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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Aug 17. 2024

아버지를 사랑하세요?

연중 제20주일 / 요한복음 6,51-58

99세 고모가 소천하셔서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슬하의 아들들은 먼 나라로 떠나 살고 있고, 넉 달 전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내내 고모를 모신 은 과부가 된 외동딸이었어요. 말이 딸이지, 그분의 나이도 74살. 꽤 늙은 할머니가 더 늙은 할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며 살았다지요. 딸은 일흔 중반이 되어서야 드디어 자유를 얻은 셈입니다.


제게는 사촌언니인 74살 할머니가 고인에 대해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가 몇 해 전부터 치매가 있었잖아. 그런데 참 신기하더라. 70년 같이 살았던 남편은 전혀 기억을 못 하고, 오로지 당신 아버지만 기억하는 거야. 외할아버지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시면서."

다른 정신줄은 다 놓아도 어릴 적 아버지한테 사랑받았던 기억을 마지막까지 간직하셨던 고모도, 외할아버지에게서 이어지는 사랑을 몇 년 간 유언처럼 반복하며 듣고 지냈던 사촌언니도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잊혀진 남편인 고모부는 조금 서운했을지 모르지만요.


돌아오면서 생각했어요.

'만약 다른 기억을 다 잃고 단 한 사람의 기억만 남는다면, 나는 과연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적어도 고모처럼 사랑을 흠뻑 주었던 아버지는 아닐 것 같습니다. 기억을 잃지 않은 지금도 아버지를 떠올리면 무섭고 두려울 때가 있거든요. 화가 나 있고,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가끔은 손찌검을 하기도 했던 아버지. 그 모습이 너무 싫어 하루라도 빨리 그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아버지...


제가 아버지와 관련한 어릴 적 일들을 말하면 남편은 이렇게 대꾸하곤 합니다.

"옛날 아버지들이 다 그랬지 뭐."

"안 그런 사람도 있거든!"

'다' 그랬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만, 요즘처럼 다정다감하고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아버지가 흔치는 않았던 것 같기는 해요. 그때만 해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라, 식솔을 책임지는 짐은 대체로 아버지들에게 지워져 있었으니, 아버지들에게는 자식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살 만한 심적 여유가 없었겠지요.


그래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그저 밉기만 하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주 조금씩, 매우 느리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용서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비록 다정하지는 않았어도 아버지 덕분에 태어났고, 먹고 살았고, 공부도 했는데 이제야 아버지를 개미 똥구멍만큼씩 이해해 가고 있다니, 참 불효막심한 딸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부터 시작해서 생명의 빵으로 이어지는 긴 말씀이 연중 20주일 복음으로 일단락지어집니다. 복음을 읽으며 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에 생각이 머물게 되었어요. 예수님도 살과 피로 빚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다고 하니, 예수님의 인간 아버지인 요셉의 유전자가 예수님 몸 안에 흐를 리 없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살과 피를 참된 양식이고 음료라고 말씀하시면서, 인간 아버지 요셉에게서, 또는 그 이전 다윗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서 대대로 물려 내려온 유전자를 말씀하진 않으셨을 겁니다. '죽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만들어진 살과 피가 아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전자(?) 살과 피로 지칭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당신이 최초로, 유일하고도 완전하게 물려받은 동일한 하느님의 속성을 사람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시는데, 그것을 '살과 피'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독일어 성경에는 예수님은 'das lebendige Brot(살아 있는 빵)'으로, 하느님은 'der lebendige Vater(살아 계신 아버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주지 못하는 빵은 참된 음식이 아니고, 참된 아버지도 아닙니다. 그런 빵을 먹으면 먹고도 죽어 버립니다. 생명을 주지 못하는 아버지는 Vater라는 단수가 아니라 '아버지들(조상들)'이라는 복수로 표현되어 있어요(Es ist nicht so wie bei den Vätern: die haben gegessen und sind doch gestorben.).


얘기가 살짝 복잡해 보입니다만 정리해 보자면, 제게 살과 피를 만들어 주고 밥을 먹여 키워 아버지는 '아버지들' 중의 하나이지, 생명을 주는 살아 계신 아버지는 아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는 아버지를 그다지 사랑해 오지 못했던 제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제가 '아버지들'에게는 불효막심한 딸이었을지언정, 생명을 주시는 단 한 분인 아버지의 유전자는 예수님을 통해서 받을 여지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부모를 사랑하지 못한 분들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또 하나의 위안이 있답니다. 열두 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부모와 함께 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사흘 동안 찾아 헤매게 했던 일 말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적으로는 부모 속을 많이 썩인 사람이에요. 마치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은 과거를 지닌 우리도 예수님을 해 다시 얻은 아버지하고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알려주시려는 듯이요. 그러니 불효자, 불효녀들이여, 힘을 내 보자고요. 육신의 부모와는 주고받지 못한 사랑을 단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다시 나눌 기회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Ich bin das lebendige Brot, das vom Himmel gekommen ist. Wer von diesem Brot ißt, der wird in Ewigkeit leben. Und dieses Brot ist mein Fleisch, das ich geben werde, damit die Welt lebt.
Da stritten sich die Juden untereinander und sagten: Wie kann uns der sein Fleisch zu essen geben? Jesus sprach zu ihnen: Wahrlich, wahrlich, ich sage euch: Wenn ihr das Fleisch des Menschensohns nicht eßt und sein Blut nicht trinkt, so habt ihr kein Leben in euch. Wer mein Fleisch ißt und mein Blut trinkt, der hat das ewige Leben und ich werde ihm am Jüngsten Tag auferwecken. Denn mein Fleisch ist die wahre Speise, und mein Blut ist der wahre Trank. Wer mein Fleisch ißt und mein Blut trinkt, der bleibt in mir und ich in ihm. Wie mich der lebendige Vater gesandt hat und ich um des Vaters willen lebe, so wird auch der um meinetwillen leben, der mich ißt. Dies ist das Brot, das vom Himmel gekommen ist. Es ist nicht so wie bei den Vätern: die haben gegessen und sind doch gestorben. Wer aber dies Brot ißt, der wird in Ewigkeit leben.

*대문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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