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친다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혹여 생각할 독자들이 있을까 우려되기도 하지만, 오렌 작가와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그러니 서로 별 이익이 없는 화투판을 짜고 칠 이유가 없다. 오렌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도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통장에 십원 한 장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바뀐 게 있기는 하다.

나는 상복이 있는 여자, 상복이 있을 여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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